최영희 시인
최영희 시인

국가의 위상을 바로잡고 사회질서를 바로잡는 첩경은 법질서다. 법은 질서뿐만 아니라 올바른 기준을 정하고 국민을 보호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준법정신이야말로 공동체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기본권이자 기본적 의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세상은 각자 자기 입장을 옹호하며 오히려 무질서해진 느낌이다. 법을 제대로 지키는 준법정신보다 법망을 빠져나가는 꼼수가 마치 하나의 능력인 양 작용한다. 법을 가볍게 여기는 행태가 난무하다 보니 법을 아는 사람일수록 더 교묘하다. 일반인들은 허탈하고 자괴감마저 들 때가 있다.

다수의 선량한 국민들은 법을 무서워한다. 법을 몰라 무지한 결과로 우를 범하는 경우도 있지만 조금이라도 법에 저촉될까 두려워하고 조심한다. 법을 꿰차고 법망을 피해 나가려는 부도덕한 경우와는 대조적이다. 

이러한 꼼수 행태는 모범을 보여야 할 지식층이나 고위 권력층일수록 더 그렇다. 적어도 국민들은 그렇게 느껴진다. 때론 의도적으로, 때론 표적을 삼아 자행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는 법의 함정을 파놓고 걸려들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과연 법이 왜 존재하는 것인지 국민들은 실망스러울 때가 있다. 특혜 논란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 기준을 삼는 잣대는 똑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들이 바라보는 지도층은 성찰이 필요한 부분이라 할 것이다.

한비자는 법가사상을 주장했다. 법치야말로 강력한 리더십이 돼야 하고, 법에 의해 공평한 상과 벌이 주어져야 함을 강조했다. 공정한 법치로 국민들의 민심을 얻어야만 통치를 유지할 수 있다고 했다. 법질서가 무너지면 상식이 무너지고 사회질서가 무너진다.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이 제시되고 법에 의한 통치가 이뤄져야 민심도 다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대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고 탄력적인 법 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어느 정도 법의 관용도 염두에 뒀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보편타당한 기준에 의한 관용이어야 할 것이다. 

또한 한비자는 법치와 더불어 노자의 무위(無爲) 사상을 신뢰했다. 행함이 없는 자연스러움 가운데 세상이 조화롭게 돌아감을 말한 것이다. 그것은 수행을 강조하는 도의 경지에서 나오는 덕치를 밑바탕에 두고 있다. 그러한 도덕과 양심과 인품의 경지에서는 저절로 법치가 이뤄질 수 있다고 본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한 단계는 이르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법의 기준을 따르는 법치에 의한 순기능은 실현돼야 할 것이다. 법치라 해서 법을 강압적인 통제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점도 제시한 셈이다. 

요즘 세상이 시끄럽다. 대선을 앞두고 양자 모두의 공격과 방어가 도를 넘어섰다. 검증이라는 명분으로 온갖 구설이 난무하고 국민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위법사항들도 봇물을 이룬다. 국민들의 수준을 따라오지 못하는 지도층의 민낯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게다가 팬카페 등을 이용해 물불 안 가리고 무조건 옹호하는 세력도 만만찮게 등장하고 있다. 패거리 문화의 단면을 보여 준다.

우리나라에 그렇게도 인물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인물이 등장하지 못하도록 저지라도 한 것인지 대다수의 국민들은 우리나라의 국격에 실망한 나머지 피곤하고 짜증스러울 정도다.

법과 상식이 바로 서는 사회가 돼야 하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법치가 나라를 다스리는 기준이 돼야 한다. 법치를 바로 세우고 자기 수행의 덕치가 이뤄진 리더십으로 평안하고 조화로운 화합의 사회가 열리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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