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성섭 농협안성교육원 교수
변성섭 농협안성교육원 교수

코로나19 팬데믹은 설 풍속도에 영향을 줬다. 새해 고향에서 가족·친지들이 모여 덕담을 나누는 모습이 한순간 사라졌다. 그래서인지 농촌에 대한 프로그램이 많이 방영됐다. 설 특집으로 30대 초반 방송국 피디(PD)가 출연한 감성다큐가 향수를 자극했다. 주인공은 전북 김제의 시골 여행 중 팍팍한 삶에서 벗어날 여유 공간으로 한적한 농촌을 발견하게 된다. 빈 건물에 정착하면서 폐가를 수리하고, 사계절 동네 어르신들과 함께하는 소소한 농촌생활상을 영상으로 기록한다. 특히 농사 초보의 실수 모습은 ‘웃음 포인트’다. 텃밭에서 먹을 수 있는 재료를 찾다가 덜 익은 수박을 썰어 냉파스타를 해 먹는 모습이나 끊임없이 잔소리하는 옆집 할아버지의 모습에서는 푸근한 인정을 느낀다. 요즘 같은 각박한 시대에 더욱 그리운 모습이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는 2022년 트렌드 중 하나로 ‘러스틱 라이프(Rustic Life)’를 꼽았다. 단어의 의미를 해석해 보면 ‘러스틱’은 ‘시골 특유의, 소박한’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러스틱 라이프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생활 기반을 통째로 시골로 옮기는 ‘귀향, 귀농’과는 구분해야 한다. 러스틱 라이프 추구는 도시 생활을 근간으로 하되, 여유 시간을 시골에서 즐기는 형식으로 이해해야 한다. 가령 일주일 중 5일 정도를 도시에 머무르고 2일 정도를 자연친화적 공간에 머무는 ‘오도이촌(五都二村)’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삶 속에 소박하고 촌스러운 것을 자신의 생활에 더하면서 현재와 다른 삶을 지향하는 것이다. 

러스틱 라이프는 경제위기와 인구 감소로 고민하는 지자체에게 기회다. 최근 다양한 이슈로 수면 아래에 가라앉은 ‘지방소멸’은 한국 사회의 커다란 문제이다. 국회 입법조사처의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8월 전국 229개 시군구의 절반가량인 108개(47.2%)가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됐다. 읍면동 단위로 본다면 소멸위험지역(소멸위험진입+소멸고위험)은 1천791개(50.4%)였고, 이 중에서 711개 지역은 소멸위험진입(4단계), 1천80개 지역은 소멸고위험(5단계)으로 분류됐다. 즉, 읍면동 2곳 중 1곳은 소멸위험단계로 진입했고, 4곳 중 1곳 이상이 소멸위험이 매우 높은 단계이다. 

하지만 ‘위기가 기회’라는 말이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국내에 시선이 머무는 지금이 최고의 기회다. 러스틱 라이프에 대한 유인책 발굴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를 위해 중장년을 위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 개발을 서둘러야 한다. 짧은 휴가 느낌이 아닌, 긴 시간 한 곳에 머무르며 관광객이 아닌 거주민으로서의 기분을 느끼게 해야 한다. 한 달 또는 그 이상 동안 시골에 살면서 동네 곳곳을 산책·봉사하게 하거나, 그 지역의 숨은 명소를 찾아다니며 자연스럽게 지역사회에 동화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니면 아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시골 생활을 즐기게 하는 것도 방책일 수 있다. 실제로 ‘강원도에서 한 달 살기’, ‘강원도에서 반년 살기’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을 때 경쟁률이 최고 10대 1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음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아울러 청소년들에게는 도시학교와 농촌학교가 자매결연을 맺어 학생들이 일정 기간 함께 생활하게 하면서 체험하는 ‘농촌 유학’ 프로그램 활성화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 2021년 한 해 서울시교육청이 실시한 2학기 농촌 유학 프로그램 참여자가 1학기에 비해 두 배 가까이 증가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코로나19 장기화로 수도권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학교에 못 가는 날이 많아지자 확진자 수가 적어 거의 매일 등교 수업이 가능한 시골로 향하는 학생들이 늘어난 것이다. 실제 1학기 유학 프로그램에 참가한 학생·학부모들이 "자연과 함께한다는 것이 좋다", "아이들이 서울 생활에서 채우지 못했던 만족감이 있다" 등의 소감을 밝힌 것은 농촌 유학 활성화 측면에 있어 고무적인 일이다. 

지금 중장년층의 로망은 도시의 팍팍한 삶에서 벗어나 여유롭고 소박한, 시골스러운 농촌의 삶을 꿈꾸고 있다. 젊은이들도 영화 ‘리틀 포레스트(작은 숲)’에서 보듯 농촌을 또 다른 삶의 실천의 장(場)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농촌이 과거의 뒤떨어진 낡은 공간이 아니라 도시를 떠나 시골로 향하는 ‘러스틱 라이프’ 시대를 맞이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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