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눈(雪) 때문에 차질을 빚었다는 소식이다. 연평균 강수량이 8㎜에도 못 미치는 지역에서 올림픽을 열려다 보니 약 2조 원이 넘는 돈을 들여 사상 처음 100% 인공 눈으로 설상 경기를 치르고 있는데, 지난주 때 아닌 폭설과 강풍 때문에 예정된 일정이 미뤄지고 공식 연습도 취소되는 등 피해가 발생한 것이다. 

여기서 미국 USA투데이는 베이징국립경기장 올림픽 성화가 폭설로 꺼진 듯한 사진을 공개했다. 조직위는 성화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밝혔으나 사실 상처(?)는 적지 않은 듯하다. 더구나 중국의 등절(燈節:음력 1월 15일)을 앞둔 시점이었기에 호사가들의 입방아는 의외로 널리 퍼졌다는 후문이다. 

가로등이 처음 상하이에 설치돼 어둠을 쫓아낼 때, 이 같은 변화는 청나라 조정에 대한 불행의 전조로 여겨질 정도였다. 만약 타오르는 램프 심지에 ‘꽃’이 만들어지면 그 불꽃의 모양에 따라 부인이 아이를 갖는다든지 손님이 오고 있다든가 혹은 누가 죽게 됐다는 등등의 암시라고 여긴 것이 중국인들의 오랜 믿음이었다. 신방에 있는 촛불은 밤새 태워져야 하는데 만일 하나 또는 두 개의 초가 모두 꺼진다면 이것은 한 사람 또는 두 사람 모두 예측하지 못한 죽음을 예고하는 불길한 징조로 여겼고, 만일 두 개의 초가 동시에 모두 다 타서 없어진다면 그 부부는 똑같은 수명을 누리게 될 것이며, 초가 오래 탈수록 그 부부는 장수할 것이라 여겼다. 만일 초가 녹아서 옆으로 뚝뚝 떨어지면 마치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봐서 슬픔의 징조라고도 했던 것이다. 

이렇듯이 중국인의 불·불꽃에 대한 정서는 남다르다. 그런데 올림픽의 상징이랄 수 있는 성화가 껴졌다니 중국인들이 화들짝 놀랄 수밖에. 다행히 조직위가 재빨리 성화는 꺼지지 않았다고 진화했으니 망정이지 USA투데이 보도를 인정했다면…. 

등절에 그들은 갖가지 등을 내건다. 뼈대 있는 집안은 꽤 많은 돈을 들여서라도 집안의 위세를 과시하기 위해 어떤 식으로든지 불을 밝힌다. 때로 관리인을 고용하기도 한다. 그리고 하늘에 맹세하기를 거듭한다. 또한 맹세를 실천에 옮기기 위해 적절한 글을 써서 등불로 밝힌다. 득남하기 위해, 질병으로부터 회복하기 위해, 또 사업의 성공 등등 갖가지 소원을 빌기도 한다. 이런 등불에는 대개 검은색·빨간색·노란색으로 번쩍번쩍 빛이 나도록 칠하는데 보통 빨간색이 대부분으로 기쁨과 흥겨움을 상징하고, 가장 값이 비싸고 예쁜 등은 역사적 장면이나 고귀하거나 익살 맞는 인물 또는 사물들을 다채롭게 채색해 흰 천이나 얇고 휜 비단으로 덮는다. 이런 풍습의 나라 중국, 베이징은 이번 동계올림픽 개최로 전 세계 최초 하계올림픽까지 연 도시가 되는 영광을 얻게 됐으니 더욱 의미심장했던 것이 사실이다. 

개막 행사부터 구설수가 터져 나오고 판정 시비가 그치지 않더니 급기야는 폭설이 쏟아져 경기 진행이 헝클어지고 성화가 꺼졌네 아니네 하는 일까지 벌어지는 베이징 동계올림픽의 다사다난한 일정도 끝나 간다. 시진핑 국가주석을 향한 지나친 의전도 흘러간 옛이야기가 되겠지. 여기서 생각해 볼 일이 하나 있다. 진실이 힘을 잃고 있다는 점이다. 참과 거짓을 구별하는 기준들조차 조롱받고 있다. 스포츠 세계에서 마치 정치판처럼 오염된 불확실성이 판치고 있는 현실을 목도한다는 사실이다. 아직은 차갑고 계산적인 뇌로 자기 이득을 위해선 기만을 서슴지 않는 나르시시스트, 마키아벨리주의자, 사이코패스가 스포츠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지 않다는 걸 위안으로 삼아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석기시대와 마찬가지로 권력을 유달리 사랑하는 자들에게 쉽게 이끌리고 있다. 수백만 년 동안 우리 유인원 조상들이 생존을 위해 경쟁자나 포식자를 겁주는 데 능한 건장하고 오만하며 잔혹한 남성을 앞세워 왔고, 오늘의 우리 역시 지도자를 택할 때 이런 유형을 선호하고 있지 않은가 되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베이징 동계올림픽 중계를 바라보면서 중국인들이 느끼는 바가 간단치 않겠으나, 이웃 나라에서 지켜보는 마음은 실로 복잡하다. 스포츠를 정치에 이용하는 못된 버릇이 없어지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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