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어린 시절의 저는 시력은 무척 좋았습니다. 안경을 쓴 친구들이 멋있어 보여 그들을 부러워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나 지금은 돋보기를 써야만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통계수치를 볼 때는 안경을 쓴 채로 돋보기까지 손에 들고 봐야만 합니다. 그런 탓에 풍경 속에 숨어 있는 섬세한 아름다움이나 화려한 꽃의 정교함을 보지 못해 안타까울 때도 많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선명하게 보이는 세상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흐릿하게 보이는 세상, 이 두 세상 중에 어떤 세상이 실재하는 걸까요? 

‘국어 선생님의 과학으로 세상 읽기’라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떡갈나무 바라보기」(주디스·허버트 콜 공저)라는 책을 소개하는 구절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인간이 눈과 귀로 보고 듣는 세계는 실재하는 세계가 아니라 ‘움벨트’이다. 모든 동물이 공유하는 경험이 아니라 인간만의 특유한 경험일 뿐이다. 그리고 이 경험마저도 보편적인 것이 아니다. 움벨트(umwelt)는 모든 동물이 공유하는 경험이 아니라 개개의 동물에게만 있는 특유한 경험을 일컫는 신조어다."

"색맹이 보는 세상과 정상인이 보는 세상의 모습은 다르다. 이때 색맹과 정상인은 서로 다른 움벨트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를 확장해 나가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개체 수만큼의 움벨트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인간이 가지는 움벨트만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진드기는 포유동물의 따뜻한 핏속에 알을 낳습니다. 눈도 귀도 없는 진드기는 풀잎이나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다가 토끼나 다람쥐 같은 포유동물이 지나가는 순간 그들의 몸에서 발산되는 ‘부티르산’ 냄새를 감지하고는 그들의 몸으로 떨어진다고 합니다. 미국의 한 연구소에서는 무려 18년 동안이나 굶주린 채로 나무에 매달려 있으면서 자기가 매달린 곳의 아래로 포유동물이 지나가기를 기다린 진드기도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대단하지요? 우리가 느끼는 18년과 진드기가 생각하는 18년에 대한 개념은 분명히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간에 대한 개념이 이렇게 다르다면 공간에 대한 개념은 어떨까요? 인간이 규정해 놓은 공간 개념을 동물에게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을까요? 

아니었습니다. 수나방은 2.4㎞나 떨어진 곳에 있는 암나방의 냄새를 따라가 짝짓기를 하고, 돌고래는 무려 160㎞나 떨어져 있어도 암수가 대화를 나누며 만날 수 있다고 합니다.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겸손해지기도 하고요.

저자는 이렇게 주장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망막에 비친 사물이 세계의 실상이라고 생각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실상이 아니다. 만약 인간의 감각이 지금과 달리 설계됐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세계를 실상이라고 우길 것이다."

저자의 견해에 동의합니다. 내가 이렇게 봤으니 너희도 이렇게 보라는 것이 얼마나 고약한 편견이고 얼마나 교만한지를 깨닫게 해 주는 귀한 가르침이었습니다.

이 글을 접하면서 그저 나는 나답게 살면 된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러면서 남의 삶 역시도 내 기준으로 판단하고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듭니다. 나는 나답게, 너는 너답게 살아가는 세상이 아름다울 테니까요. 모두가 ‘나답게’ 살아가는 곳, 즉 자신만의 움벨트로 세상을 바라보며 즐겁게 살아가는 삶이 보장된 세상이 행복한 세상일 겁니다.

누가 더 예쁘고, 누가 더 잘났고, 누가 더 많이 가졌는지 또는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따지며 내 판단과는 달리 생각하는 사람들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살아온 저 자신이 얼마나 교만했었는지를 진드기와 돌고래에게서 배웠습니다. 내가 보는 세상만이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겸손함! 그가 보는 세상만이 옳은 것은 아니라는 유연함! 자연 세계가 선사하는 이 두 개의 지혜를 마음속에 담아 놓을 때 비로소 선명하게 보이는 세상과 흐릿하게 보이는 세상이 공존하며 아름다운 화음을 낼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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