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구 청운대학교 영미문화학과 교수
김상구 청운대학교 영미문화학과 교수

대통령선거 벽보가 길거리에 나붙기 시작했고, 유세차량들은 여기저기에서 고성을 토해 낸다. 방송에서도, 저잣거리 사람들도 후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갑론을박하는 것을 보니 대통령선거가 국가에서 가장 큰 에너지를 쏟아내는 행사임은 자명해 보인다. 선거를 통해 우리 삶의 큰 테두리가 결정지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선출되는 대통령은 정치행위를 통해 우리 삶을 제한하기도 하고 풍요롭게 만들기도 한다. 정치 없이 살아가는 것이 편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지만, 우리는 태어나면서 국가의 일원으로서 주민등록을 얻고, 병역의무와 납세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선거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정치와 거리를 두게 되면, 그것의 "가장 큰 대가는 자신보다 더 멍청하고 저질스러운 자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다"라는 플라톤의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일이 될 것이다.

선거에서 훌륭한 지도자를 선출하기가 쉽지 않다. 선거철이 되면 흑색선전과 각종 선심성 공약, 화려한 수사(修辭)로 피선거권 자를 현혹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돈이 들어가든 말든 표를 얻는 것이라면 뭐든지 공약으로 내건다. 후보자가 내거는 공약은 꼭 지키겠다는 의미보다 선거에 이기려는 전략에 불과하다. 누가, 어느 당이 선거에서 이기느냐가 국가의 안위, 국가의 미래보다 더 우선한다. 수십 년 전 선거에서 막걸리, 고무신을 돌려 표를 얻었던 선거 행태와 지금의 선거운동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위와 같은 패거리정치를 하는 정치꾼들은 포퓰리즘과 상대방 흠집 내기로 선거운동을 대신한다. 흑색선전이 먹힌다고 보기 때문이다. 패거리정치를 끝내기 위해서는 흑색선전과 화려한 수사, 제스처보다는 후보자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고 투표하면 그 사람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죽기 살기로 싸우는 패거리정당들에게 동지라는 불을 뿜는 화력은 필수적이다. 이들이 정당의 특전사들이고, 화통의 심지 역할을 한다. 후보자도 이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의 결속력이 느슨해져서는 싸움을 지속할 수 없다. 그래서 이들에게 이데올로기의 덧을 씌워 동지라는 동질의식을 갖게 만든다. 이들이 중심이 돼 당의 세력을 눈덩이처럼 키워 나간다. 선거에서 승리하면 이들에게 그럴듯한 전리품인 자리를 나눠 주고 결속을 더욱더 다져 간다. 

패거리정당들은 힘없고 소외받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를 한다고 그럴듯한 수사를 늘어놓지만, 국가를 유지시켜 우리끼리 더 정권을 유지하려는 속성을 숨겨 놓고 있다. 그러기에 이들은 끼리끼리 뭉치며 군중을 갈라 치고, 패거리정치의 행태를 강화한다. 이러한 모습은 낯설지 않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거치면서도 끝없는 붕당정치를 반복하다가 조선은 결국 일본에 국가를 내주는 파멸의 길을 걷고 말았다. 지금도 적폐 청산을 내세우지만 결국은 정적을 제거하고 우리끼리의 정치를 염원한다. 

프랑스 정치철학자 랑시에르는 ‘치안(police)’과 ‘정치(la politique)’를 구분했다. 그가 말하는 치안은 국가가 잘 돌아가게 하는 통치행위 일반을 의미한다. 치안은 어떤 자리나 기능을 분배하거나 혹은 몫의 분할과 관련된 행위들을 수행한다. 나아가 그런 분배나 분할에 대한 구성원들의 합의를 이끌어 내고, 이를 통해 체제를 유지하고 정당화하는 행위가 바로 치안의 기능이다. 치안에 대립되는 개념으로 랑시에르가 소환하는 것이 바로 ‘정치’다. 랑시에르에게 정치는 사회 속에서 보이지 않았던 자, 몫이 없는 자,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자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치안의 작동에 교란을 가하는 행위다. 

패거리정치를 획책하는 정당과 후보자는 교언영색으로 국민의 환심을 사고 싶어 하지만, 선거가 끝나면 그들은 그들만을 위한 리그(league)로 다시 돌아갈 것이고, 국민들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동토의 땅에서 신음할는지 모른다. 이번 선거에서 패거리정치를 투표를 통해 끝내야 한다. "정치는 권력 행사가 아니다"라고 했던 랑시에르의 말이 다시 요청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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