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규수 동산중학교 교장
황규수 동산중학교 교장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로 시작되는 시 ‘고향’의 시인 정지용. 올해는 그가 태어난 지 120년이 되는 해이다. 1902년 충청북도 옥천에서 출생한 그는 한국 현대시의 아버지라 불릴 만큼 한국시사에 끼친 영향이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문장’지의 시 부문 추천위원이기도 한 그는 청록파 시인을 비롯해 당대 유명 시인을 발굴하는가 하면, 윤동주 등 시인들에게 영향을 주기도 했다. 

그런데 그가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여러 설만이 존재할 뿐인데, 납북설과 월북설, 미군에 의한 처형설 등이 그것이다. 먼저 납북설은 좌익 계통인 그의 제자가 무슨 일이 있다고 찾아와서 함께 잠깐 시내에 나갔다 온다 했는데 그 길로 끌려가 버렸다는 것이다. 월북설은 정지용이 납북이 아니라 월북자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며, 그 논거 또한 합리적이고 타당성을 지니고 있다. 미군에 의한 처형설은 그가 한국전쟁 직후 의용군에 가담했다가 유엔군에 의해 포로로 붙잡힌 후 오키나와에서 ‘포로학대’ 혐의로 처형됐다는 것이다. 

이처럼 정지용 시인은 한국 근현대시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만, 일제 강점으로부터 분단으로 이어진 이 땅의 비극적 현실 상황이 월북이냐 납북이냐 하는 등의 논란 속에 그의 생애뿐만 아니라 작품에 대한 자유로운 논의조차 못하게 했다. 물론 1988년 납·월북 작가의 작품에 대한 해금은 그의 시에 대한 논의의 폭을 넓힐 뿐만 아니라 깊이도 더해 주는 계기를 만들어 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관련해 풀어야 할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정지용 시인의 작품이 해금되기 전 필자는 학위논문 준비를 위해 인천 효성동에 거주하던 그의 맏아들 정구관(鄭求寬)씨를 찾아가 본 적이 있다. 당시 한 일간지에 그가 월북 작가로 분류돼 출판 금지된 부친 작품의 복권을 위해 문인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서명을 받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기사를 접했다. 그래서 그 기사의 담당 기자에게 거주지 주소를 알아 그를 만나러 간 것이다. 그때 그는 월북으로 소문난 아버지 때문에 변변한 직업을 갖지 못한 채 고초를 겪으며 살아왔다고 했다. 더욱이 그는 힘든 상황에서도 아버지와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러 다니다가 간첩으로 오인되기도 했다 한다. 

특히 2001년 2월에는 서울에서 북에 사는 동생 구인(求寅)씨와 재회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구인 씨는 아버지가 납북됐다는 소식을 들었던 배재중학 재학 당시 아버지를 찾겠다며 집을 나선 뒤로 소식이 끊겼는데, 그의 남북이산가족 상봉 신청으로 시인의 두 아들도 만나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때 구인 씨가 보내온 가족 명단에는 1950년 납북됐다가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아버지 정지용 시인의 이름도 포함돼 있어 이들도 서로 소식조차 모르고 살아왔음을 짐작게 했다. 실제로 그는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해서 북한에서 아버지의 삶에 대해 쓴 글에 따르면, 정지용 시인이 북으로 가던 중 경기도 동두천 소요산 기슭에서 미군 비행기의 기총탄을 맞고 숨을 거둔 것으로 기술돼 있다고 했다. 

한편, 정지용 시인의 일본 도시샤(同志社)대학 시절인 1927년 5월과 6월 ‘조선지광’에 발표된 시 ‘뻣나무 열매’와 ‘오월소식’은 강화도를 배경으로 쓰인 작품인데, 여기에는 그곳에 교사로 간 동생에 대한 근심이 표현돼 있다. 이는 특히 시 ‘오월소식’의 "일본 말과 아라비아 글씨를 가르치러 간/ 쬐그만 이 페스탈로치야, 꾀꼬리 같은 선생님이야,/ 날마다 밤마다 섬 둘레가 근심스런 풍랑에 씹히는가 하노니,/ 은은히 밀려오는 듯 머얼리 우는 오르간 소리……"라는 구절에 잘 나타나 있다. 실제로 시인은 그 여동생을 매우 사랑했다고 전해진다. 

이와 같이 이 땅의 비극적 현실 상황에서 외롭게 살다 사라진 그의 최후에 대해서는 아직도 설이 분분하다. 또한 살아생전 아들로서 도리를 다하고자 한 그의 맏아들이 세상을 떠난 지도 여러 해가 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이산가족의 아픔이 사라지길 바란다고 한, 그 아들의 말은 차마 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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