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성섭 농협안성교육원 교수
변성섭 농협안성교육원 교수

2월 28일은 달력에 있어서 2월 마지막 날이며, 3월 새 학년을 시작하는 설레는 전날이다. 하지만 1960년 2월 28일은 대구지역 학생들에게 있어서 의미가 남다르다. 독재정권의 부정선거에 맞서 일요일 학교 등교를 거부하며 민주운동의 횃불을 드높였던 뜻깊은 날이다. 이날 고등학생들은 엄혹한 현실로 억눌려 있던 ‘정의’를 처음으로 자발적이고 조직적으로 표현했다. 1960년대 학생과 2022년도 또래 학생을 비교하면 아이들은 볼멘소리를 한다. "그 당시 학생들의 삶과 지금 저희들의 삶은 달라요. 그때의 정의로운 행동은 존경받아야 하지만, 그건 타고난 게 아니라 민주주의 교육을 받은 결과라고 생각해요. 지금처럼 오직 경쟁과 성공만을 추구하는 교육에서는 나올 수 없잖아요. 요즘 누가 희생하겠어요. 애먼 저희를 탓할 건 아니라고 봐요." 일면 수긍이 간다. 정의를 말하지 않는 교육에서 정의로운 인간을 기대한다는 건 연목구어(緣木求魚)의 형국이다. 

요즘 청소년들은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다"고 한다. ‘의(義)’를 따르기보다 ‘이(利)’를 챙기는 것이 낫다는 걸 학교와 가정에서 배운 것이다. 심지어 아이들 입에서 "착한 사람은 사회에 나가면 손해만 본다"는 말이 무시로 튀어나온다. 1960년 2월 28일 학생운동의 숭고한 정신은 역사 속 껍데기로만 남았다. 대학 입시에 도움이 되느냐 여부가 수업의 질을 평가하고, 교과를 선택하는 데 절대적 기준이 됐다. 과학 교과나 기술 과목이라면 기능적인 측면에서 써먹을 곳이라도 있지만, 역사적 사건은  암기 대상으로 전락한 것이다. 

3월 9일 대통령 투표에 만 18세 고등학생들이 참여한다. 기대와 우려가 교차된다. 한때 만 18세 투표권에 대해 찬반 논란이 많았다. 입시에 고민할 시기에 정치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다. 청소년들은 미성숙해서 정치를 제대로 할 수 없다거나, 학교교육이 정치에 휩쓸릴 거라고 걱정을 했다. 이러한 생각의 기저에는 청소년들은 어린 존재, 아직 온전한 시민이 아닌 존재로 교육의 대상이라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학교나 다른 논의의 장에서 청소년들의 의견은 충분히 존중받지 못하고 배제됐다. 

하지만 선거권 행사가 생각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다.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차대한 일로 장기간의 훈련이 필요하다. 짧은 기간에 합법과 불법, 투표 방법은 알려 줄 수 있지만 ‘자기 의견’을 피력하는 역량은 짧은 기간에 길러지지 않는다. 초·중등 교육과정부터 체계적으로 시행될 수 있는 정치 교육이 필요하다. 독일의 ‘U18 프로젝트’ 제도를 참고해 볼 만하다. 국적과 상관없이 독일에 사는 모든 18세 미만 청소년이 실제 선거 9일 전 똑같이 투표소에서 모의 투표를 한다. 투표 방법만 익히는 게 아니다. U18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청소년은 투표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상호 간 정치적 모순을 판단하게 하는 방법과 정당별 차이 등을 학습하고 토론하며 자신의 정치적 선호를 인식하게 하고, 정당별 정책과 질문들을 비교 후 투표하게 한다. 현실 상황을 중심으로 구체적이고 실용적 교육을 하는 것이다. 틀에 박힌 내용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으로는 민주주의의 기본인 타협과 토론, 비판하는 능력을 키울 수 없고 무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 

아울러 정치 얘기를 언제든지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는 문화가 형성돼야 한다. 핀란드 교실에서는 교사와 학생들이 어우러져 정책에 관한 의견을 수시로 나누며 실제로 치러지는 선거제도를 정확하게 설명하고, 자신이 선호하는 정당과 정책을 고르게 한 다음 이유를 설명하게 하는 등 자유로운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때 늦은 감은 있지만 학생들이 올바른 정치관을 세우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토론 분위기를 마련해 줘야 한다. 

1960년 2월 28일 학생운동은 한순간 감정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다. 해방 후 혼란 속에서도 지속적인 민주주의에 대한 정치 교육의 산물이다. 정의(正義)의 중요성을 강조한 교육이 학생들의 심장을 뛰게 한 것이다. 또한 당시의 국민들이 고등학생을 성숙한 사회주체로서 존중해 주고 응원해 줬기 때문이다. 요즘 동시대를 살아가는 기성세대들의 소임은 우리 청소년들이 대한민국의 주권자로서 올바른 정치관을 가질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해 주고, 격려해 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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