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끝나면서 중국의 음주문화가 크게 달라지고 있다는 소식과 함께 백주(白酒:바이주)시장의 뒷걸음질이 심각할 정도라고 한다. 마오타이, 우량예, 수정방 등 세계에 내놓고 자랑하던 고급주가 5년 연속 가파르게 하강 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아직도 상하이 주식거래소에서 가장 비싼 주식은 마오타이주를 생산하는 귀주모태주이고, 해외시장을 겨냥한 강연회나 공연 등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어 아직 단언하기는 이르다는 주장도 더러 있으나 심상치 않다는 건 확실해 보인다. 

백주는 보통 알코올 도수가 40~60도 사이다. 꽤 독한 셈이다. 따라서 호탕함을 과시하려거나 손님을 접대하면서 우쭐거리기 좋아하는 높은 연령층에서 인기는 시들지 않고 있으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별로라는 인식이 널리 펴져 선도도가 크게 떨어지고 있다.  "백주는 가격만 비쌀 뿐이지 맛이 형편없다"는 신세대의 주장이 일반화되고 있으며 건강과 맛, 이 두 가지를 함께 생각하는 젊은 세대들은 이미 10도 안팎의 약한 도수 술 쪽으로 이동했다고 한다. 더구나 "3년 전부터 여성들의 음주문화가 확대일로에 있는데, 이들에게 달콤한 과일주가 단연 인기로 독한 술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하는 보도다. 낮은 도수의 과일주나 소주를 생산하는 업체가 최근 부쩍 늘어났고, 곧 고도 성장기에 들어갈 것으로 보는 경제 예측 기관들도 많다. 노무라증권은 약 10년 후께 중국의 저도주시장의 매출액이 우리 돈으로 40조 원에 이를 것이라고 밝히면서 백주 업체들도 생산라인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백주 업계 1위의 마오타이가 블루베리를 첨가한 ‘위밀’을 출시해 여성 소비자를 겨냥하는 걸 좋은 사례로 꼽았다. 

반론도 있다. 독한 술맛을 즐기는 쪽에서 "그게 무슨 술이냐, 맹물이나 다름없지"라고 하거나 "음료처럼 마신다면 모를까 술맛으로는 영 아니다"라고 고개를 젓기도 한다. 그러면서 전통적인 중국의 백주가 상당 기간 복잡한 단계를 거쳐 생산되는 점을 강조한다. 즉, 원료 재배에서 연구 단계를 거쳐 생산라인 등 양조 과정이 치밀한 계획 하에 이뤄진다거나 이런 배경이 있기에 품질이 보장되고 완전한 산업 사슬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아무튼 백주의 전통을 더욱 살려 나가야 할 것인지, 추세에 따라 저도주의 성장을 확대할 것인지, 이 점은 마치 중국 공산당의 진로만큼이나 어려운 과제라는 것이 중론이다. 

지금 ‘한국 소주’는 K팝·K드라마의 세계적 인기 덕분에 고공행진을 하고 있으며, ‘일본 사케’ 역시 일본 음식의 영향 덕분에 여러 국가에서 유행을 타고 있다. 중국의 대표주 ‘백주’는 잠시 동남아 등지에서 반짝했으나 국내외 변화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고 있으니 어디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지 쉬운 선택이 아닐 터이다. 각국은 저마다 독특한 술 문화를 갖고 있으며 젊은 세대의 변화에 따라 부침을 겪고 있으나, 중국은 유독 부침의 성격이나 미래가 불투명해 보인다. 

중국의 고민은 더 있다. 원래 ‘가짜’나 ‘짝퉁’에 있어 세상에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였지 않은가. "사람 빼고 다 베낀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그리고 소소한 문화 침탈 행위까지도 마치 큰일이라도 난 듯이 요란법석을 떨고 있지 않은가. 한 해 생산량의 0.1% 정도 해외 수출하는 처지에서 보면 중국의 ‘백주 몰락’ 신호는 결코 심상치 않아 보인다. 

자국 중심의 논리만 고집하면서 세상의 눈치 따위는 보지 않겠다며 스스로 울타리에 갇혀 있던 중국이 이제 술 문화의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는 그들 스스로에게 달려 있다. 동계올림픽 도중 중국 관광청이 느닷없이 "스키가 중국에서 유래됐다"고 주장해 세계인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것처럼 ‘백주 예찬’을 넘어 왜곡된 것까지 강매하듯이 문화적 기호를 요구한다면 지금껏 누려 왔던 마오타이주의 명성은 눈 녹듯 사라질 수도 있다. 일찍이 술 향기로 샌프란시스코 술 품평회장을 사로잡았던 마오타이의 명성을 유지하기 위한 중국의 노력이 신선한 자극으로 전해오기를 기대하며, 한·중·일 3국의 대표적 술이 경직된 정치·산업계 전반에서 상호 교류의 분위기를 만들어 낼 수 있기를 바란다. 술 취해 비틀거리지 않고 넉넉한 마음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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