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현우 보건학 박사
한현우 보건학 박사

1986년 한국은 1인당 GDP가 2천834달러로 국가경제가 열악해 해외여행하기가 힘든 시기였다. 당시 해외로 출국하기 위해서는 안보교육을 받아야 하고, 공무원들은 추가로 출국심사를 받아야 했다. 필자는 1988년 서울 올림픽에 이어 개최되는 장애인올림픽을 대비해 총무처로부터 1986년 6월부터 3개월간 연수허가를 받아 영국과 네덜란드로 출국하게 됐다. 당시 우리나라는 소련과 중국 등 사회주의 국가와 국교가 수립되지 않아 유럽 여행을 할 경우 앵커리지를 경유해 북극을 통과해야 파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전 10시 파리를 향해 출발, 다음 날 오전 6시 40분 파리 드골 공항에 도착한 후 환승해 오전 9시 30분 런던 히드로(Heathrow)공항으로 향했다. 약 2시간 가까이 비행 후 히드로 공항에 도착해 국제척추장애인연맹(ISMGF, 연맹)에 전화하니 Miss Stone 여사가 마중 나왔다. 영국은 장애인 등 사회약자를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을 영국 수상보다도 더 존경하고 있었다. 

 1986년 제35회 국제척추장애인 경기가 영국 스토크맨드빌에서 개최됐는데, 세계적으로 추앙받는 마가렛 대처 영국 수상이 참석한다는 소문이 들렸다. 당시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은 대처 수상과 찍은 사진을 선거구에 돌리면 당선될 정도로 수상의 인기는 절정에 달했을 때였다. 장애인체육위원회 고귀남 위원장이 대회 참석 중이었으므로 대처 수상을 만나 우리나라 장애인 스포츠 운영을 협조 요청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주최 측에 면담을 신청했다. 아무런 대답이 없다가 만나기 10분 전에 연락이 왔다. 대처 수상과 찰스 왕세자가 참석한다는 것이다. 수상을 만나 우리나라에서 불모지였던 장애인 스포츠의 경기 용구, 경기 운영, 심판진 지원 등 전반적인 운영 사안에 대해 협조 요청했다. 그녀는 한국의 장애인올림픽 개최를 축하한다고 하면서 적극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온유하면서도 친근함을 느꼈다. 놀라운 것은 경호원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경호를 하는 것이었다. 

 연맹 사무실에서 영국 BBC 방송국 기자를 만났다. 그는 한국의 장애인올림픽 준비 상황에 대해 인터뷰하자고 하면서 약 30분간 다양한 질문을 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질문에 빠져들어 정부가 미흡하게 추진하는 부분을 답변하고 있었다. 걱정이 돼 런던 주재 한국대사관에 찾아가 이 사실을 보고했다. 당시에는 현지에서 있었던 일은 대사관에 보고하고 귀국 후 총무처와 안기부에 보도하도록 돼 있었다. 연맹에서 일하던 직원이 정년퇴직하게 됐는데 더 일하고 싶어서 무료 봉사할 수 있도록 간청했는데 Miss Scruton 사무총장은 단호히 거절했다. 또 다른 직원은 밀수에 연루됐는데 다음 날 즉시 해고되는 것을 보고 법 적용의 잣대가 엄격함을 알 수 있었다. 

 귀국 후 연수결과보고서를 책자로 작성해 총무처와 안기부에 제출했는데, 총무처에서는 우수 보고서로 채택됐다. 안기부에는 해외동향보고서를 추가로 제출했는데 약 두 달 후 귀국 보고 차 방문하라는 연락을 받았는데 걱정이 앞섰다. 당시 안기부는 선망의 대상이 아니라 두려움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도착 후 관계자를 만났는데, 유익한 정보를 제출해 줘 많은 도움이 됐다고 하면서 수고했다고 부상으로 금일봉을 줬다. 

 대처 수상은 1979년부터 1990년까지 11년간 영국을 통치하면서 불가능했던 사회 혁신을 특유의 정치력으로 밀어붙인 카리스마가 있는 정치인으로 철의 여인이라고도 불린다. 그녀와 연맹의 도움으로 당시 우리나라에 보급되지 않은 뇌성마비 장애인을 위한 보치아 경기, 척추장애인을 위한 휠체어테니스·휠체어농구·휠체어펜싱·휠체어당구·론볼링·맹인축구 등 경기 용구와 규칙을 보급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대처 수상과 같은 세계적인 지도자가 탄생하기를 기원해 본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