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진시황이 함양궁에서 성대한 자축연을 열었다. 흉노 진압을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주(周) 아무개가 공덕을 칭송했다.

"폐하의 뛰어난 지도력과 통찰력에 힘입어 중원을 통일하고 이제는 해와 달이 비추는 곳 모두를 복종시켰습니다. 폐하께서 분봉제를 폐하고 군현제를 시행하면서 전쟁의 우환이 없어졌고 모두가 태평성세를 노래합니다. 그 공덕은 옛 삼황오제보다 빛날 것입니다."

이 칭송에 진시황은 몹시 흡족해 했다. 그때 순(淳) 아무개가 나서서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지금 주 선생이 폐하의 뜻을 곡해하는 것은 폐하의 잘못을 가중시키는 것이니 결코 충신이 아닙니다. 폐하께서 분봉제의 폐지를 다시 고려해 보셔야 할 줄 압니다."

이리하여 공신들에게 봉읍을 내리는 분봉제와 중앙에서 전국의 고을에 관리를 임명·파견하는 군현제를 놓고 토론이 벌어졌다.

승상 이사가 나섰다. "지금의 세상이 옛날과 같지 않고, 세상만사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것이니 옛 제도를 시행하는 건 있을 수 없지요. 이미 세상은 안정되고 법령이 통일되었으니 지식인들은 딴맘을 먹지 않고 현행 법령과 제도를 학습하는 데 진력해야 합니다. 일부 몰지각한 지식인들이 아직도 구사상·구제도에 얽매여 옛 서적을 들먹이며 정치제도를 비판하고 있으니 엄히 다스려야 합니다. 따라서 그런 옛 서적들을 불태워 버려 혼란을 사전에 막는 것이 미래를 위해 바람직합니다."

이리하여 분서(焚書:책을 불태움)가 결정됐고, 민간에서 소장하고 있는 시경과 상서 등을 모아 불태우게 되는 것이다. 분서가 강행된 이듬해 진시황은 불로초를 구해 오라는 명령을 내렸는데, 분부를 받은 두 사람이 받은 재물을 챙겨 가지고 달아나 버렸다. 보고받은 진시황이 대노했음은 자명한 일이다.

"일부 지식인들이 배후에서 사주하여 불로초를 구하기는커녕 돈을 챙겨 도망쳤으니 배후를 색출하라."

명령을 받은 어사대부는 지식인들이면 잡아다 족쳤다. 그러자 고문에 못 이긴 그들이 자기만이라도 살아보려고 엉뚱한 사람들을 들먹였고, 결국 400여 명의 지식인들이 붙잡혔다. 이들을 함양성 밖에 큰 구덩이를 파고 산 채로 매장하라고 한 것이 이른바 갱유(坑儒)다. 

하지만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탄생한 이후 진시황에 대한 평가를 놓고 격렬한 논쟁 끝에 ‘갱유’에 대해서는 믿기 어렵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원래의 표현은 ‘갱살술사(坑殺術士)’, 즉 불로초를 진시황에게 사기 친 술사들을 처형한 것인데 이걸 유학자들을 죽인 것으로 바꿔치기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진시황이 죽은 지 100년 후 한나라 때 상홍양이라는 사람이 ‘갱유’를 주장했고, 이후 역대 유학자들이 공자와 맹자의 사상을 대대적으로 선전하기 위해 ‘분서갱유’로 포장해 폭군 진시황의 이미지를 각색했다는 것이다. 때문에 당나라 석학 한유나 북송의 사마광 같은 대학자들이 ‘갱유’를 부정하기에 이르렀다고 한 주장이 힘을 얻게 됐다. 결국 진시황의 분서갱유는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 유학자들에 의해 각색되고 엉뚱하게 만들어졌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싶다.

대통령선거가 끝났다. 아마 이번 대선의 격전만큼이나 온갖 아부꾼들이 나서서 저마다 공치사를 늘어놓고 미래의 방책을 토로할 것이다. 

공신들에게 한 자리씩 주는 일이 국가 백년대계인 양 포장될 것이고, 자리를 차지하려는 자천타천의 무수한 정객들이 줄을 설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언론을 손보고 방송이나 여타 영향력이 있다 싶은 매체들을 자기 수중에 넣으려는 공작은 예전 어떤 정권보다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터다. 진시황은 사상과 언로를 제압하려 지나치게 잔인하고 흉포했다. 분서의 이유는 그럴 듯하나 수많은 문화유산이 사라졌고, 갱유는 아닐지 모르나 당시의 술사들이란 어떤 의미에서 정신문화의 창조적 의욕에 넘치는 바도 적지 않았다는 역할에 비춰 볼 때 창조적 문화에 철퇴를 가했다고 볼 수 있다. 과유불급이라고 했다. 이제 새로운 시대에는 지나침이 없을 것만으로도 다행일지 모르겠다. 제발 부탁하는 바는 호시우행(虎視牛行 )의 뜻을 헤아리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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