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당선인이 브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윤석열 당선인이 브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조직에 충성할 뿐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2013년 박근혜정부 1년 차 때다. 현 정권을 상대로 소신 발언을 쏟아낸 한 남자가 주목받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정치적 목적에 따라 권력을 휘두르면서 정치검찰이라고 불리는 불신을 시원하게 해소시킨 발언에 대중은 열광했다. ‘강직하고 의로운 검사’라는 평가는 훗날 두고두고 대중에게 읽히고 각인됐다. 제20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얘기다. 해당 발언은 당시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특별수사팀장에서 배제된 윤석열 여주지청장이 국회 법사위원회의 서울고검 국정감사에서 한 말이다. 결국 그러한 그의 신념을 하늘이 허락했다. 윤 당선인은 이렇게 당당히 역사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초등학생 시절 윤석열 당선인이 친구들과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초등학생 시절 윤석열 당선인이 친구들과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 초년기∼사법고시 합격

윤 당선인은 1960년 12월 18일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태어났다. 친가의 고향은 충청도 논산 노성면이고, 외가는 강원도 강릉이다. 윤기중 연세대학교 명예교수와 최정자 전 이화여대 교수 사이 1남 1녀 중 장남이다. 대광초등학교-충암중학교-충암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1979년 입학했다. 대학 입학 때 물리학이나 수학 또는 경제학을 원했지만 부친의 조언으로 법대로 마음을 바꿨다고 한다. 

대학시절 유명한 일화로는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12·12 군사반란을 이유로 무기징역을 선고한 일이다. 1980년 5월 8일 학교에서 진행한 모의 재판에서 판사를 맡은 윤 당선인은 신현확 국무총리에게 사형, 보안사령관으로 있었던 전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고 한다. 그는 이로 인해 신군부를 피해 석 달간 강릉의 외가 친척집으로 피신하기도 했다. 

윤석열 당선인이 아버지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 출장 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윤석열 당선인이 아버지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 출장 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윤 당선인은 이후 잘못된 정보로 군사쿠데타 수괴로 오인했다고 신 전 총리에게 미안하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대학 4학년 때 사법시험 1차에 합격했지만 2차 시험에는 번번이 낙방해 9수 만인 1991년 제33회 사법시험에 최종 합격한다. 사법연수원 23기로 법조인이 됐다. 1994년 동기들 중 2∼3번째로 많은 만 33세 임관이다. 사법연수원 제23기로 동기들로는 주광덕 전 의원, 박범계 법무부 장관, 강용석 변호사, 조윤선 전 장관, 이정렬 변호사 등이 있다.

# 검사 윤석열

대구지방검찰청에서 첫 검사생활을 시작했다. 그 후 1996년 춘천지검 강릉지청, 1997∼1998년 수원지검 성남지청에서 일하다 1999년 김대중정부 시절 서울중앙지검으로 옮겨 정치·기업인을 상대로 특수수사 영역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윤 당선인의 검사로서 자질은 김대중정부에서 경찰 실세로 꼽혔던 박희원 치안감 뇌물수수 혐의 수사를 통해 입증된다. 당시 박 치안감을 소환한 지 단 하루 만에 자백을 받아내고 1심 재판에서 2년6월의 실형을 받아냈다.

사법시험 9수 끝에 합격한 윤석열 당선인이 사법연수원 입학 전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사법시험 9수 끝에 합격한 윤석열 당선인이 사법연수원 입학 전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2002년 사표를 내고 법무법인 태평양의 변호사로 전직했다. 윤 당선인은 이때가 자신을 더 단단하게 만든 시기라고 회고한다. 윤 당선인은 야권 대선 주자로 나서면서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대검 중수부 산하 공적자금비리합동단속반에 저녁시간에 들어가면서 맡은 짜장면 냄새가 코끝을 확 자극하면서 눈물이 핑 돌더라"며 "밤샘 수사가 기본인데 ‘아점’으로 시켜 먹던 퉁퉁 불은 짜장면을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났다. 검찰이 그리웠던 거였다"고 말했다. 

이후 윤 당선인은 경력직 채용 형식으로 다시 검찰로 돌아왔다. 잠깐의 외도 후 1년 만에 검찰로 돌아온 윤 당선인의 조직에 대한 충성심이 어떠한지를 알게끔 하는 대목이다. 

검찰로 복귀하면서 큰 사건에는 늘 윤석열이라는 이름이 뒤따랐다. 2003년에는 참여정부의 측근 인사인 안희정, 강금원을 구속수사했으며, 2006년에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검찰연구관으로 현대자동차 비자금 사건을 수사했다. 현대자동차 비자금 사건에서도 강골 검사로서의 유명한 일화가 있다. 당시 정상명 검찰총장에게 면담을 신청하고, 현대차 비자금 사건 수사 이후 정몽구 회장 구속 요청과 함께 동시에 사직서를 내밀었던 일화다. 윤 당선인의 강직한 성품을 안 정상명 검찰총장은 고심 끝에 정 회장을 구속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2008년에는 파견검사로서 BBK 특검에 참여했으며, 2009년 대구지방검찰청 특별수사부장으로 부임한 이후 대검찰청으로 복귀해 범죄정보2담당관을 맡는다. 2010년 대검찰청 중수2과장, 2011년 대검찰청 중수1과장 등 요직을 거친다. 대검 중수1과장 재직 시절인 2012년 6월 "장모와 관련된 사건들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으로 내부 감찰을 받았으나 무혐의로 종결됐다. 2012년 7월에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별수사 제1부 부장검사 자리에 오르면서 핵심 요직에 앉는다. 부인 김건희 씨와 결혼한 시기는 2012년이다. 

중학생 시절 윤석열 당선인.
중학생 시절 윤석열 당선인.

탁월한 수사 능력으로 승승장구하는 듯했지만 박근혜정부 시절 국정원 댓글 조사 사건으로 암흑기가 왔다. 2013년 국정감사 때 ‘윗선의 수사 지시’에 공개적으로 항명했다가 눈밖에 나 이듬해 1월 대구고검 평검사로 좌천당했다. 하지만 국정 농단 이슈가 터지면서 아무도 예측하지 않았던 반전이 일어난다. 2016년 12월 1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특별수사를 담당하는 박영수 특별검사에게서 특검팀의 수사팀장으로 지명되면서 파견 검사 신분으로 합류했다. 박근혜정부 초기 주목을 받았던 강골 검사 윤 당선인이 암흑기를 보내고 화려하게 등장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이어 2017년 5월 19일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임명된다. 그리고 검사 윤석열이 문재인정부의 검찰 핵심 인사로 세간의 이목을 끌면서 2019년 7월 25일 제43대 검찰총장으로서 대중 앞에 서게 된다. 

2015년 대구고등검찰청 조직활성화 행사에 참석한 윤석열 당선인.
2015년 대구고등검찰청 조직활성화 행사에 참석한 윤석열 당선인.

# 승부사 윤석열

정치권에 몸을 던진 윤 당선인은 거침이 없었다. 승부사 기질을 여실히 보여 줬다. 윤 당선인의 검사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런 승부사의 모습은 충분히 확인 가능하다. 평검사 시절 2006년 현대차 비자금 수사 때 사표를 품고 검찰총장을 찾아가 정몽구 회장 구속을 이끌고, 2013년 국정원 댓글 사건 때 수사 외압을 폭로한 내용도 승부사로서 보여 준 모습이다. 

조국 수사 역시 같은 맥락이다. 살아있는 권력의 불의에 단호한 모습은 강직하고 정의로운 검사의 이미지와 함께 상승작용을 일으켜 대중을 환호하게 했다.

정치권에서는 수사 목적에 따라 환호와 비판으로 갈라섰다. 국정 농단 수사로 전직 대통령 2명을 감옥으로 보낼 때 환호한 여당은 연일 비판의 날을 세운 반면 야당은 조국 사태 등으로 문재인정부에 실망한 지지층 결집으로 활용하면서 찬사를 보냈다. 

특히 여당으로부터 공격당할 때마다 지지율이 올라가는 이상 현상이 벌어진다. 윤 당선인의 지지율이 가장 가파르게 상승했던 시기는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검찰을 기세게 몰아붙일 때다. 민주당 진영의 집요한 공격은 보수 진영의 응원을 이끌어 냈고, 과거에 안 좋았던 이미지마저 희석시키는 효과를 낳았다. 이런 상황에서 승부사 윤석열은 결단을 내리는 순간이 온다. 검찰을 떠나 대권 도전을 위한 승부수를 던진다. 

검찰을 떠날 때도 승부사다운 모습을 보였다. 2021년 3월 4일 오전 반차를 냈던 윤 총장은 대검찰청에 복귀하며 모인 기자들 앞에서 "사회의 상식과 정의가 무너지고 있는 것을 지켜보기 어렵다. 검찰에서 본인의 역할은 끝났다. 자유민주주의와 국민을 보호하는 데 온 힘을 다하겠다"며 대권 도전 가능성을 시사했다. 여당은 반발했고 야당은 환호했다. 출마선언문 역시 직접 썼다. 문재인정부를 향해 ‘이권 카르텔’, ‘국민 약탈’, ‘윤리의식 마비’ 등 거친 표현을 쏟아냈다. 검찰총장으로서 보고 느낀 점을 적었다. 강직하고 정의로운 검사 이미지와 함께 야권의 차기 대선 주자로서 강인함을 보였다. 

윤석열 당선인이 작년 12월 6일 국민의힘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 김병준·이준석 상임선대위원장과 대선 승리를 기원하며 인사하고 있다.
윤석열 당선인이 작년 12월 6일 국민의힘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 김병준·이준석 상임선대위원장과 대선 승리를 기원하며 인사하고 있다.

특히 정치인 윤석열의 장점은 이명박·박근혜로 시작하는 보수 진영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점이다. 게다가 윤석열은 정치권으로부터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어 활동 보폭이 넓다. 

충청 대망론도 윤 당선인의 정치적 버팀목이었다. 부친인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는 충남 공주 태생으로, 윤 당선인도 범충청권 출신으로 분류됐다. 이 때문에 충청권에서는 윤 당선인을 충청도 대권 주자로 간주해 왔다. 충청권은 지금까지 김종필, 이인재, 반기문, 안희정과 같은 유력 정치인이 나왔지만 대통령을 배출하지는 못했다. 이 때문에 충청권에서는 지역 출신 대권 후보에 대한 갈망이 높았다. 

이 때문에 국민의힘 소속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 이후 가장 힘 있는 대권 주자로 본선에서 나선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초박빙 승부를 벌이면서 불과 대선 투표일 엿새를 앞둔 3월 3일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 단일화를 전격 이뤄 내면서 승기를 잡는다. 이렇게 제20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탄생했다.

  안재균 기자 ajk@kihoilbo.co.kr

사진=<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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