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초등학교 시절 어느 더운 여름날, 온몸이 땀에 젖도록 뛰어놀다가 집에 오는 길에 친구들과 개울물에 뛰어들었습니다. 개헤엄을 치며 놀다가 잠시 물속을 들여다보니 송사리 한 마리가 제자리에 멈춰 서 있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도 녀석은 그대로 있었습니다. 조심조심 두 손을 녀석 가까이 가져갔는데도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송사리를 낚아챘습니다. 물 밖에 나와 두 손을 펼쳐 보니 있어야 할 송사리는 흔적도 없었습니다. 송사리가 저보다 더 민첩했던 겁니다. 자그마한 송사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순식간에 자신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민첩성이었습니다. 

바다 저 멀리 하늘 위로 힘차게 물을 뿜어내는 고래를 그려 봅니다. 송사리와 달리 고래는 어느 방향으로 방향을 바꾸는지 알 정도로 동작이 느린 탓에 누구나 그의 진로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민첩한 송사리와 자신의 방향을 들킬 만큼 느린 고래! 이 둘 중 어느 녀석이 더 강한 존재일까요? 아무리 민첩한 송사리라도 고래가 물을 한번 들이키면 어김없이 고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갈 테니 고래가 더 강한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라의 지도자는 ‘고래’와 같은 존재여야 합니다. 어디로 튈지 모르고 작은 일에 감정의 기복이 심한 송사리 같은 존재가 아니라 나라가 나아가야 할 큰 물길을 알려 주는 고래와 같은 지도자여야 합니다.

이제 새 대통령이 결정됐습니다. 「흥미롭고 오묘한 말 속 인문학」(이윤재 저)에 영국에서 처칠 후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꼽히는 마거릿 대처 수상이 1979년 취임 후 첫 각료회의에서 행한 말이 나옵니다. 

"디자인하세요, 아니면 물러나세요!" 당시 장기 실업과 경기 침체에 빠진 영국병을 치유하자면서 그 탈출구로 디자인의 중요성을 역설했습니다. 

‘디자인’이란 단어는 당시 영국에서는 ‘혁신’의 의미로 쓰였습니다. 혁신하지 않으면 당시의 영국병을 치유할 수 없다는 말일 겁니다. 혁신하려면 그동안 혁신을 방해하고 있던 소위 ‘기득권층’의 많은 저항과 난관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그리 쉽지만은 않습니다. 혁신을 통해 나라를 반석 위에 올려놓으려면 방해 세력으로 인해 빚어질 피로감을 극복할 수 있는 강한 ‘체력’이 필요합니다. 그 체력은 국민의 정부에 대한 ‘신뢰’입니다. 이 신뢰가 기초체력이 돼야 비로소 혁신정책 추진이 가능해집니다.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지도자의 ‘정직성’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 또한 대처의 영국병 치유 과정에서도 발견됩니다. 1982년 1월 그녀의 아들이 아프리카 사막에서 6일간 실종된 일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아들의 구조비용을 내면서 "제 아들의 구출비용은 제가 개인적으로 내겠습니다. 그래야 납세자들에게 개인적인 필요 때문에 한 푼의 세금이라도 사용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녀의 뜻에 따라 외교부는 전체 비용 2천359파운드 중 국민 보호를 위한 공식 활동비용을 제외한 1천789파운드를 그녀에게 청구했다고 합니다.

1834년 미국 일리노이 주의회 의원에 출마한 링컨에게 당에서 선거자금 200달러를 보냈습니다. 가난한 링컨에게는 큰돈이었습니다. 물론 선거자금으로 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지만, 그는 당선 후 75센트를 제외한 199달러 25센트를 반납했습니다. 그의 말입니다. "선거유세장을 돌아다닐 때 교통비는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제 말을 타고 다녔기 때문입니다. 다만, 나이 많은 선거운동원들에게 음료수를 사서 나눠 드렸습니다. 그때 75센트를 썼는데, 영수증을 동봉합니다."(「마음을 움직이는 인성 이야기 111」, 박민호 저)

놀랍습니다. 그가 보낸 ‘75센트짜리 영수증’이야말로 그의 정직함의 상징이고, 그런 그의 정직함이 대통령이 돼서도 그에 대한 신뢰로 이어졌으며, 그 결과 혁신정책들을 과감하게 추진할 수 있었을 겁니다. 당선을 축하합니다. 국민의 신뢰를 얻어 희망이 살아 숨 쉬는 나라로 이끌 수 있는 고래와도 같은 정직한 대통령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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