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우 인하대학교 영어교육과 교수
이현우 인하대학교 영어교육과 교수

2022년 3월 9일에 있었던 대통령선거 결과, 자유보수주의를 표방한 윤석열 후보가 진보주의 개혁 성향의 이재명 후보를 이기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번 제20대 대통령선거에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총투표의 48.56%를,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후보가 47.83%를,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2.37%를 득표했다. 

보수와 진보의 이분법으로 말하자면, 설사 진보당과 노동당을 제외한 소수 정당 모두가 보수라고 하더라도 보수가 49.67%이고 진보가 50.33%이다. 이 수치만 보면 대한민국은 정치 이념적으로 거의 정확하게 두 쪽으로 나뉘었고, 이는 24만7천77표(0.73%) 차이로 신승한 윤석열 후보가 앞으로 험로를 걸어야 할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원론적으로, 진보주의는 기존 정치·경제·사회 체제를 새롭게 바꾸려는 개혁을 추구하는 정치 이념이고, 보수주의는 기존 체제의 안정적인 발전을 추구하는 정치 이념이다. 진보주의자는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에 의한 재분배와 규제로 경제적 평등과 사회 변천을 추구하는 정책을 선호하지만, 보수주의자는 사회에서 유지되는 도덕관의 고수, 분배보다 경쟁과 성장을 중시하면서 점진적인 개혁을 추구한다. 이러한 두 정치 이념에 의해 한 나라가 두 동강이 났다면, 그 어떤 유능한 통치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사회 통합을 통한 국력 신장과 국민 삶의 질 향상을 기대하기란 매우 어렵다. 진보주의 정책에 대해서는 국민의 반이 결사적으로 반대할 것이고, 보수주의 정책에 대해서는 국민의 다른 반이 필사적으로 반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완벽한 정치적 교착상태이다. 그렇다면 20대 대통령선거에서 우리 국민은 정말로 진보와 보수로 반반씩 나뉘어 있는가? 비록 진보와 보수를 표방한 후보들의 득표율이 반을 조금 넘었거나 반이 조금 안 되지만, 필자는 우리 국민이 정치 이념적으로 진보와 보수로 반반으로 나뉘었다고는 할 수 없고, 여기에서 우리나라가 더 진일보할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이번 선거 전에 많은 매스컴에서 지역주의 투표가 약화할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개표 결과, 지역주의가 선거에서 여전히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번 선거에서 호남(광주광역시와 전라남북도)과 영남(부산광역시, 대구광역시, 울산광역시, 경상남북도)의 유효 투표수는 각각 838만7천414표와 347만5천636표였다. 호남에서 이재명 후보와 심상정 후보가 얻은 득표수는 299만2천388표로 득표율이 86.10%에 이르고, 영남에서 윤석열 후보가 얻은 득표수는 538만2천549표로 득표율이 64.17%에 이른다.

이런 결과를 놓고 호남 투표권자의 86.10%가 진보주의자이고 보수주의자는 13% 남짓밖에 안 된다고 할 수 있는가? 영남은 예로부터 호남보다 상공업이 더 발달해 호남 출신 주민이 이곳에 많이 거주한다. 이런 이유로 호남보다 지역주의 투표 양상이 덜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들 호남 출신 거주민을 제외한 영남 투표권자는 80% 정도가 윤석열 후보에게 표를 줬으리라 생각된다. 그렇다면 이들 영남 투표권자는 모두 보수주의자이고 나머지 20여%의 투표권자는 진보주의자라고 할 수 있는가?

개표 시작 전에 이번 선거 결과를 거의 정확하게 예측한 지상파 방송 3사 출구조사에 따르면, 18~29세 투표권자 중에서 이재명 후보가 남성의 36.3%와 여성의 58%를 얻고, 윤석열 후보가 남성의 58.7%와 여성의 33.8%를 얻는 것으로 나왔다. 이 예측대로라면 이 세대의 남성은 58%가 보수주의자이고 40% 미만이 진보주의자이지만, 여성은 이와 반대로 58%가 진보주의자이고 40% 미만이 보수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이렇게 단언할 수 있는가?

여느 선거와 다름없이 이번 선거에서도 지역주의 투표가 있었고, 세대별·성별 투표 쏠림 현상이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쏠림 투표가 자연스럽게 상쇄되는 한 큰 해악을 끼치지는 않는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호남에서 두 명의 진보 후보가 얻은 투표수와 영남에서 한 명의 보수 후보(윤석열 당선인)가 얻은 투표수가 각각 586만4천642표와 582만9천418표로 거의 같다. 영호남을 제외한 전국을 봐도, 두 명의 진보 후보와 한 명의 보수 후보가 얻은 표가 각각 1천108만2천301표와 1천56만5천397표로 그 차이가 불과 51만6천904표이다.

세대별·성별 득표 현황이 아직 공개되지 않아 섣불리 단정할 수 없지만, 특정 세대에서 진보 또는 보수 후보로의 쏠림 투표가 있었지만 세대 전체를 놓고 보면 상쇄 효과가 일어나 특정 세대 또는 특정 성에 호소하는 선거 전략이 그리 성공적이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진보와 보수의 구분 선상에서 세대별 투표 경향을 굳이 논하자면 60대 이상에서는 보수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났고, 40대와 50대에서는 진보 성향이 우세했으며, 20대와 30대에서는 엇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결국 진보와 보수의 이념적 대립은 40대 이후의 세대에서는 중요했을지 몰라도 나머지 세대에서는 중요하게 작용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는 20대와 30대 유권자가 진보와 보수의 정책적 차이보다는 선거 결과가 자신의 현실적 이익에 미치는 영향을 더 중시했다는 것을 가리킨다. 호남의 주류가 진보이고 영남의 주류가 보수이지만, 주류의 정치 이념보다는 자신과 자신의 지역사회에 더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투표권을 행사했던 유권자가 영호남을 막론하고 상당히 있었음을 뜻한다.

우리 국민의 35%가 진보이고, 또 다른 35%가 보수이고, 나머지 30%가 중도라는 말이 있다. 필자는 중간에 끼인 중도층이 있으므로 진보와 보수의 극한 대립이 상쇄되고 선거를 통해 사회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한다고 믿는다. 마찬가지로, 영호남의 지역주의가 존재하지만 이 둘이 서로 상쇄되거나 충청권과 수도권의 중간지대가 있음으로써 국가 전체적으로 볼 때 건전한 발전의 토대가 마련된다고 본다. 바라건대, 앞으로 들어설 새 정부가 한쪽의 정치 이념에 매몰되지 않고 중간지대 사람의 이해를 구하고, 나아가 다른 한쪽의 정치 이념에 경도된 사람마저 설득하려고 노력함으로써 우리나라가 선진 강국으로 우뚝 설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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