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흥구 인천문인협회원
황흥구 인천문인협회원

며칠 전 신문에서 수인선 협궤열차가 국가문화재로 등록된다는 기사를 읽었다. 어린 시절부터 1995년 폐선할 때까지 두루 타 봤던 나로서는 감회가 새로웠다. 소래포구가 있는 동네 근처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장난감 기차는 못 봤어도 수인선 기차는 보고 자랐다. 지금도 가끔 소래역사관 마당에 있는 협궤 증기기관차와 그 위의 소래철교를 찾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아련한 추억이 떠오른다.

어릴 때 여름방학이면 곧잘 동네 친구들과 소래철교에 가 놀기도 했다. 물이 빠질 무렵이면 다리 아래 갯고랑에서 낚시질도 하고 옷을 훌러덩 벗어 던진 채 헤엄을 치며 놀던 곳이다. 학창 시절에는 ‘소래역’이나 ‘남동역’에서 줄곧 ‘수인역’까지 협궤열차를 타고 통학했으며, 졸업하고 인천시내로 출근할 때도 줄곧 이 열차를 타고 다녔다. 

석탄으로 가는 증기기관차는 소금을 가득 실은 화물칸까지 달고 다니기 때문에 언덕을 오를 때는 힘에 겨워 흰 연기만 내뿜으며 ‘칙칙폭폭’ 기적소리만 요란했다. 기차 안은 항상 만원이었다. 멀리 군자, 야목, 사리 등지에서 갓 잡은 조개나 맛살, 망둥이 등의 해산물과 곡물 등을 팔러 가는 아낙네들과 한데 섞여 여름이면 땀 냄새와 생선 비린내가 진동했다. 지금도 소래포구에 오면 기적소리와 함께 소래다리를 덜커덩거리며 건너오는 기차의 모습이 아련히 다가온다. 소래철교는 낭만과 추억이 깃든 다리다.

이런 다리를 수인선 복복선 사업을 하면서 기존에 있던 철교는 철거 위기에 놓인 적이 있었다. 교각의 노후화로 안전상 문제가 있고, 기존 철교를 놔두고 새로 다리를 만들면 교각이 많아져서 선박 운항에 지장이 있어 철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2010년 남동구 부구청장으로 근무할 때인데, 철거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와 주민들의 진정서를 받아 꿈쩍도 않던 ‘철도시설공단’을 설득해 결국은 철거하지 않고 그 옆에 새로운 다리를 놓게 된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 뿌듯하다. 

이 다리가 어떤 다리인가. 85년 전 일제가 처음 부설할 때 주안, 남동, 소래, 군자 등지에서 나는 소금과 쌀을 수탈해 가기 위해 만든 다리다. 한국전쟁 때는 피란길로, 전쟁이 끝나고는 다시 산업 발전의 동맥 역할을 단단히 하기도 했다. 또한 그 당시에는 수인선이 유일한 교통수단으로 많은 학생들의 통학길로 이용되는 등 애환이 서린 다리인 것이다. 

영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애절한 사랑을, ‘콰이강의 다리’는 전쟁의 아픔을, 그리고 ‘애수’하면 ‘워털루 브리지’가 떠오르는 것처럼 모두 관광명소로 자리잡고 있다. 작은 어선들과 석양 속의 수인선 소래철교가 어우러져 그림 같은 풍경을 자아내는 소래포구 또한 관광자원으로서 손색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애환과 향수가 깃든 관광명소인 소래철교를 철거하면 말이 되겠는가. 우리는 왜 이렇게 아무런 의식도 없이 파괴해 버리는 것에 익숙해 있는지 모른다. 

몇 년 전 미국 LA의 명물인 ‘할리우드(Holly Wood)’ 간판이 부동산 개발로 철거 위기에 몰리자 성인잡지 ‘플레이보이’를 창간한 휴 헤프너를 비롯해 스티븐 스필버그 등 감독과 영화배우들이 성금을 모아 역사적 조형물을 지켜냈다고 하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겨우 알파벳 아홉 자의 조형물에 지나지 않지만 "나는 어린 시절 이 간판을 보며 영화에 대한 꿈과 환상을 키웠다"는 헤프너의 말을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리 인천도 1883년 개항 이래 당시의 독특한 건축물을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많이 볼 수 있었으나 지금은 개발이라는 명분 아래 거의 다 사라져 버려 아쉽기 그지없다. 다행히 사라질 뻔했던 소래철교가 지금은 철교난간을 새롭게 단장하고 보행자 전용도로로 만들어 많은 관광객들이 와서 옛 정취를 느끼며 즐기고 있다. 이참에 소래철교도 문화재로 지정하고 소래포구와 습지생태공원을 연결한 생태문화벨트로 묶어 인천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로 발전시켜 나갔으면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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