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누적 외래 80만 명, 수술 건수 2만 6천 례. 대학병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척추전문병원인 안양 윌스기념병원의 이야기다.

매년 중소병원의 폐업률은 9.1%에 달한다. 일반 법인 사업자에 비해서도 높은 편인데, 교통이 발달하면서 대형병원의 쏠림 현상이 강해지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안양 윌스기념병원은 이 현상에 대해 피해를 입는 위치다. 인근에는 대형종합병원이 속속 들어서는데다 서울과도, 수원과도 가까워 환자들의 이탈이 더욱 거센 곳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안양 윌스기념병원은 10년간 이곳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을 수 있었다. 과연 그 저력은 어디서 왔는지, 이동찬 병원장과 인터뷰를 통해 알아봤다.

- 올해로 개원 10주년을 맞았다. 특별히 바뀐 점이 있나?

▶ 매일 환자를 만나고 또 소통하는데 변함은 없다. 다만 10주년을 기념해 병원을 함께 이끌어준 임직원들에게 공을 돌리는 행사를 가졌다. 10년 근속, 5년 근속상 등 병원의 역사와 함께 했던 직원들이 행사의 주인공이었다.

- 10년, 짧은 시간이 아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안양지역의 대표병원으로 우뚝 설수 있었던 저력은 어디서 왔나?

▶ 꾸준한 연구, 끊임 없이 좋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한 노력들이 뒤에 있었다. 치료결과의 만족도를 올리기 위해 자체적으로 컨퍼런스도 진행하고, 또 어떤 치료를 해야할지 의료진들과 회의를 거듭해왔다. 공부와 학회 참여를 바쁘다는 이유로 피하지 않았다.

또 지역사회와의 소통에도 꾸준히 참여했다.

- 지역사회와의 소통이라면 어떤 일들인가?

▶ 건강기부계단이라던가, 안양대학교에서 건강강좌를 진행한다던가 하고있다. 친근한 병원이야말로 지역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이미지라고 생각했다. 안양지역 기업인들과의 교류와 더불어 해외 환자를 맞이 할 수 있는 시스템도 마련했다. 덕분에 우크라이나 환자나 미국인 환자가 우리 병원에서 수술을 받기도 했다.

- 기억에 남는 외국인 환자가 있나?

▶ 모든 환자가 기억에 남지만, 미군기지에서 근무하던 미국인 환자가 수술 받았던 것이 기억 난다. 3년 동안 우리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는데, 떠나는 그날까지 내원했다.

또 우크라이나 환자는 아예 말이 통하지 않아서 번역기를 통해 소통했던 기억이 있다.

- 지역소통에 컨퍼런스에 외국인 환자까지, 몸이 둘이라도 모자랄 만큼 바쁠 것 같다. 이렇게 몸을 아끼지 않고 일에 매진할 수 있는 동기가 있나?

▶ 딱히 하나 꼽기는 어렵다. 원래부터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했고 환자들을 돌보는 것 자체가 내 기쁨이었다.

다만 의사가 되려는 동기는 있었다. 어렸을때 뇌성마비를 앓았던 가족을 의사가 돼 고치고 싶다는 마음을 먹고 공부를 했는데, 수술로 고칠 수 있는 병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돼 척추 관련 학과로 진학하게 됐다. 그러면서 이 자리 까지 오게 된 것 같다

이런 동기들이 모여서 환자들을 더 친근, 친절하게 대하게 되는 것 같다. 몸이 아파 찾아오는 사람들을 홀대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모임이나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를 좋아하긴 한다.

- 안양 윌스기념병원 10년간 다양한 위기가 있었을 것 같다. 가장 큰 위기는 언제였나?

▶ 코로나이전에는 메르스 때가 가장 큰 위기였다. 병원장으로 취임한지 일주일만에 메르스가 터지면서 병원이 셧다운 됐던 적이 있다. 취임하면서 계획했던 여러가지 일들을 모두 내려놔야 했다. 물론 모든 병원이 힘들었던 시기였으나, 모든 발병 원인이 메르스 환자가 방문한 병원에서 시작된다는 사람들의 인식이 있어서 더욱 그랬다.

그래도 당시의 경험은 지금의 코로나 시국의 방역시스템을 갖출 수 있었던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당시에 겪었던 경험대로 방역지침을 철저히 지키면서 오히려 환자가 많은 코로나에는 병동을 폐쇄할 정도 까지 가지는 않았다. 그때의 위기에 대한 경험과 극복이 코로나 극복에도 영향을 준 것이다.

- 지난 10년을 되돌아 봤다. 앞으로의 10년, 척추 전문의로서 의료발전에 필요한 것은 어떤 것이라 생각하나?

▶ 해외와 비교하자면 우리나라의 척추 관련 의료 수준은 전세계 최고 수준이다. 내시경이나 수술 관련 기술은 전세계에서 우리나라를 벤치마킹 하곤 한다.

그런데 그에 따른 행정적인 측면들은 미진한 부분들이 있다. 로봇수술이라던가 하는 것을 국가에서 인정해 주지 않는 경우들이 꽤 있다.

척추관절 수술은 이제 갈수록 규모가 줄어들고 있다. 인력이 줄어 든다는 뜻이 아니라, 최소의 절개를 통해 수술을 진행한다는 뜻이다. 이런 기술발전에 국가 행정 변화도 함께 따라준다면 유래없는 의료 선진국으로 더욱 앞서 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 안양 윌스기념병원의 병원장으로서 앞으로의 10년 계획은?

▶ 결국 척추와 관절과 관련해서는 세계 최고의 병원이 되는 것이 목표다. 안양, 또 경기도 뿐 아니라 전국, 전세계에서 찾아오는 병원을 만드는 것이 꿈이다.

이와함께 올해에는 신경과를 개설 하고 스텝들을 좀더 늘려 양적, 질적 향상을 꾀했다. 병실도 늘릴 계획인데, 지금 계획 하고 있는 것이 해결된다면 병실을 많이 늘릴 수 있을 것 같다.

병원 내부적으로는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은 병원으로 거듭나고 싶다. 병원이라는 공간은 개인적인 성향이 많을 수 밖에 없는 분위기다. 이를 타파하고 가족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

- 10년후 의사 이동찬은 어디 있을 것 같나?

▶ 나는 항상 이 자리에 있을 것 같다. 언제나 같은 시간 같은 요일에 환자들을 만나고 인사하고 안부를 묻고, 진단하고 고치는 의사로서의 그 역할을 10년, 20년 계속 하고 싶다. 환자를 돌보는 것이 의사의 사명이다.

- 끝으로 할말은

▶ 나뿐 아니라 의료진, 그리고 우리 직원들이 10년간 고생을 많이 해줬다. 너무 감사하고, 나보다 직원들이 이 병원을 이끌기 위해 한 일들이 훨씬 많다고 생각한다.

병원장으로서 직원들에게 일일이 지시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런데도 유능한 직원들이 자신의 역할을 잘 해주니 서로 협조가 잘 이뤄지곤 한다. 덕분에 수술을 하거나 진료를 볼 때 다른 일들을 전혀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그런 점들이 우리 병원의 강점중 하나기도 하다.

앞으로의 10년도 직원, 그리고 병원을 방문해주는 모든 사람들이 우리의 가족이다. 친근하고 친절한 척추전문 안양 윌스기념병원이 되겠다. 

 백창현 기자 bch@kihoilbo.co.kr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