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동기 인하대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
성동기 인하대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

신께서 모든 인간들에게 땅을 나눠 주시는 날이었다. 인간들에게 땅을 모두 나눠 주신 신께서 떠나려고 할 때 뒤늦게 헐레벌떡 뛰어온 인간이 있었다. "신이시여! 저에게도 땅을 주시옵소서!" 그때 신은 무척 당황해했다. 신이 자신을 위해 남겨 놓은 땅만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이 남겨 놓은 마지막 땅이 지금의 우크라이나이다. 그래서 그런지 지구상에 이렇게 축복받은 땅은 없다. 씨앗만 뿌려 두면 알아서 작물을 자라게 한다는 ‘체르노젬(Chernozem)’이라는 옥토가 전 국토에 걸쳐 있고, 엄청난 수량을 가진 드네프르가 국토의 중간을 가로질러 흐르고 이 강의 종착지에는 흑해가 있다. 

그러나 축복받은 땅이 우크라이나인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 않았다. 오히려 이 땅을 차지하고 싶어 하는 강대국들 사이에서 수많은 고통을 겪었다. 초원의 길을 따라 북아시아에서 유목민들이 이곳을 빈번하게 침략했었다. 882년 지금의 키이우에 최초로 세워진 국가인 ‘키이우 루스(Kievan Rus)’는 988년 ‘동방정교회(Eastern Orthodox Church)’를 공인하면서 이곳의 역사 중심지로 발전해 나갔다. 

그러나 1240년 몽골의 침략으로 키이우는 폐허가 됐고, 이후 가톨릭을 신봉하는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연합국은 우크라이나 서부를 지배하면서 이곳의 우크라이나인들에게 지속적으로 개종을 요구했다. 이들에게 벗어나기 위해 동부로 이주한 우크라이나인들은 ‘코사크(Cossack)’라는 자치공동체를 만들어 자신의 종교와 자유를 지키고자 자체 군대를 양성하고 외부 세력에 저항했다. 

그러나 국가 없는 백성의 한계를 깨달은 우크라이나인들은 같은 종교를 가진 러시아 황제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그의 지배를 받아들였다. 

우크라이나인들은 1240년부터 1991년 소련으로부터 독립하기 전까지 신이 주신 축복의 땅에서 국가 없는 백성으로 고통과 고난을 겪었지만 언제나 살아남았다. 1240년 몽골이 침략해 키이우를 파괴했지만 1037년 건설됐던 소피아 대성당은 여전히 우크라이나를 지키고 있다. 1932년부터 1933년 사이 스탈린에 의해 자행됐던 대기근으로 800여만 명이 굶어 죽었고,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의 침략으로 270여만 명의 우크라이나인들이 사망했지만 드네프르 강은 지금도 흐르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우리에게 낯선 곳이 아니다. 율 브리너가 출연했던 ‘대장부리바(Taras Bulba)’에서 ‘우크라이나 코사크’를 처음 봤고, 소피아 로렌이 출연한 ‘해바라기’에서 우크라이나의 끝도 없는 해바라기밭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리고 ‘전함 포템킨’에서 오데사의 역사적인 계단을 스크린에서 오르내렸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해방과 연관 있는 얄타회담이 열렸던 얄타는 흑해의 크림반도(크름반도)에 있다. 

필자는 2002년 ‘우크라이나 사회와 문화’라는 주제로 당시 학술진흥재단의 기초학문과제를 수행하면서 문헌과 이미지 자료 수집을 위해 2002년과 2003년 두 차례 우크라이나 전역을 방문했었다. 2007년 키이우국립대학교에서 개최된 국제학술회의에 참가한 것이 우크라이나의 마지막 방문이었다. 이후 우크라이나를 잊고 살았다. 크림반도를 러시아가 합병한 2014년에는 타슈켄트에서 ‘인하대학교 타슈켄트캠퍼스(IUT)’ 설립에 집중하느라 우크라이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여유가 없었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는 미국의 예견대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오랜 시간 잊고 있었던 우크라이나가 매일 언론에 보도되고 전쟁터가 돼 버린 키이우, 하르키우, 오데사 등이 TV 뉴스에 보였다. 매일 틈만 나면 우크라이나 전황을 알아보고자 인터넷을 들어갔다 나갔다가를 반복하고 있다.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으로 키이우를 비롯한 동남부의 주요 도시가 파괴되는 보도사진을 보면서 지난 세 차례 우크라이나에서 보낸 나의 아름다운 추억들도 같이 파괴됐다. 

몽골의 침략 이후부터 800여 년 가까이 우크라이나 민중들은 자신들의 땅을 지켰다. 지금도 이들은 목숨을 걸고 러시아에 항전하고 있다. 하루속히 전쟁이 끝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고 평화를 찾은 우크라이나를 꼭 다시 방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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