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권홍 법률사무소 국민생각 고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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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례없이 치열했던 대선이 마무리되고 통합 지방자치 선거를 바로 눈앞에 두고 있다. 광역단체장이나 기초단체장만큼 때로는 그보다 더 중요한 선거가 교육감 선출인데 특이한 기표 방식으로 인해 선거 결과의 정합성 문제가 제기된다.

교육감선거가 복잡해진 원인은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이라는 허울 좋은 헌법 조항에 있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으로 인해 교육감 후보 선출에서 정당의 개입이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에 의해 금지된다. 

과거에는 기표용지 후보자 명단이 추첨을 통해 정해졌는데, 후보의 정치적 성향이나 능력과 무관하게 1번 또는 2번에 당첨되면 당선 확률도 높고 선거비용 보전도 가능했다. 이런 로또 순번제의 문제점을 시정하기 위해 2014년부터 교육감선거부터 교호순번제가 도입됐다.

교호순번제는 투표용지에 후보자의 이름을 세로가 아닌 가로로 나열하고, 각 기초의원 선거구마다 후보자 이름을 배열하는 순서가 다른 투표용지를 배부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유권자들의 교육감선거에 대한 관심이 시장이나 구청장선거에 비해 낮고, 대다수 유권자들이 1번 또는 2번 후보를 선택하는 우리나라 선거문화에서 교호순번제는 유권자들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결과에 이를 수 있다. 보수적 유권자는 교육감 후보도 2번이 보수라 생각하고 이유 불문하고 두 번째 칸에 인쇄된 후보에게 투표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진보적 유권자는 첫 번째 칸에 한 표를 행사할 것이다.

교호순번제가 교육감선거의 정치적 중립이나 로또 선거를 방지하는 수단은 되지만, 선거의 더 중요한 가치인 유권자의 진실된 의사 반영에는 실패한 제도로 보인다.

한편으로 교육감 후보들이 자기 이름을 널리 알리면 될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광역단체장·기초단체장·광역과 기초의원까지 선출하는 동시선거 속에서 교육감 후보자들이 이름을 알리는 것도 쉽지 않다. 복잡하고 어려운 선거법으로 인해 신인들이 자신의 인지도를 높이기도 어렵다. 결국 인지도가 높은 후보 또는 현역 교육감에게 구조적으로 유리한 선거제도다.

올해처럼 대통령선거가 먼저 치러지고, 보수 후보와 진보 후보의 표차가 얇은 종이 한 장에 불과할 정도로 치열하다면 지방선거는 더더욱 보수·진보 성향에 따른 투표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교육감선거 시기 및 투표 방식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으로 보인다. 지방자치단체선거와 교육감선거의 시기를 달리하는 방법도 있다. 시기를 달리하면 교육감선거가 지방선거의 영향에서 멀어지고 교육감 후보들에 대한 유권자들의 관심이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시각을 달리해서, 많은 나라들이 시장·도지사의 교육감 임명제를 운영하고 있는 사실이나 교육자치와 지방자치가 구별될 수 없다는 통합론적 해석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교육감을 시장·도지사 등이 임명하거나 러닝메이트제를 도입함으로써 교육행정과 일반행정을 구별하지 않고 하나의 자치사무로 구성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지방자치의 본질적 내용이나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것으로 해석되지 않는다. 

최근 인천은 물론이고 전국적으로 중도·보수 교육감 후보 단일화에 대한 요구가 높다. 과거 교육감선거에서 진보 진영은 단일 후보로 선거에 임하는 반면 중도·보수 진영은 후보들이 난립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진보 교육감들이 다수 당선됐다.

특히 교육감선거에서는 "진보는 분열로, 보수는 부패로 망한다"는 말이 무색하다. 

교육감선거도 본질적으로 정치와 이념적 성향에 기반하면서 막대한 선거비용과 선거를 도운 사람들에 대한 자리 또는 대우 문제가 얽히고설킨 싸움이다. 대통령선거나 지방자치선거와 다를 것이 없다.

그런데 보수 후보들은 왜 단일화에 소극적일까. 대의보다는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원인일 수도 있고, 교호순번제라는 제도의 부작용일 수도 있다. 정치인인 교육감 후보들이 이기적인 것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교호순번제 아래에서 선거비용을 거의 쓰지 않고도 후보 등록만 하면 일정 수준의 득표가 가능하다는 현실이 또 다른 도박의 원인일 수 있다. 

제도적 맹점이 단일화를 거부하는 무기 또는 유리한 협상 카드로 활용되고 있다. 진보와 보수의 진영 논리를 떠나 제도의 부작용이다.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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