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피

120분 / 범죄 / 15세 관람가

이 영화는 1990년대 초 부산 변두리의 작은 포구 ‘구암’을 두고 벌어지는 밑바닥 건달들의 생존 싸움을 담았다. 혈기 넘치는 청년 건달이 조직의 생리를 뼈저리게 느끼고 스스로 절망해 가는 과정을 그린다. 건달이 중심에 서 있긴 하지만 사실은 인생 밑바닥, 즉 사회시스템에 편입되지 못한 부적응자의 인생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구암의 관광호텔 사장 손 영감(김갑수 분) 밑에서 일하는 희수(정우)는 불혹이 될 때까지 건달 생활을 했으면서도 뭐 하나 이룬 것 없는 자기 신세가 갑갑하다. 목돈을 만져 보기는커녕 도박 빚만 늘어가고, 오랫동안 사랑한 여자와 결혼까지 앞두게 되자 더 큰물로 가기 위해 결단을 내린다. 마약을 유통하던 라이벌 용강(최무성)을 경찰에 넘기는 것. 방해되는 인물들은 직접 살해하기까지 하면서 희수는 점점 더 괴물이 돼 간다.

손 영감을 떠난 그는 성인오락실 사업을 하며 돈을 벌게 되지만 이후에도 계속해서 다른 조직과의 싸움에 휘말린다. 범죄와의 전쟁 이후 새로운 구역을 집어삼키기 위해 물색 중인 영도파 건달들은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구암에 눈독을 들이고, 영도파 에이스이자 희수의 오랜 친구 철진(지승현)이 은밀히 접근한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희수는 갈등하고, 조용하던 구암을 차지하려는 밑바닥 건달들의 치열한 생존 싸움이 시작된다.

전쟁을 거듭한 끝에 그는 철진에게서 실은 이 모든 것이 항구를 탐내는 두목이 짜 놓은 ‘그림’이라는 사실을 듣는다. 너무 많은 피를 손에 묻힌 그는 자기혐오에 괴로워하지만, 결국 끝까지 갈 때까지 더 많은 피를 보고야 만다.

이 영화는 김언수의 동명 소설이 원작으로, 영화감독을 꿈꿨던 천명관 작가의 연출 데뷔작이다. 소설이 원작인 만큼 영화의 세계관과 인물 구도가 탄탄하다. 과거 어느 시점, 어느 도시를 배경으로 서로 의리를 지키지 못하고 찌르고 찔리는 건달들의 이야기가 마치 현실에서 벌어진 것처럼 그럴듯하게 펼쳐진다. 23일 개봉.

  홍봄 기자 spring@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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