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명철 우즈베키스탄 국립 사마르칸트대 교수
윤명철 우즈베키스탄 국립 사마르칸트대 교수

새 정부가 집무실을 용산으로 이전한다고 발표했다. 그 일을 놓고 또 진영 논리를 갖고 찬반논쟁이 벌어진다. 수도가 아닌 집무실 이전이다. 그러니까 개경에서 한양으로 천도하는 일이 아니라 경북궁에서 덕수궁(경운궁)으로, 혹은 덕수궁에서 아관으로 파천하는 것과 유사하다. 때문에 큰 문제는 아니다. 그래도 작은 일은 아니다. 보통 사람들이 명분상의 주인만이 아닌 실질적인 행위의 주체로 변신한 현대 한국에서 정치행위의 중심인 집무실을 이전한다는 일은 결코 작은 의미가 아니다. 더구나 청와대는 입지상 한양의 궁궐인 경복궁의 연장, 일본 총독부의 연장이므로 도성 밖인 한강가의 용산으로 이전하는 일은 시대의 전환이라는 상징성도, 정치권력의 성격도, 관료시스템과 백성이 아닌 국민 또는 시민을 대하는 인식에도 큰 변화를 의미한다.

한 나라에는 수도가 있다. 조선시대에 수도(와성, 도성)는 한양이었고, 경복궁은 왕의 집무실과 왕비 등 가족들이 사는 궁궐이었다. 도읍 터를 어디로 선택하는가에 따라서 국가의 운명, 백성들의 생존과 생활이 달렸다. 때문에 전근대 사회라 할지라도 누구나 할 것 없이 자기 또는 자기 세력의 이익을 우선으로 고려하면서도 가능한 한 수도의 보편적인 특성에 맞는 곳을 고르려고 애를 썼다. 조선만 하더라도 고려의 경험을 토대로 한양을 최종으로 선택할 때까지 고심을 하고, 몇 번 실험도 했고, 태조도 직접 찾아와 살펴봤다.

왕성 가운데에서도 특히 집무실에 해당하는 ‘궁(宮)’ 자리는 매우 중요했다. 혈(穴) 중의 혈(穴), 궁(穹) 가운데 궁(穹)인 것이다. 전근대 개념을 적용하면 용 가운데 황룡이고, 황룡이 문 여의주 자리이다. 사람의 인체로 말하면 정수리요, 그 중에서도 백회혈에 해당한다. 또 백산들 가운데 태백산(백두산)이고, 강 가운데에서 한강이다. 지정학적으로 ‘core’, 지경학적으로 물류의 ‘hub’, 지문화적으로 문화의 ‘i·c’이다. 멀치아 엘리아데의 이론을 적용하면 모든 공간의 원형(archetype)이고, 신령스러운 터이다. 따라서 집무실의 터와 성격에 따라서 나라의 많은 부분들이 달라질 수 있다. 

한양과 경복궁은 농업국가, 전제국가, 관료국가, 방어중심의 쇄국체제, 은둔문화에는 적합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결정적인 한계들이 있었고, 때문에 필자는 과거부터 이러한 대안들을 발표했다. 한양은 사대문, 사소문과 연결된 육로를 확장하고 신도로를 개설해서 사통팔달하게 만들어야 했다. 한강에는 자연 나루터가 아닌 부두를 신축하고, 창고·시장 등의 시설을 보완해 항구들을 개발해 개경의 ‘벽란도’처럼 국제적인 항구로 만들 필요가 있었다. 청계천을 준설해 수로망으로 활용하고, 고구려의 평양성처럼 용산강에서 남대문까지도 수레길이나 조선초에 하륜이 제안했던 것처럼 운하를 건설해야 했다. 그리고 외곽 도시들, 특히 인천(능허대), 김포, 강화 등에 항구도시들을 개발해 한양과 유기적인 시스템을 구축했어야 했다. 또 강변 방어체제를 촘촘하게 쌓고 강상수군도 양성해야 했다. 만약 그렇게 실천했다면 한양은 국제적인 수도가 될 수 있었고, 조선과 조선 사람들의 운명도 많이 달랐을 것이다.

지금은 세상이 변했다. 문명의 질도 달라졌다. 무엇보다도 한국인들도 예전의 한국인들이 아니고, 질적으로 수준이 높아진 시민들이다. 이젠 개방형, 교류형, 진출형 사회이고 소수 지식관료 중심에서 다수의 실천적 생활인들이 주체가 되는 사회로 변했다. 서울은 이미 세계에서 위상이 매우 높아진 대한민국의 수도이다. 나라에서나 국제사회에서 큰 역할을 하는 도시로 변신할 수밖에 없다. 도시 구조, 시스템, 상징, 존재 의미에 이르기까지 전면적으로 개편할 때가 왔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회를 만든 주체인 국민들에게서 한시적으로 경영을 위임받은 CEO의 집무실은 거기에 걸맞아야 한다. 그러한 면에서 용산은 필자의 역사관과 ‘터(field&multi core)이론’에 따르면 몇 가지 면에서 비교적 적합하다.

원래가 서울 지역은 ‘수륙교통’과 ‘해륙교통’이 교차되면서 상호호환성을 지닌 강해도시이면서 안정성과 미학적 가치가 뛰어난 도시였다. 산기슭의 풍수터인 청와대와 광화문, 한강 내부의 여의도 국회의사상, 그리고 중간인 한강부두 용산의 대통령 집무실을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면 상징성이 좋을 듯하다. 필자는 집무실의 용산 이전을 계기로 서울은 물론이고 수도권 전체도 새 시대 새 문명에 걸맞은 방향으로 재구성하는 다양한 작업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유엔(UN)의 아시아 분소를 설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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