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영유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양영유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선출된 권력은 대의민주주의의 꽃이다. 그 꽃을 활짝 피게 하는 것은 권력의 책무다. 5월 10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는 새로운 5년을 시작한다. 득표율 ‘0.73%p’ 차이로 신승한 윤 당선자는 겸손하게 국민의 뜻을 받들고 화합과 통합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그런데 새 정부 출범이 코앞인데도 그런 기대감은 무르익지 않는다. 신구 권력의 셈법, 공수 교대하는 여야의 격돌, 6월 1일 지방선거를 앞둔 속내가 2022년 대한민국의 봄을 어지럽힌다. 봄이 왔건만 봄인 아닌 것이다. 

윤 당선자가 갈라진 민심을 수습하고 통합의 길을 개척하려면 내각을 잘 구성해야 한다. 선출된 권력이 짜는 내각은 국정 운영의 리트머스 시험지다. 윤 당선자는 "자리 나눠 먹기 식으로는 국민 통합이 되지 않는다. 깜짝 발탁이나 보여 주기가 아닌 철저한 능력 중심의 인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형세를 보면 아직은 미덥지가 않다. 정부 조직 개편을 둘러싼 로비전, 대선 캠프 참가 인사들의 권력 다툼,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의 화학적 결합 문제 등이 표출되고 있어서다. 기득권 세력에 휘말려 구태 정치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된다. 대통령직 인수위 구성부터 ‘오서남(오십대, 서울대, 남자)’이라는 말이 나돌았으니 말이다. 

역대 정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이명박정부는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박근혜정부는 ‘성시경(성균관대·고시·경기고)’, 문재인정부는 ‘캠코더(대선캠프·코드인사·더불어민주당)’ 인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특히 문재인정부는 현재 18명의 장관 중 8명이 민주당 의원 출신이다. 내각제도 아닌데 말이다. 현 정부는 폭넓은 인재 등용에 실패했다. 능력보다는 정실 인사에 매달렸다. 자신감이 부족해서다. 내 편이 아니면 불안한 박약함이 인재 등용의 편식을 초래한 것이다. 윤 당선자가 분열에서 통합으로, 갈등에서 화해로 나가는 포용의 리더십을 실현하려면 라이벌과의 동거도 주저해선 안 된다. 경쟁자까지 끌어안은 에이브러햄 링컨의 라이벌팀(Team of rivals) 내각, 만델라의 ‘용서와 화합’의 담대한 정치를 되새겨야 한다. 

통나무 오두막집에 태어난 ‘시골뜨기’ 링컨이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이 된 것은 겸손과 포용의 힘이었다. 무명이던 링컨은 대통령에 당선된 뒤 자신보다 뛰어난 정치인들을 내각에 등용했다. 경선 라이벌이던 슈어드는 국무장관, 체이스는 재무장관, 베이츠는 법무장관에 임명했다. 링컨은 야당(민주당) 출신인 기디언 웰스는 해군장관, 몽고메리 블레어는 우정장관, 에드윈 스탠턴은 전쟁장관에 각각 임명했다. 링컨의 라이벌이거나 정적이었던 이들은 모두 링컨보다 더 유명하고, 더 많이 공부했으며, 더 경험이 풍부했다. 링컨은 "유능한 인재들이 나라에 공헌할 수 있는 기회를 내가 빼앗을 권리는 없다"고 말했다(도리스 컨스 굿윈의 「권력의 조건」 중에서). 그리고 ‘마음을 얻는 것이 권력의 시작’이라는 철학으로 인재 등용의 전형을 보였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는 어떤가. 처참하게 인종차별을 받던 청춘 시절, 격렬하게 인종차별 저항운동을 했다. 그러다 종신형을 선고받고 26년간 옥살이를 한 끝에 1990년 72세 나이에 석방됐다. 그 기나긴 세월, 만델라의 마음에 백인에 대한 원한이 켜켜이 쌓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1994년 남아공 대통령에 당선되자 백인을 원망하지 않고 끌어안았다. 전임 백인 대통령들을 단죄하는 보복의 정치를 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과 자신의 가족, 지지자들을 핍박했던 세력과 함께 일하는 포용과 화해의 정치를 했다. 성인(聖人)의 정치다. "용기 있는 사람은 용서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만델라의 말이 이 시점에 떠오르는 건 우리도 그런 협치와 통합이 절실해서다.

윤 당선자는 시험대에 올랐다. 문재인 대통령과의 만남을 계기로 국정 운영의 방향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그 첫 시험대는 1차 내각 구성이다.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 후보자의 능력과 도덕성을 투명하게 걸러내 적재적소에 등용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인사 추천과 검증 작업을 분리한 것은 바람직하다. 요체는 결국 윤 당선자의 뚝심이다. 링컨과 만델라의 담대한 포용·화합·통합의 리더십을 되새기기 바란다. 윤 당선자는 정치신인이다. 정치적 빚이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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