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누구나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가 있습니다. 그 욕구가 있기에 꿈을 이루기 위해 열정을 쏟고 바쁜 일정을 기꺼이 소화해 내며 자신에게 주어진 책무에 최선을 다해 살아갑니다. 남들보다 더 높이 올라가고, 더 멀리 가는 것이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길이라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하루하루를 쉼 없이 달려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왠지 모르게 몸과 마음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몸은 지쳐 있고 마음 역시 공허함과 좌절감으로 가득합니다. "나는 왜 사는 걸까?"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습니다. 나에 대한 남들의 기준은 높은데 그 기준에 내가 도저히 맞출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하면서 자신의 무력함을 자책하며 절망하곤 합니다. 

어쩌면 이런 증상은 나의 지친 마음이 외치는 간절한 절규인지도 모릅니다. 마음이 "나, 힘들어요. 주인님. 그러니 나 좀 위로해 주세요!"라고 외쳐 보지만, 주인인 내가 알아듣지 못하니까 몸에 고통을 줌으로써 주인인 내가 알아듣기를 호소하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이제라도 내 마음속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내 마음이 얼마나 힘들어했는지를, 얼마나 외로웠는지를 봐야 합니다. 그리고 위로해 줘야 합니다. 그동안 고생 많이 했다고,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입니다. 

큰 기업의 임원으로 승승장구하던 제 친구가 퇴직한 어느 날, 저를 찾아와 담소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퇴직 후 시간 여유가 생기자 그동안 나가지 않던 고교 동창회에 모처럼 참석했다고 합니다. 거기에서 젊은 시절, 같은 기업에 입사했던 동창을 우연히 만났습니다. 직장에서 초고속 승진을 한 자신과는 달리 그는 만년(?) 과장으로 지내서 그런지 직장에서는 교류가 거의 없었습니다. 아마 맡은 일이 서로 달라서 그랬을 겁니다. 동창들의 관심은 온통 임원 출신의 친구에게로 쏠렸습니다. 친구는 오랜만에 보는 동창들 사이를 오가며 인사를 나누다가 잠시 화장실을 갔습니다. 그곳에서 만년 과장으로 지냈던 그를 보자 인사를 반갑게 건넸지만, 그는 불쾌한 표정으로 한마디 내뱉었습니다. "너, 왜 그렇게 나대냐? 임원 출신이라 그러는 거냐?" 이 말을 듣고 무척 서운한 감정이 들었다면서 친구는 제게 아마도 그가 열등감에 사로잡혀서 그런 말을 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랬을 겁니다. 오랜만에 만난 동창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은 욕구는 같았을 텐데, 그런 대접을 받는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제 친구였으니까요. 

그런데 친구의 이어진 말에서 저는 큰 배움을 얻었습니다. 동창 중에 특히 가깝게 지내온 친구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그 친구가 이렇게 말하더라는 겁니다. "쟤가 아마 무척 외로운가 봐." ‘나대지 말라’는 그의 말을 자신에 대한 비난이나 비아냥으로 받아들였을 때는 분노가 솟구쳐 올랐지만, 그가 ‘외로워서’ 또는 ‘인정받고 싶어서’ 한 행동이라고 생각을 바꿨을 때는 분노가 아니라 오히려 그에 대한 측은한 마음이 들었을 겁니다. 말 한마디가 이렇게 우리의 행동을 바꿔 놓는다는 것이 놀랍지 않나요?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우리 자신에게도 격려와 위로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인생아, 웃어라」(원영 스님 저)에서 저자는 틱낫한 스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당신 몸에게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당신의 감정과 생각에게도 당신이 필요합니다. 당신의 고통도 당신이 바라봐주고 어루만져 주기를 원합니다. 그러니 빈 거리에서 헤매지 말고 당신의 마음의 집으로 돌아가세요. 당신이 거기 진정 머물 수 있도록, 당신이 진정 사랑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만년(?) 동창에게도, 그리고 세상 모든 사람에게도 필요한 깨달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내가 인정받고 싶듯이 남들도 그러할 것이라는 통찰이 "쟤가 무척 외로운가 봐!"란 너그러운 언어를 탄생시킬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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