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학 인천세원고 교감
전재학 인천세원고 교감

컬럼비아대학의 정신의학과 교수 켈리 하딩(Kelli Harding)은 저서 「다정함의 과학」에서 ‘다정함의 힘’을 강조한다. 그는 책 말미에 흥미로운 실험을 소개했다. 1978년 사이언스 저널(Science Journal)에 실린 로버트 네렘(Robert Nerem)박사 연구팀의 일명 ‘토끼 실험’이다. 연구팀은 고지방 식단과 심장건강의 연관성을 규명하기 위해 비슷한 유전자의 토끼들에게 몇 달간 고지방 사료를 먹였다. 이후 콜레스테롤 수치, 심장박동수, 혈압을 측정한 결과 유독 한 무리의 토끼만 혈관에 쌓인 지방 성분이 다른 그룹보다 60%나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차이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바로 ‘다정함’에서 온 결과였다. 이 그룹의 토끼에게 사료를 준 연구원은 매우 다정한 성격으로 먹이를 줄 때마다 따뜻한 말을 걸거나 쓰다듬어 줬다고 한다. 하딩은 이를 ‘토끼 효과(The Rabbit Effect)’라 불렀다. 

 이는 일찍이 ‘밥 실험’에서도 드러난 적이 있다. 이 실험은 똑같은 조건으로 밥을 담아 두고 한쪽에는 좋은 말, 다른 한쪽에는 나쁜 말을 꾸준히 해 주면 밥에서 피는 곰팡이의 모양과 양이 확연히 달랐다는 것이다. 예컨대 좋은 말을 하는 통에는 "사랑해, 고마워, 네가 최고야, 넌 정말 멋져~"처럼 좋은 말만 해 주고, 나쁜 말을 하는 밥에게는 "넌 미워, 싫어, 저리 가" 등등 나쁜 말만 해 준 것이다. 그 결과 확실히 나쁜 말 통에 곰팡이가 훨씬 더 많이 피고, 보기 싫은 곰팡이들이 많았다. 그 차이는 바로 다정한 말의 힘이 주는 결과였다. 한낱 미물도 이렇게 다정한 말과 행동에 따라 엄청난 차이를 드러낸 것이다. 

 이를 인간관계의 사례에서 찾아보자.

 1950년대 후반 미국 중년 남성들의 심장마비로 인한 사망률이 급증하던 시대에 오클라호마 의대 교수인 스튜어트 울프는 우연한 기회에 펜실베이니아 지역의 로제토 마을을 주목하게 됐다. 이곳 주민들은 심장발작 환자가 거의 없었고, 연간 사망률도 인근 마을보다 50% 낮았다. 그 원인이 무엇일까? 그는 마을 주민들의 식단, 음주 및 흡연 습관, 유전자 등을 분석했다. 그런데 로제트 마을의 주민들은 싸구려 담배와 소시지를 즐기고 생각보다 과체중인 사람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이런 결과를 낳았을까. 그것은 바로 로제트 마을 주민들의 생활방식에서 나온 결과였다. 그들은 길거리에서 정답게 대화를 나누고, 아이들은 조부모와 시간을 보냈으며, 여러 세대가 모여 식사를 함께했다. 그들의 끈끈한 유대감, 즉 ‘다정한 주민’은 단절과 고립의 지역민들과 확연히 달랐다. 

 우리는 장기간에 걸친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거리 두기와 격리를 일상에서 반복 시행하고 있다. 코로나 초창기에 학교에서는 사상 초유의 온라인 수업과 대부분의 교육활동이 온라인으로 이뤄졌다. 이렇게 3년 차에 이른 지금, 우리 사회의 빈부 격차만큼이나 청소년 사이에는 학력 격차·학력 저하가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때 온라인 수업에서 학부모들의 간절한 소망이자 불만은 교사들의 피드백(feedback)이었다. 여기엔 교과 진도 나가기에만 집중하는 것보다 다소 느리더라도 학생 개개인에게 자상한 피드백을 요구한 것이다. 피드백은 다정한 질문과 대화를 통한 소통, 문제 해결이 기반이다. 인간적인 유대감, 다정함에 근거한 소통은 최근 우울증과 정서장애 현상을 겪는 청소년들의 학습에서도 시급함을 보여 주고 있다.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 지속적인 공격과 혐오, 차별이 악화됐는가? 여기엔 사소하지만 반복되는 다정함, 공감, 연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상대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조금 더 웃어주고, 잘 들어주며 공감하는 것. 이것은 이미 토끼 실험과 밥 실험에서 나타난 결과가 말해 주고 있다. 우리의 다정함과 미세한 친절은 우리 사회를 더욱 행복한 사회로 만드는 토끼 효과로 작용할 것이고, 오늘날 힘겨워하는 우리 청소년들을 교육하는 핵심 동력이 될 것으로 믿는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