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락기 전 한국시조문학진흥회 이사장
김락기 전 한국시조문학진흥회 이사장

세상은 온통 꽃비로 난분분하다. 얼마 전 피는가 했더니 만개해 벌써 지는 꽃들도 있다. 매화, 벚꽃은 물론이려니와 주먹만 한 목련꽃 이파리는 제 흥에 겨워 속살을 드러내며 흩날린다. 눈부시도록 희디희다 못해 뒤집어진 모습들이 야하다. 백목련 꽃떨기들은 취객처럼 널브러져 길바닥까지 흥건하다. 백화난만이다. 요즘은 예전과 달리 모든 봄꽃들이 일제히 피어나는 것 같다. 세월이 점점 더 빨리 간다고 느끼는 나이 탓도 있겠지만, 지구온난화로 인한 영향도 없지 않으리라 여긴다. 

 개화에 이어 따스한 봄볕과 꽃바람은 초목의 애순들을 깨운다. 연록빛 새싹들은 앞다퉈 고개를 치민다. 봄밤이면 더 야단이다. 하루가 다르게 주변이 파래진다. 새색시같이 수줍은 명자꽃도 밤사이 막 선홍빛을 내뿜는다. "아주 저 아래 야경은/ 붉은 명자 꽃잎과 그 연노란 꽃술이/ 밤 가득히 흩뿌려져 뭇별처럼 반짝이누나/ 어두워질수록 더욱 반짝이는 명자 꽃잎과 그 꽃술은/ 아, 정녕 세상이라는 검정 천에 온통 꽃수를 놓았구나!/ 야경은 스쳐 흐르는/ 비록 꿈꾸는 신기루에 불과할지라도." 젊은 한철, 하강하는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서울 밤경치를 그린 것이다. 졸음 자유시집 「바다는 외로울 때 섬을 낳는다」에 실린 작품 ‘꿈꾸는 야경’ 전문이다. 이상은 4월의 생기발랄한 주변 모습이다. 

 한편, 이달 초 생활고로 초등생 두 아들을 교살한 엄마의 구속 소식은 너무 가슴 아프다. 1960년 당시 부정선거에 항거해 주모자들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한 4·19혁명도 이달에 발생했다. 1차 세계대전 직후 황폐해진 유럽 사회에 T.S.엘리엇이 읊은 ‘황무지’의 죽음 속 가장 잔인한 달도 4월이다.

 이처럼 삶과 죽음이 함께하는 4월의 봄철 한때, 우리들 일상사의 가상과 실상의 경계는 어디쯤일까. ‘실상(實相)’은 만물의 참모습이며, ‘가상(假相)’은 덧없는 현세 또는 헛된 겉모습이라 해 본다. 앞에 예로 든 봄날 꽃들을 살펴본다. 우선 명자꽃은 실상이요, 서울 야경을 비유법으로 묘사한 그 꽃밭은 가상이다. 아울러 실제로 핀 봄꽃들은 실상이지만, 머잖아 다 지고 말 덧없는 현상으로 보면 가상이다. 나아가 실상이라 한 그 봄꽃의 본질적 속성(생성원리나 구성요소 등)을 들여다본다. 진여니 본체니 해 ‘실상’의 개념도 모호해진다. 문제는 실상 대 가상을 따지는 것이 일상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이다. 예로 든 명자꽃과 서울 야경은 실상이든 가상이든 다 기쁨을 준다. 비록 신기루에 불과한 야경의 명자꽃밭일지라도 한순간 열락 세상에 잠길 뿐 무슨 폐해는 없다. 각박한 인간사에 카타르시스로 기능한다.

 그런데 이를 작금년 우리나라 정치상황에 빗대어 살펴보면 어떠할까. 지난달 대통령선거로 이른바 여야 정권 교체가 됐지만, 지난해 4월 국회의원 총선에 이어 이번 대선에서도 부정선거 의혹이 상당하다. 부정선거 수사 최고의 공안검사 출신인 황교안 ‘부정선거방지대’ 대표는 「아! 대한민국」이란 4·15 부정선거 백서를 발간, 다양한 증거를 제시했다. 나는 2020년 7월 당시 ‘거악은 정의인가’라는 기호일보 칼럼으로 이를 설파한 바 있다. 황 대표는 이번 대선도 부정선거이며, 연일 중앙선관위원장의 사퇴를 주장할 만큼 부정선거 규명 및 척결 의지가 드높다. 이상한 일은 이번 대통령 당선자 소속 야당 대표를 비롯한 집행부는 이를 공식 인정하지 않는 점이다. 당선자가 5월 대통령 취임 이후 이를 근절하고 예방할 특단의 대책을 마련, 시행하는지 지켜볼 일이다. 

 적어도 부정선거 주동자들을 엄단함과 아울러 사전투표제 폐지, 전자개표 대신 전면 수개표 실시 및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대법원의 엄격한 분리 운영(법관의 선거관리위원 겸직 금지)을 해야 한다. 만일 이를 이행한다면 실상이요, 관리 부실로 인정해 적당히 뭉개는 정치상황이 된다면 가상이라 하겠다. 이 가상은 민주정치에 심각한 파탄을 초래하고, 가짜 민의로 엮어 국민들을 종처럼 부려먹을 것이다. 그나마 목숨 걸고 투쟁해 온 부정선거 방지운동 시민들 도움으로 정권 교체가 된 점까지 간과하게 돼 부정선거 주동 집단과 다름없이 역사에 대역죄인이 될지 모른다. 부디 봄꽃 세상의 가상처럼 정치사회에도 폐해 없는 가상이 오기를 고대한다. 시조 올린다.

- 꽃비의 달빛 -

달빛에 홀려들어
저도 몰래 무너지어
 
꽃 눈송이 온 하늘이
땅에 잠시 내렸다가
 
봄 한철
꽃 천지 펼치다
달꽃으로 사위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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