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러시아의 국제정치학자로 푸틴의 브레인 역할을 하는 알렉산드르 두긴은 그의 저서 「지정학의 기초」에서 ‘유라시아 구상’을 위해 중국은 해체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反)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귀가 솔깃해질 만하다. 그는 만주와 신장위구르, 티베트, 몽골은 러시아의 보호령이 돼야 한다고도 했다. 뭬라! 중국의 해체가 러시아의 영토 확장을 위한 방편이라니.

두긴은 한편으로 "독립국가 우크라이나는 극도로 위험하고, 독일은 러시아 자원 의존도를 심화시켜야 한다"고 했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에서 두긴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능히 짐작이 간다. 

하지만 그의 주장이나 역할이 장차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헛소리(?)를 늘어놓았는지 아니면 적어도 러시아의 대외정책에서 뼈대를 만드는 성과를 올릴지 미지수란 얘기다. 그렇다고 러시아에 유리한 국면이 벌어질 것 같지는 않다. 세계 2위라던 군사무기 체계도 핵을 빼면 완전히 ‘뻥’이었음이 드러났고, 서방 세계의 경제 제재로 공장 문이 닫히고 있으며, 경제를 지탱해야 할 산업 시스템이 비틀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 자신들의 ‘밥’인 듯이 대했던 중국에 대해 허리를 굽히며 경제·군사적 지원을 호소하는 형편인데다, 이미 국력의 차이는 비교할 수조차 없이 벌어졌다. 중국의 국내총생산이 러시아의 10배에 달한다는 소식이다. 경제 규모만이 아니라 기술 격차는 이미 따라잡기 불가능한 정도로 크게 벌어졌다. 결국 러시아는 중국을 해체하기엔 불가능하려니와, 되레 ‘중국생활권’에 편입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야말로 최악의 시나리오다.

여기서 최근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을 바라보는 중국의 진정한 속내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우선 군사력에서 월등한 러시아가 약한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는 점에 이번 전쟁의 잘잘못은 이미 가려졌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의도가 무엇이든 침략 전쟁을 해서는 안 된다는 명제는 국제사회의 공통된 인식이 됐다.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러시아에 퍼붓는 비난 여론이 그 증거다. 

그런데 중국은 어정쩡하다. "모든 국가의 주권과 영토는 존중돼야 하고 유엔 헌장은 지켜져야 한다. 우크라이나 문제는 복잡하고 특수한 역사적 이유가 있다. 대화와 협상을 통해 균형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지도자와 외교 관계자들이 내놓은 입장인데 무얼 말하고자 하는지 불분명하다. 아니 미국과 유럽의 동진이 러시아의 안보 불안을 키웠고, 사건의 근본 원인을 제공한 미국과 유럽이나 대화로 해결하지 않고 무력을 사용한 러시아 모두 잘한 게 아니라는 투다. 편들지도 않고 분명한 입장도 없는 셈이다. 러시아 편을 들고 싶지만 미국과 유럽에 완전히 등을 돌릴 수는 없고, 나름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택한 게 양비론적 설명인 것이다. 정말로 중국의 속내가 이런 걸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인 지난달 말 쑨장 남경대학 교수 등 중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5명이 ‘우크라이나 침공은 불의의 전쟁’이라고 비판하는 입장문을 온라인에 띄었다. 이 비판문은 2시간이 채 안 돼 삭제됐다. 지난 12일에는 중국 국무원 산하의 연구소 부소장 후웨이가 "이번 전쟁에 어부지리는 없다. 중국은 주권과 영토의 존중이라는 일관된 입장을 감안해 중립 입장을 버리고 세계 다수 국가 편에 서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미국 카터센터가 발간하는 ‘미·중 인식 모니터’라는 웹진의 중국어판에 기고했다. 이 글이 중국 온라인상에서 주목을 받자 곧 중국 내에서 해당 사이트에 대한 접근이 차단됐다. 

두 사례 모두 그리 과격하거나 선동적으로 중국의 태도를 비난한 것이 아닌 원론적인 지적임에도 중국 당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금 세계는 미국이나 러시아, 중국 등의 정보기관에서 자기들 입맛에 맞도록 생산한 첩보들을 연일 온라인에 올리며 여론전을 펴고 있다. 그럼에도 러시아와 중국에서 내놓은 내용들은 뒤로 밀린다. 자기들이 보여 주고 싶은 것만 골라서 보여 주고, 싫은 건 차단하는 방법을 쓰다 보니 믿음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친구를 욕하자니 불편하고, 감쌌다가는 함께 싸잡혀 비난받을 것이 두렵기도 하지만 양패구상(兩敗俱傷)을 기다리는 전형적인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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