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현린 주필
원현린 주필

오늘은 제59회 법의날이다. 정부는 ‘권력의 횡포와 폭력의 지배를 배제하고 기본 인권을 옹호하며 공공복지를 증진시키는, 소위 법의 지배가 확립된 사회의 건설을 위하여 일반 국민에게 법의 존엄성을 계몽’하고자 법의날을 제정했다. 

법원·검찰·변호사회 등 법조계는 해마다 법의날이 돌아오면 기념식을 열고, 수장들은 법과 원칙이 지켜지는 정의로운 사회 구현에 앞장서겠다는 등의 잘 다듬어진 원고를 읽어 내려가곤 한다. 하지만 휘발성 먹물로 쓰여진 이러한 기념사는 행사가 끝남과 동시에 곧 허공으로 증발하곤 했다. 

법의날 제정 취지가 무색하다. 한동안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 유행하더니 ‘검수완박(檢搜完剝)-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등 보도 듣도 못하던 신조어가 속출하는 우리 사회다. 

검찰은 우리 사회의 법과 질서를 바로 세우고 국민의 안녕과 인권을 지키는 국가 최고 법 집행기관이다. 이러한 검찰이 지금 민주당의 검수완박 입법 추진을 앞에 두고 위기를 맞았다. 위헌(違憲) 소지까지 있다며 법조계와 학계에서도 우려를 나타낸다. 특히 검찰은 상기 추진 법안이 입법화될 경우 형사사법체계를 송두리째 무너트리는 ‘의회의 폭거’라며 반기를 들었다. 

이러한 와중에 박병석 국회의장이 검수완박에 대한 중재안을 제시하자 여야가 받아들여 합의 처리키로 했다. 하지만 국회에서 입법이 이뤄지기까지 험난한 일정이 예고된다. 검찰은 이에 반발, 지휘부가 총사퇴하는 강수로 맞섰다. 검찰총장을 비롯, 대검 차장과 일선 고검장들이 집단 사표를 냈다. 검찰 지휘부가 일괄 사퇴하는 검찰 역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전국의 평검사들도 대표회의를 열고 ‘검수완박’은 ‘범죄 방치법’이라는 극단 표현을 구사해 가며 대항하고 있다. 검사들은 또 국회의장이 제안한 중재안을 놓고도,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해 입법화되면 "정치인 발 뻗고 잘 수 있게 된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또 한 검사는 "여당의 검찰 수사 회피 목적 및 이에 대한 야당의 야합에 의해 졸속으로 처리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검찰 수사관들도 대응 회의를 열고 "검수완박이 되면 70여 년간 축적된 수사 기법, 전문화된 수사 역량은 사장된다"고 입장을 밝혔다. 

게다가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도 국회의장이 내놓고 여야가 합의 추진키로 한 중재안임에도 우려를 표하면서 받아들이기 어렵다 했다. 한 후보는 "2020년 개정으로 현재 시행되는 제도에서조차 서민 보호와 부정부패 대응에 많은 부작용과 허점이 드러났다"고 지적하고 "그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사회적 합의 없이 급하게 추가 입법이 되면 문제점들이 심하게 악화할 것"이라고 견해를 밝혔다.

끝내는 ‘검난(檢亂)’으로까지 몰고 가는 검수완박이다. 혹자는 국회의 ‘검수완박’에 대한 대구(對句)로 ‘국입완박(國立完剝)-국회 입법권 완전 박탈’이라 해 또 다른 신조어를 탄생시켰다.

지금 대내외적으로 나라가 어렵다. 시민들은 이러한 시기에 크게 보면 한낱 와각지쟁(蝸角之爭)에 지나지 않는 사안을 놓고 나라가 온통 난리법석을 떨고 있다며 정치권을 비난한다. 국회가 정작 할 일은 안 하고 서로의 이익이나 재고 보신책(保身策) 마련에만 몰두한다면 국민들은 또 한번 국회(國會)를 ‘국해(國害)’라고 칭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도 국회는 여야 공히 하는 일 모두는 국민을 위함이라고 한다. 툭하면 ‘국민의 이익’을 내세우는 정치인들에 신물이 나는 국민들이다. 여기서 굳이 헌법 제1조 ②항을 부르지 않아도 국민의 무게는 그렇게 가볍지 않다. 민심을 읽지 못하고 저버리는 정치를 우리는 실정(失政)이라 한다. 정치의 ‘정(政)’은 바른 것 ‘정(正)’이라 했다. 스스로가 바르지 못한데 어찌 국정(國政)을 올바르게 경영할 수 있을까. 법의날을 맞아 법률의 제·개정 및 폐지 권한이 있는 입법기관, 국회의 자성(自省)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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