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영 인하대 교육대학원 교수
조현영 인하대 교육대학원 교수

몰입의 경지, 그것은 우리에게 참 경이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시간이 멈춘 듯한 기분, 나의 모든 능력이 끌어올려지는 경험, 나를 둘러싼 모든 불안과 고민에서 해방되는 느낌.

인간은 끊임없이 몰입을 추구한다. 몰입을 위해서 우리는 자신을 채찍질하고 환경을 조율한다. 무엇인가에 푹 빠져 있는 경험을 할 때 우린 자신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고 행복감을 느끼곤 한다. 

어쩌면 우리가 행복이라고 부르는 정서적 경험이 몰입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닐까 싶다.

팬데믹을 지나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얼마나 불확실성의 시대인지 절감했다. 갑작스러운 변화를 경험하면서 그동안 당연시하던 일상의 규칙들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도 경험했다. 

지금까지의 전통과 규칙이 완전히 틀린 것이 되고, 새로운 규칙이 제시되는 세계에서 우리는 무엇이 우리가 지키고 따라야 하는 규범이고 진리인지, 그것을 새롭게 판단하고 적응해야 하는 딜레마를 지난 2년간 지속적으로 경험했다. 우리 일상의 소소한 행복들을 빼앗겼다고 느꼈고, 우리는 또 다른 몰입의 대상들을 찾아 헤맸다.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롭고 두려웠던 코로나 초기 우리는 새로운 변화를 감당하느라 불안과 우울에 시달려야 했다. 

‘코로나 블루’로 불리는 팬데믹 시대의 심리·정서적 문제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사회문제로 대두됐다. 지금껏 경험한 적 없는 삶의 규칙들로 인해 업무가 과중해지거나, 때론 어떠한 것도 할 수 없거나, 아무것도 할 것이 없어진 현실들은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우리 모두가 겪어야 하는 정서적 우울감의 원인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팬데믹 터널의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전에 없던 행복감을 되찾게 되는 것일까?

코로나가 종식되더라도 우리의 삶이 코로나 이전의 모습으로 완전히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은 우리 일상의 여러 장면에서 감지되고 있다. 

코로나를 지나며 지난 2년간 경험한 비대면이라는 삶의 규칙은 이전에 상상해 보지 못한 편의성과 효율성을 제공했다. 

물론 아쉬움과 제한적 경험이라는 한계도 있지만 비대면 사회는 개인을 물리적 시공간을 초월하는 또 다른 존재로의 확장가능성을 경험하도록 했고, 이것은 매우 매력적인 경험이었다. 

더욱이 ‘메타버스(metaverse)’와 ‘코인’ 등으로 대변되는 가상의 현실까지 일상을 파고들면서 인간 삶의 지평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됐다. 

이처럼 팬데믹을 거치면서 우리는 대면적 상호작용을 기반으로 살아가던 방식에서 비대면과 가상현실까지 넘나들며 삶의 다양성을 추구할 수 있게 됐고, 인간은 이전보다 더욱 자유로워진 듯 보였다. 

그렇지만 이러한 경험 가운데 우리는 이것이 과연 인간 삶의 진일보일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때때로 고민하게 된다. 기회의 확장은 자율성의 확대임과 동시에 복잡하고 다양한 선택의 기로에 놓여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더욱 넓어진 세상에서 더욱 자유로워진 인간은 예전보다 많은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됐지만, 이로 인해 더 많은 정보를 쫓아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됐다. 

앞으로의 우리의 삶은 새로운 것에 적응하기도 전에 또 새로운 것을 맞이해야 하는 숙명에 놓인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도 재고하도록 만든다.

지금껏 당연시하던 학교와 일터의 다른 모습을 경험한 우리는 끊임없이 진리와 가치의 진정성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무엇이 맞는 것인지, 옳은 것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문하는 것은 우리의 고민과 불안이 가중됨을 의미한다. 우리가 무엇을 지향하며 살아가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근본적인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에게 펼쳐질 포스트 코로나 시대, 어쩌면 이전보다 다양한 선택지, 무한한 가능성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새로운 가치와 변화는 늘 인간에게 새로운 학습을 요구하며 새로운 목표를 요구한다. 치밀한 계획보다는 불확실성에 대한 적응력이 철두철미한 규칙보다는 새로움과 변화에 대한 유연함을 요구하는 시대가 됐다.

새로움은 늘 긴장을 필요로 하고, 긴장은 우리가 무엇인가에 몰입할 수 없도록 만든다. 변화가 일상이 된 삶에서 우리는 무엇에, 어떻게 몰입할 수 있을까? 다양성이 미덕이 된 사회에서 내가 선택한 대상과 가치에 대한 확신을 갖는 연습, 삶의 힘을 키우는 연습, 우리가 잘 살아감(well-being)은 그런 것과 다름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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