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림 칼럼니스트
김호림 칼럼니스트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을 표현하고, 의사를 소통하기 위한 소리나 문자 따위의 수단을 언어라고 사전에서 정의한다. 인간은 언제부터 이런 언어로 소통했을까? 창세기에는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그 이름이 되었다"는 소통의 기록이 있다. 한편, 학계에서는 현생인류로 분류되는 호모사피엔스가 세상을 정복한 것은 다른 무엇보다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언어 덕분이라고 한다. 왜 언어가 이런 위력을 가지게 됐을까? 철학자들은 언어를 개념적 사고의 화신이라고 하며, 우리가 이성이라고 부르는 것도 언어 행위 능력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 같은 언어에는 과학적 탐구를 할 수 있는 인식적 기능, 시나 문학작품을 표출하는 표현적 기능과 의식을 거행하는 수행적(遂行的)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그 뿐 아니라 언어를 통해 인간은 허구를 창조하는 능력, 즉 공통의 신화를 창조하고 대규모 협력을 동원해 집단적 상상으로 제국을 이룰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러한 실례를 정치 현실에서 볼 수 있다.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정치인들은 상대보다 먼저 그 시대정신이나 상황을 이용해 무소불위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언어를 점거한다. 즉, 프레임을 씌우는 것이다. 그리하여 상대를 그 프레임 안으로 몰아넣어 꼼짝하지 못하게 공격하는 것이다. ‘적폐 청산’이란 구호도 그러할 수 있다. 흔히 이 같은 말은 사자성어로 그럴듯하게 표현된다. 그 예로 상대방을 서로 공격할 때 ‘내로남불’이란 국적 불명의 익숙한 어휘를 쓴다. 이중적인 잣대를 비판하는 표현이다. 우리말과 영어와 한자어가 혼재된 합성어다. 

지난 대선 기간에 심심치 않게 들은 신조어는 언뜻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윤핵관’, ‘개딸’, ‘양아들’ 등이다. 친절한 설명에 따르면 ‘윤석렬 후보 핵심 관계자’, ‘개혁의 딸’, ‘양심의 아들’이라고 한다. 듣기에 그리 품격이 있는 말이 아니다. 그리고 새 정부 장관 청문회에서 희화됐던 정치인들의 우리말 인지능력도 듣기가 불편했다. ‘이 모(李 某) 교수’를 ‘이모(姨母)’, 회사 이름인 ‘한국3M’을 개인 이름 ‘한XX’로 엉뚱하게 공격하는 모습에는 눈을 감고 싶었다. 무엇보다 가장 국민적 관심을 끈 사자성어는 ‘검찰청법, 형사소송법 개정안’인 ‘검수완박’ 법안일 것이다. ‘검찰수사 완전 박탈’의 줄인 말이라고 한다. 정치 언어 인지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닌 다음에야 과연 이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있을까? 

여기에 그치지 않고 정치권의 신조어는 계속된다. 최근 유튜브 방송에서 어느 공영방송 기자가 정치권의 ‘공영방송 영구 장악 음모’를 이야기하면서 이를 ‘공방영장’이라고 불렀다. 난해한 말이다. 이 뿐 아니라 사회 모든 분야에서 국적과 출처가 불분명한 ‘줄인 말’들이 홍수처럼 밀려온다. 며칠 전 어느 일간 경제지의 미국 증시 주간전망을 한 기사 제목이 ‘러.소.회.피… 피할 수 없는 4대 폭탄 모두 터지나’였다. 그 폭탄은 ‘러시아 디폴트(채무불이행), 소비 쇼크, 연방 공개시장 위원회(FOMC) 회의록, 개인소비 주목(PCE)’이라고 설명했다. 누가 이런 우리말과 영어의 조합을 쉽게 이해할까? 

지난번 부동산 광풍에서 나온 말이 ‘영끌’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으다’라는 뜻이라 한다. 그러다 영혼까지 팔지 않을까? 너무 어둡고 슬픈 세상이 됐다. 이에 반해 긍정적이고 자족하는 말도 있다. ‘소확행’이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고 하는데 너무 어렵다. 소리글자인 우리말을 줄이면 그 의미 전달이 잘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 국가의 언어에는 시대정신과 세태와 시류를 통해 국민 정서가 자연스레 반영된다. 그 반영된 거울이 곧 국가의 품격이다. 그러므로 국가 운영에 책임을 진 지도층들이 상식이 통용되고 정의를 구현할 수 있는 사회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매스컴에서도 선정적인 어휘를 자제할 의무가, 시민사회에서는 순화되고 품위 있는 우리말 사용 캠페인을 펼칠 필요가 있다. 또한 국립국어원에서도 올바른 공공언어와 정책용어의 사용을 위해, 그리고 순화된 언어문화로 나라의 품격을 높일 수 있도록 지혜를 모으고 선도해야 할 책무가 있다. 경우에 합당한 언어문화는 개인에게 품위를, 국가에는 국격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각자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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