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종길 성남소방서 재난예방과장 소방령
배종길 성남소방서 재난예방과장 소방령

2020년 12월 21일 군포시 산본동 소재 15층 아파트 12층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 불로 인해 사망자 4명을 포함 11명의 사상자가 발생해 당시 뉴스, 신문 등에 떠들썩하게 보도됐었다.

사상자 발생 과정을 조사하던 중 특이한 점이 발견됐는데, 불을 피하려고 상층부로 이동하던 주민 2명이 엘리베이터 기계실 앞 계단에서 숨진 채 발견된 것이다.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지만, 화재 당시 짙은 연기로 인해 시야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막연히 본인이 사는 아파트 최상층이 옥상 대피 공간으로 가는 곳이라 착각해 빠져나가려다 변을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 아파트의 경우 엘리베이터 기계실이 최상층에 위치하고, 그 아래층에 옥상 대피 공간으로 나갈 수 있는 출입문이 위치한 경우가 많다.

사실 평소 자신이 사는 아파트의 옥상이 피난이 가능한 슬라브지붕인지, 아니면 피난할 수 없는 박공지붕인지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대다수인데, 화재가 발생한 급박한 상황에서 최상층이 옥상 대피 공간으로 가는 출입문인지 기계실인지 구분할 수 없었을 것이다.

늦게나마 이런 위험성을 인식하고 2021년 6월 경기도의회는 옥상 피난설비를 보급해 도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자 ‘경기도 공동주택의 옥상피난설비 및 관리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주요 내용으로는 ▶공동주택의 범위, 옥상피난설비 등을 정의 ▶도지사 및 관리주체의 안전한 피난 방안 마련을 위한 책무를 정함 ▶화재 발생 시 신속한 대피를 위한 옥상피난설비 관리 등에 대한 실태조사를 규정 ▶도지사가 공동주택 관리주체에게 옥상피난설비 설치를 권고하고 필요한 지원을 하도록 함 ▶피난시설에 대한 교육, 훈련사항 및 협력사항 등을 규정했다.

이에 경기도소방재난본부는 본인 사는 아파트 옥상으로의 대피가 가능한지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우리 아파트 화재 시 옥상으로 대피해도 될까?’ 홈페이지를 제작·운영하고 있다. 소방서도 옥상피난설비의 중요성을 홍보하며 각 아파트를 방문 설치를 권장하고 있다.

그러나 피난안내선, 피난이탈방지 펜스 등은 법적 설치 대상이 아닌 권고 설치 대상으로 예산 문제 등의 이유로 아직도 설치를 꺼리는 분위기가 많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란 말이 있다. 죽은 다음에 처방전을 받았다는 의미로 기회를 놓치고 너무 늦었다는 뜻이다. 지금 조례를 제정하고 옥상피난설비 설치를 권고·홍보하는 것이 뒤늦은 대책으로 사후약방문 같이 보일 수 있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우리가 할 일은 사후에라도 약방문을 처방하는 것이고, 소를 잃고서라도 외양간을 고쳐 다음 사고를 예방하는 것이다. 지금 바로 본인이 사는 아파트의 옥상 출입문이 어디에 위치하는지, 옥상피난설비가 설치돼 있는지 꼭 확인해 다시는 똑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