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

중국과 미국의 기술력 격차는 어느 정도일까? 미·중 패권 경쟁이 심해지는 가운데 지난해 하버드대와 베이징대가 각각 양국의 기술력을 분석 보고한 자료를 보면 앞으로 10년이 고비라고 돼 있다.

자세히 보면 하버드대 벨퍼센터는 "중국은 이미 일부 분야에서 세계 1위가 됐고, 현재 추세라면 10년 후에 미국을 따라잡을 것"이라고 하면서 5G는 중국이 앞서고, 인공지능은 거의 동급이며, 양자정보과학은 미국이 전반적으로 앞서지만 양자통신 분야는 중국이 앞질렀다고 했다. 반도체의 경우도 현재는 미국이 우위에 있으나 반도체 제작과 칩 설계 분야에서는 같은 수준이 됐다고 했고, 녹색에너지 기술은 미국이 개발자였으나 생산과 이용 측면에서 보면 중국이 압도적이라고 평가했다.

베이징대 국제전략연구원은 이 분석 보고서에 대해 "중국은 미국과의 기술력 경쟁에서 대부분의 경우 ‘뒤따르기’를 하고 있으며, 약간의 분야는 ‘나란히 가기’를 하고 있다. 다만, 극소수의 경우 ‘앞지르기’를 하는 태세를 갖췄을 뿐"이라고 조심스럽게 언급하면서 통신기술·항만·기계·철도교통 등 분야에서 미국을 앞설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망했다. 그리고 정밀화학·반도체·항공엔진·바이오 등의 분야에서는 아직도 격차가 크다고 했다. 양자정보·인공지능에서는 어느 정도 경쟁력이 있다면서.

사실 하버드대는 중국의 거센 도전에 경계심을 갖고 분석 평가했다는 걸 감안할 수 있겠고, 베이징대는 추격하는 입장에서 최대한 상대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뒷걸음하기’를 의도했을 수도 있을 터다. 하지만 미·중의 패권 경쟁이 앞으로 10년 안에는 분명한 결과가 나타나리라 예상하는 전문가들이 대다수인 점을 고려하면 중국이 유리한 것은 불문가지다. 역사적으로 국가 간 기술이전은 시간의 문제이지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추격자 입장에서는 건너뛰지를 못할지 몰라도 대등한 수준은 이뤄 왔다. 이를 너무나 잘 알기에 미국은 온갖 방법을 총동원해 중국 ‘약화시키기’에 몰두하고 있는 것으로 보면 된다.

미국과 중국 양대 최고 대학의 이런 보고서가 아니더라도 양국 사정에 정통한 케빈 러드 전 호주 총리의 저서 「피할 수 없는 전쟁:미·중의 재앙적 충돌 위험」에서 지적한 내용은 의미심장하다. 러드 전 총리는 "2020년대는 미·중 관계에서 결정적 10년을 시작하는 해가 될 것이다. 두 나라 전략가들은 모두 이걸 잘 알고 있으며, 두 나라 공존의 길을 찾는다면 세계는 더 나아지겠으나, 만일 이에 실패해 경쟁이 심화되면 전쟁의 가능성이 있는 길로 들어설 것"이라고 경고했었다.

미·중 패권 경쟁에서 어느 나라가 이길 것인가는 향후 가늠되겠지만 우선 둘 사이에 낀 우리나라 등의 입장은 보통 일이 아니다.  전쟁 같은 극단적 시나리오를 빼고 경쟁적 측면만 따져 봐도 거의 재앙 수준이다. 두 나라가 보호주의로 돌아서면 우리처럼 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들은 후폭풍이 보통이 아닐 것이다. 이미 국제통화기금(IMP) 보고서에도 분명 지적한 바 있는데 다자협력과 지역 통합의 길을 모색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했다. 물론 미·중 패권경쟁이 우리에게 기술력이나 산업 경쟁력에서 효과적인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평가도 있다. 예컨대 미국과의 기술 협력으로 원천기술에 접근하면 반도체·배터리 같은 분야에서는 세계시장의 확고한 입지를 다질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중국에 뒤처져 있는 인공지능·클라우드·빅데이터·항공우주 등에서도 추격의 발판을 마련하지 않겠느냐는 기대도 크다. 하지만 그런 행운의 기회와 시간표가 과연 뜻하는 바대로 될 수 있을까.

얼마 전 중국에서 3D프린팅 방식으로 사상 최대의 댐을 짓는다는 발표가 나왔다. 티베트고원의 황허 상류에 수력발전용 양취댐을 세워 3D프린팅 기술과 인공지능을 이용해 2024년까지 해마다 50억kwh의 전력을 공급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번 3D프린트 방식의 댐 건설이 성공적으로 이뤄진다면 다른 건설공사에서도 인공지능과 로봇 협력을 통한 대형 기반시설 공사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진영 대결 논리에 따르거나 각자도생이 아니라 양국이 무시 못할 지렛대를 활용하라는 엄숙한 명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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