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덕우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
강덕우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

홍예란 ‘무지개’의 한자어로, ‘아치’와 같이 반원형의 꼴로 쌓은 구조물의 다리, 고분, 석빙고, 성문 등에 쓰였던 건축물을 일컫는 용어다. 홍예 구조는 용도에 따라 홍예문, 홍예교, 석빙고, 수구문 등으로 분류하는데, 그 중 홍예‘문’은 윗머리가 무지개 형상처럼 반쯤 둥글게 된 모양이다. 현존하는 홍예는 모두 석재로만 만들어진 것으로, 좌우에서 돌을 쌓아 올라가다 맨 위 가운데에 마지막 돌, 즉 이맛돌을 끼워 넣음으로써 완성된다. 이 이맛돌만 빠져나가지 않으면 홍예는 절대로 무너지지 않으며, 건물이나 성벽이 무너져도 홍예는 건재하다 한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우리의 전통적 홍예에서는 돌과 돌 사이에 모르타르와 같은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국을 전(塼, 벽돌)의 나라, 일본을 목(木)의 나라, 그리고 우리나라를 석(石)의 나라라고 한다. 그만큼 우리나라에는 돌로 만든 조형물이 많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현존하는 석조문화재의 조형성과 예술성은 세계적 수준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일본은 좋은 석재가 많지 않고 지질적으로 화산과 지진의 피해가 잦아 건축 재료에 석재와 전(塼)을 사용한 조적식(組積式) 구조는 주된 형태가 될 수 없었다. 돌을 재료로 사용하던 건축물은 삼국시대 이래 전근대까지 우리 선인들의 완벽한 기술력의 전승으로 가능했던 것이다.

1904~1905년의 러일전쟁 이후 인천에 들어오는 일본인들이 더욱 증가해 일본조계는 포화 상태에 이르게 됐다. 이에 일본은 거주지 확장을 위해 일본조계에서 만석동을 향하는 도로를 마련하는 데 고심했다. 당시 우마차와 같은 교통수단을 이용해 일본조계가 있던 항구 주변에서 만석동으로 가려면 지형적인 이유로 북서 해안선을 따라 갈 수밖에 없었으나, 해안선 도로 건설은 예산이 많이 소요되는 사업이었다. 이것의 해결책으로 모색된 것이 바로 홍예문 건립으로, 아래로는 전동으로 가는 길을 뚫고 위로는 각국조계와 측후소로 가는 길을 마련코자 했던 것이다.

1905년 인천의 일본거류민회는 일본인 지주의 기부금을 모아 홍예문 건설공사에 착수했는데, 경부선과 경의선 부설 공사를 위해 인천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 공병대가 담당할 만큼 일본인들에게는 중요하고 특별한 관심거리였다. 설계와 감독은 일본이 맡았다고는 하지만, 석조로 된 홍예문 시공은 삼국시대 이래 전래된 우리의 건축기술이 전수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공사에는 조선인과 중국인 노동자들이 동원됐는데, 공사 도중에 암반이 나옴에 따라 난공사가 돼 예정한 공사비를 초과하게 됐다. 결국 총 공사비 3만2천250원 중 한국 정부가 1만6천800원을 부담하고 일본거류민단이 1만5천 원, 인천 일본영사관의 후신인 이사청이 450원을 부담해 1908년 공사를 마쳤다. 

홍예문은 화강암으로 만든 폭 4.5m, 높이 13m, 통과 길이 13m의 작은 터널로 일본인들은 아나몽(穴門, 혈문)이라 불렀고, 마키노(牧野)공병 대령의 이름을 따서 마키노 절개도로(切通)라고도 했다. 

이 도로는 거의 같은 무렵에 완공된 ‘긴담모퉁이’와 함께 인천 남북 교통의 2대 동맥이 됐다. 

홍예문이 완성되자 인천 앞바다와 팔미도, 영흥도 등 여러 섬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게 됐고, 전망대로서 인천소방서의 망루도 설치됐다. 또한 인천항에서 홍예문으로 이어지는 길에는 경찰서와 공회당 같은 중요한 시설들이 새롭게 들어서기도 했다. 또한 여름철에는 문에서 나오는 시원한 골바람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였기에 과일과 아이스케이크 등을 파는 상인들이 진을 치기도 했고, 그런 연유로 홍보용 간판을 붙이던 곳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1953년 5월 27일자 ‘인천공보’는 미군 제21항만사령부 기술진의 협조로 7개 간선도로의 포장공사 내용을 보도하고 있는데, 21일에는 이미 ‘제일 먼저’ 홍예문선이 준공됐음을 알리고 있다. 홍예문은 예전의 모습 그대로 교통의 요처로서 뿐만 아니라 명소로서 100여 년의 풍상을 버텨내 2002년 인천의 유형문화재 49호로 지정됐다. ‘무지개’라는 아름다운 이름에도 역사의 명암이 담겨져 있음을 느낄 수 있는 현장이 인천 개항장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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