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상 인천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박병상 인천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자동차 광고의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는 송도신도시에 유명 연예인이나 고액 연봉을 받던 스포츠 선수가 여럿 거주한다는 소문이 들린다. 그만큼 살기 좋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싶은데, 그들이 인천의 정체성을 얼마나 공유하는지 궁금하다.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의 고급 주택을 배경으로 인천이 자주 등장하지만, 그 사실에 뿌듯해하는 시민을 만난 적은 없다. 영화와 드라마에 인천의 지리와 문화, 역사와 정체성이 거의 반영되지 않는 탓이리라.

 청라 아파트 단지의 한 도서관에서 지역 환경에 대해 강연할 기회가 있었다. 신청자는 많아도 5차례 이어진 강연을 한 번도 빠지지 않은 수강자는 거의 없었다. 퇴근 이후 시간을 맞추지 못했다며 미안해하던 수강자는 막히는 도로에서 지치면 쉬고 싶은 마음이 커진다면서 도로를 확장하든지 지하철 노선의 신설을 원했다. 신도시보다 국제도시에 거주하는 자부심을 가진 인천시민은 대부분 서울로 출퇴근했다. 그들은 깔끔한 주변 환경에 대체로 만족했지만, 인천의 지리와 문화에 관심 가질 여유가 없었다.

 독일 남부의 오랜 도시 슈투트가르트는 분지 지형이다. 유럽을 뒤덮은 수㎞ 높이의 빙하가 녹아내려 형성된 구릉지대의 한가운데 로마 군대가 주둔했다는데, 군영에서 말죽을 끓였는지 지명이 슈투트가르트가 됐다. 영어로 ‘스튜 가든’이니 우리 말죽거리와 느낌이 비슷한데, 벤츠 자동차 공장과 본사가 위치한 곳이다. 거대 기업 벤츠가 지역 일자리에 큰 비중을 차지할 텐데, 정작 시민들은 벤츠보다 바람골에 자부심이 컸다.

 독일에서 비교적 소득이 높은 슈투트가르트 시민은 분지 지형에 자동차 배기가스가 정체되는 현상을 해결하길 청원했고, 시는 슈투트가르트대학교와 실증적 연구로 바람골을 성공 사례로 만들었다. 구릉지에서 시내를 관통하는 넥타강으로 바람이 불어 배기가스를 외곽의 숲으로 빠져나가도록 유도한 것이다. 바람이 원활하도록 구릉지 고급 주택의 위치를 변경하고 멀쩡한 간선도로를 지하로 옮긴 뒤 상부를 녹지로 바꿔야 했다. 막대한 예산이 필요한 사업이지만, 긍정적 성과를 확인한 시민은 동의했다. 바람골은 예산에 맞춰 확장되는 모습이었다. 

 빙하에 덮인 탓에 종류가 다양하지 않아도 독일 도시들의 외곽은 나무가 울창하다. 숲속 아우토반을 빠져나가면 나타나는 도시들은 면적과 인구로 비교하는 걸 반기지 않는다. 역사와 문화의 정체성이 분명하므로 도시 사이에 우열이나 서열은 없다. 학문 특색을 자랑하는 독일의 대학도 비슷하다. 서열이 없으니 일류라는 개념도 없다. 학생과 시민은 그 분야의 최고 대학이고 최고 도시라는 자부심을 품는데, 유서 깊은 유럽의 대학과 도시가 대부분 그렇다.

 취임 일성으로 인천시장은 ‘세계 초일류도시’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어떤 정치인이 ‘이부망천’을 언급해 시민 자존심에 상처받은 적 있는데, 그런 망언이 다시 나오지 않게 될까? 인천은 고작 ‘서울의 관문’이거나 수도권 생활쓰레기의 최종 처리장은 더욱 아니다. 다채로운 수산물이 가득하던 갯벌은 위축됐어도 경관과 석양이 아름다운 섬이 즐비한 인천은 독특한 문화와 역사를 가졌다. 자랑스러운 인물도 많다. 그 방면에 이미 세계 초일류이건만, 정착 인천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앞으로 달라질 것인가? 서울과 인천에 머물던 해외 무역회사 주재원이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인천은 어디였는지 물었다는 풍문이 더는 돌지 않겠지?

 기왕이면 기후위기가 심각해져도 안심할 수 있는 인천이 됐으면 좋겠다. 화석연료를 과하게 투입해 생산하는 해외 농산물이나 가공식품보다 강화군이나 옹진군에서 청결하게 생산한 농산물과 해산물로 안전하게 자급할 수 있는 인천이라면 초고층 빌딩이 화려한 도시보다 기후위기에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다. 부자를 끌어모으는 휘황찬란한 시설을 위해 과도한 예산을 집행하면 여유 없는 시민은 소외된다. 사회학자는 평등하면 건강하다고 주장한다. 정체성이 분명할 뿐 아니라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하고 경제정의와 사회정의가 분명한 인천이라면 세계 일류로 등극하겠지. 초일류를 표방하지 않아도 시민은 행복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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