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림  칼럼니스트
김호림 칼럼니스트

산업혁명 이후 인류가 이룩한 현대 문명의 동력이 된 에너지는 석탄, 석유와 천연가스로 대표되는 화석연료였다. 이같이 인류 문명에 이바지한 화석연료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기후변화의 주범이라는 주장으로 어느 사이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이에 ‘탄소중립’ 유지라는 낯선 과학이 대부분 국가의 기후변화 목표가 됐다.

이러한 기후변화 정책에 복병이 나타났다. 코로나 역병과 ‘특수군사작전’이라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다. 물론 이 복병 이전에도 에너지 위기의 조짐이 보였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즉, 유럽을 비롯한 선진국은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정책 우선으로 원유와 천연가스 투자를 감소시킬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코로나로 야기된 공급망 작동 문제는 천연가스 생산 감소와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파산 위험에 처한, 유럽의 에너지 관련 공공사업기관은 정부 보조금으로 연명하게 됐다.

여기에 푸틴의 군사작전이 변곡점이 돼 에너지 위기를 앞당겼다. 러시아는 에너지안보라는 예민한 무기를 건드려 유럽으로 이어지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밸브를 막기 시작했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1970년대 중동발 석유 위기보다 더 강력한 에너지 비상사태가 도래할 것을 예측한다. 또한 세계적 경기 침체를 가져올 수 있는 이런 재난에 대응하기 위해서 에너지 문제를 시장 자율에 맡겨 실패하기보다 국가가 개입해 위기상황을 효율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산화탄소 배출 감소 의무와 푸틴의 전쟁으로 야기된 지정학적인 에너지 안보위기 두 가지를 동시에 확보하고 회피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스템의 글로벌 에너지 질서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기 위한 새로운 에너지 질서가 국가 간에 지속가능한 시스템으로 작동될 것인지는 의문이다. 최근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결과 EU 의회의 녹색 산업분류(taxonomy) 의결은 선진국들의 기후 지도력 후퇴 신호로 보이기 때문이다. 

지난 6월 30일 미연방 대법원은 웨스트버지니아주와 다른 19개 주, 그리고 전력회사와 석탄회사들이 미 환경보호청(Environment Protection Agency)을 상대로 제기한 배출가스 규제 관련 소송에서 환경보호청이 대기오염방지법(Clean Air Act)의 규정을 확대 적용해 과다한 규제를 기업에 부과했다고 판결했다. 즉, 연방기관은 그들이 주장하는 규제 권한이 미 의회가 부여한 것인지 명확한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판결로 석탄발전에서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려는 미국의 기후변화 조치가 지연될 것이라고 환경운동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한편, 유럽연합(EU) 의회는 7월 6일 천연가스와 원자력발전을 ‘녹색산업 분류 체계(EU taxonomy)’로 포함하는 법안을 의결해 이 산업에 민간 분야의 투자와 금융 지원을 가능케 했다. 그러자 환경단체로부터 비난이 쏟아져 나왔다. 지속가능한 에너지 전환이 지연될 것이란 주장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이는 역설적이게도 원전을 운영하는 프랑스와 천연가스를 주요 에너지 수단으로 사용하는 독일이 원했던 조치였다. 

이번 푸틴의 침공 전쟁으로 야기된 에너지 폭풍은 각국에 에너지안보의 경각심을 확인시켜 줬으며, 지정학적인 에너지안보와 기후변화 정책은 동시에 이룰 수 있는 목표가 아님을 미국과 EU에서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즉, 현재의 ‘확실한 에너지위기’와 기후회의론자들이 주장하는 미래의 ‘불확실한 기후재앙’의 관리 중 우선순위를 선택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러할 때 국가는 에너지 문제에 개입해야 한다. 에너지원 확보, 가격, 유통, 배급, 소비 절약에 이르기까지 인프라를 구축해야 하고, 가장 안정된 공급원인 원전을 확대해야 할 것이다. 다행히 정부에서도 원전을 한국형 ‘녹색 분류체계(K taxonomy)’에 포함시키겠다고 한다. 국가 주도의 새로운 에너지 질서가, 인류의 미래를 위해, 과학적인 토대 위에서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작동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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