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국회의원
이학영 국회의원

세계적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유명한 대사가 있다. 오일남 역을 맡은 배우는 절절한 목소리로 외친다. "이러다 다~죽어." 최근 날씨와 관련된 각종 내·외신 보도를 접하면서 오영수 배우의 처절한 외침이 자꾸 떠오른다. 서울 등 일부 지역은 기상관측 사상 처음으로 6월에 열대야가 나타났다. 때이른 장맛비는 한반도 남쪽은 스치듯 지나며 중부지방에 엄청난 양의 비를 쏟아부어 침수피해를 입게 했다. 반면 남부지방에는 비가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아 여전히 가뭄에 시달리는 기현상이 일고 있다. 

간절했던 비는 제때 내려주지 않았다. 지난 3월 울진·삼척에서 발생한 산불은 10일 동안 확산하며 서울 면적의 3분의 1을 태워 버렸다. 시민단체 등은 울진·삼척 산불을 기후재난으로 규정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이상기후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구 인구의 3분의 1이 40℃가 넘는 폭염에 시달리는 상황이다. 남유럽 지역은 40℃ 이상의 치솟는 열파와 가뭄이 일고, 곳곳에서 산불이 이어지고 있다. 인도는 수도 뉴델리의 5월 기온이 49℃를 넘었고, 북동부는 평년보다 빠른 장마로 수천 개의 마을이 잠겼다. 다국적 기후 연구단체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폭염 발생 빈도가 30배 높아졌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고 한다. 연구진은 인도·파키스탄의 봄철 폭염과 같은 사건 발생이 약 3천 년에 한 번꼴이었는데, 이제는 기후변화로 인해 100년에 한 번으로 짧아졌다고 한다.

기후위기는 우리가 닿을 수 없었던 TV나 신문 속 북극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 당장 장마와 가뭄으로 인해 농수산물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발표한 올해 3월 세계식량가격지수(식량 원자재 국제가격 변동 폭을 매달 추적)가 전월대비 12.6% 상승한 159.3을 기록했다. 1996년 해당 지수를 도입한 이래 최고치라고 한다. 곡물가격지수는 2월보다 17.1% 상승한 170.1이다. 전년 동기 대비 37% 오른 수치다. 밀의 경우 세계 2위 밀 수출국인 미국이 지난해부터 토네이도에 극심한 가뭄으로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밀, 콩, 옥수수 등을 수출하는 아르헨티나도 지난해부터 심각한 가뭄으로 작물 수확량이 감소했다고 한다. 

가뭄은 단순히 곡물 생산량 감소에서 그치지 않는다. 수위가 줄어들면서 수출이 이뤄지는 항구의 곡물 운반량이 제한돼 수출량도 줄었다고 한다. 아르헨티나 로사리오항은 수심이 얕아지면서 수출 선박들이 평소보다 18~25%가량 적은 화물을 싣고 있다고 한다. 

당장 우리가 가장 많이 접하는 커피를 생각해 보면 기후위기가 우리 지갑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단번에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의 주요 커피기업들이 원두시세 급등을 이유로 수년 만에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전 세계 주요 산지에 가뭄과 한파가 몰아쳐 원두 농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원두 수확량이 급감한 것이다. 전체 식량의 80%를 수입하는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보면 기후위기는 식량난과 물가위기를 가져오는 재앙이다. 

기후위기는 식량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웃 나라 일본은 때아닌 폭염으로 전력수요가 폭증해 전력수급주의보가 발동됐다. 지난해 미국에서는 한파로 인해 텍사스 지역의 발전설비 등이 동파하거나 고장이 나서 대규모 전력 부족과 정전 사태가 일었다. 전기요금이 200배 가까이 뛰는 일이 벌어졌다. 주민들의 피해는 물론이고 우리 삼성전자도 공장 가동 중단으로 수천억 원의 피해를 봤다. 세계는 지금 파리기후협약을 통해 지구의 기온 상승을 산업화 대비 1.5℃를 넘지 않게 노력하기로 했다. 1.5℃ 상승에 가까워질수록 우리는 앞에서 나열했던 각종 기후재난을 더욱 자주 겪게 될 것이다. 이대로라면 20년 뒤엔 부산이 바다에 잠겨 버릴지 모른다. 

기후위기는 이제 대비를 넘어서 당장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세계 각국이 앞다퉈 탄소중립 정책과 규제를 내놓고 있다. 이산화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화석연료는 퇴출 수순을 밟고 있다. 당장 13년 뒤인 2035년부터 유럽과 중국 등에서는 내연기관 자동차를 판매할 수 없다. 올해 발표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의 풍력과 태양광발전량이 10%를 돌파했다고 한다. 2015년 파리기후협약 당시 풍력·태양광발전 비중이 4.6%였던 것을 생각해 보면 근 5년 만에 2배 상승한 수치다. 반면 우리나는 4.67%에 그쳤다. 주요 20개국 중 1인당 전력수요가 세 번째로 많은 나라치고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너무 낮다. 

우리나라는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확대해 탄소중립은 물론 에너지자립도를 높여야만 한다. 탄소중립이 경제 패러다임도 바꾸고 있는 때에 더 이상 과거에 머물러선 안 된다. 탄소중립을 통해 기후위기를 해결하고 우리 경제의 새로운 도약을 모색해야 한다. 태양광·풍력발전 기술은 부지런히 따라잡아야 하고, 수소에너지는 우리가 선두에 있다. 새로운 정부도 문재인 정부와 같이 기후위기 극복과 경제 도약을 위한 정부 차원의 다짐과 정책을 지속 발굴하고 내놓아야 한다. 우리나라가 기후위기를 저지하고 탄소중립 산업의 선두에 설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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