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 인천대 외래교수
김준기 인천대 외래교수

덕은 가면을 제거하고 화장을 지워야 드러나는 결백한 품성이다. 덕자(德者)는 공정을 입으로 주장하거나 부르짖지 않고 행동으로 추구하며 민주와 평화를 겉으로 외치거나 들먹이지 않고 실천으로 도모하는 사람이다.

애초 고대 중국의 주나라 성립을 가능하게 했던 이 덕은 하늘의 뜻이 인간에 의해 결정될 수 있다는 인식의 변화를 가져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 시대로 접어들면서 인간은 덕의 타락과 약화는 신의 외면을 사고, 덕의 확장과 강화는 신의 가호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을 처음 포착했다. 상제의 보호와 지배를 받았던 은나라와 달리 이제 주나라는 덕으로 인해 하늘이 마음대로 인간의 삶에 관여할 수 없는 왕조로 변신했다. 덕의 존재와 실현 여부가 국가나 왕조 성립의 결정적 기준이 되고, 신의 뜻이 인간의 노력과 의지대로 움직이게 되면서 신의 일방적인 의지에 제동이 걸리게 된 것이다. 

장자에 등장하는 애태타는 이름이 지니는 뜻 그대로 등이 낙타처럼 굽고 추남이며 경제적으로 무능한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나라 처자들은 다른 사람과 혼인하느니 차라리 애태타의 첩이라도 되겠다고 부모에게 간청했다. 처녀들뿐만 아니라 그를 만나는 사람들은 누구나 몰골이 흉측한 애태타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심지어 애태타를 만난 애공(哀公)조차도 나라의 2인자 자리를 권하며 국정을 맡기고자 했다. 추한 생김새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앞세우거나 자기 생각을 강요하지 않는 애태타의 덕이 발현해 낸 현상이었다. 

덕은 선입견이나 신념으로부터 자유롭고 주관적 평가나 자의적 믿음 체계를 거부하는 인격적 성숙에서 비롯된다. 덕은 제한적인 앎의 체계로부터 벗어나고 특정 가치와의 결탁도 불가한, 오로지 자신이 자신으로서만 존재하게 하는 내적인 동력이자 자발적인 힘이다. 덕은 신으로부터 인간 자립을 가능하게 했으며, 독립적인 주체로서 당당하게 자신의 운명과 맞설 수 있는 용기를 제공했다. 

공자가 말하는 덕도 장자의 덕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공자는 덕은 외롭지 않으며 반드시 이웃이 있다고 했다. 또한 잘 꾸며진 말이 덕을 어지럽힌다고 일갈했다. 말은 교묘한 방식으로 이념이나 지식, 교리 등을 분화시켜 정치적·학술적·종교적으로 상대를 사이비 또는 이단이나 정적으로 몰아 갈등을 부추기고 자기 세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한다.

덕은 관념에 조종당하지 않고 광기에 휘둘리지 않으며 편견에 함몰되지 않으므로 네 편, 내 편 없이 이웃이 자발적으로 동조한다. 정치도 이렇게 행해져야 민심도 얻고 국론도 통합되고 국가도 정상적으로 운영된다. 

그래서 공자는 덕을 바탕으로 해 정치를 한다는 것은 마치 북극성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뭇 별들이 모여들어 함께하는 것과 같다고 피력했다. 

한편, 노자는 두터운 덕은 어린아이와 같다고 했다. 덕은 사익을 위해 자신을 의도적으로 꾸미거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하는 솜씨로는 도저히 발현될 수 없는 능력이다. 덕은 재주가 아니라 인품이며, 소질이 아니라 인격이고, 기술이 아니라 재전(才全)이다. 탐욕으로 행해지는 재주는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고, 잔꾀로 시도되는 소질은 보복과 복수를 획책하며, 교만으로 꾀하는 기술은 배신과 야합을 부추긴다. 덕은 내적 성숙으로 길러지는 능력이며, 이러한 토대 위에서 인간적인 감화력은 더욱 넓어지고 정치적인 흡인력은 더욱 깊어진다. 그래서 생각이 다른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거나 배제 대상으로 간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이해시키고 정성껏 설득해 그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도록 한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위나라 무후에게 충고하는 오기(吳起) 입을 빌려 나라의 보배는 적을 지키는 데 유리한 험준한 산하의 요새가 아니라 임금의 덕이며, 임금이 덕을 닦지 않으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적으로 돌변할 것이라고 간언했다.

덕으로 행해지는 치세는 형벌을 집행하고 감독하는 특정 대학과 특정 고시 출신들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지도자가 진심으로 국민들의 마음을 자기 마음으로 삼고자 한다면 국가는 칼로 휘두르는 형벌이 아닌 덕으로 발휘되는 법치로 운영돼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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