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영 거리의 인문학자
최준영 거리의 인문학자

민선 지자체장의 정무직 인선에 대해 생각해 본다. 우선 부정적인 의견을 살펴보자. 자칫

점령군 행세를 하면서 기존의 공무원 조직을 형해화할 우려가 제기된다. 논공행상식 인선으로 인사의 절차와 원칙을 무너뜨릴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이다.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이유다. 부정적인 면만 있는 건 아니다. 지자체장에게 쏠리는 업무를 분산시킬 수 있고, 공직사회에 새로운 긴장을 불어넣는 한편 조직을 파악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정무직 인선은 단체장의 향후 정치 일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단체장 한번 역임하고 정치 그만둘 거라면 모를까, ‘믿을맨’들을 공직에 유입하는 건 훗날을 위한 기반 다지기의 의미일 수 있다. 무엇보다 정무직은 임기 초 다양한 도전에 직면하게 되는 지자체장에게 큰 힘이 된다. 치열한 정치현실에서 힘이 되는 건 직업공무원이 아니라 내가 뽑은 내 사람밖에 없다. 참모의 실체와 자질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숨은 실력을 발휘하는 실력파가 나타날 수도 있고, 공직에 대한 인식과 이해 부족으로 기행과 부정을 일삼는 자가 돌출할 수도 있다.

어떤 지자체장이냐에 따라 정무직 인선의 패턴이 갈린다. 천생 정치인의 경우 대체로 자기 사람 심기에 열을 올린다. 정치적 빚을 청산하는 의미도 있고, 후일을 도모하는 일이기도 해서다. 비정치인 출신, 특히 관료 출신의 경우 자기 사람 심기에 소극적이다. 공직경험상 정무직에 대한 기존 공무원들의 반감을 알기 때문이다. 무리하게 정무직 몇 명 심는 것보다 기존 조직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게 더 효율적이라 인식한다. 정치적 빚이 없으니 논공행상에 휘둘릴 필요도 없다.

김동연 경기지사의 정체성은 복잡미묘하다. 간단하게 정리하기 쉽지 않다. 몇 가지로 분류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통 경제관료 출신이다. 얼핏 모피아 특유의 엘리트 의식에 사로잡혔을 것으로 보인다. 이력을 보면 기우다. 그를 둘러싼 인사들은 어떨까? 임용 나흘 만에 사퇴한 전 경제부지사 건에 시사점이 있다. 그깟 경기도의원쯤 무시해도 그만이라는 생각이 ‘못된 손’을 불렀을 것이다. 그 역시 모피아 출신이다. 상생과 협치의 정신으로 함께해야 할 도의회에 대한 김 지사 주변 인사의 의식의 일단을 드러낸 셈이다. 

정치인이다. 정치인 김동연에게 현실은 기회이면서 수렁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유일한 수도권 광역단체장이다. 위상은 급상승 중이다. 한계 또한 분명하다. 당내 기반이 취약한데다 전임 지사와의 관계 설정도 간단치 않은 문제다. 특정 계파가 주를 이뤘던 선거캠프 인사들과 일정 정도 거리를 두는 느낌이다. 아쉬운 대목이다. 포용의 미덕을 발휘해야 할 때다. 

마키아벨리는 "개혁가는 위험에 빠질 수밖에 없고, 무장하지 않는 예언자는 위태로워진다"고 「군주론」에서 말한다. 사보나롤라를 예로 들면서다. 정치의 세계에서는 옳고 그름이 아니라 힘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발언권이 부여된다. 민주당은 물론 선거캠프에서 함께 고생한 사람들조차 끌어안지 못한다면, 도의회의 절반을 차지한 국민의힘에 맞설 동력을 얻을 길이 없다. 무장하지 않은 정치인이 주장하는 협치는 공허한 구호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민주당과 국민의힘 양쪽 모두로부터 외면당하는 아찔한 결과를 맞을 수 있다. 

명실공히 차기 주자다. 거품이 되고 말지 현실이 될지 순전히 김 지사 본인에게 달렸다. 보완해야 할 것이 한둘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포용을 통한 외연 확대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오롯이 김 지사의 어젠다인 ‘정치 교체’를 실제화하는 것도 당면한 일이다. 무엇보다 경기도정에서 성과를 거둬야 한다.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여러모로 시험대에 올랐다. 기대가 크다. 우려 또한 크다. 유능한 행정가의 면모를 보여 줘야 한다. 기본이다. 정치인 김동연의 비전도 제시해야 한다. 진정한 출발이다. 이쯤 어줍잖으나마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 목민관의 정신을 일깨운 다산의 실사구시 못지않게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동학의 정신도 깊게 아로새기길 바란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