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존중보다 앞서는 가치가 생명 존중이라 하겠다. 예부터 선조들은 풀 한 포기에도 생명이 깃들어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의 생명이 소중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다.

한데, 요즘 세상에서 과연 이런 생명존중이 지켜지는지 의문이다. 생명보다 앞서는 가치가 법이고 지침일까? 법은 ‘국민이 어떠한 모습으로 살았으면 하는 바람의 결정체’라 했다. 그런데 열불나게도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책임지는 이들의 입에서 "저희 업무 아닙니다"라는 발언이 나온다. 왜 이렇게까지 됐는지, 이해하기 힘든 답답함을 글로 푼다.

최근 수도권에 내린 기록적인 폭우는 우리의 삶 곳곳에 상처를 남겼다. 그럼에도 시련을 이기고 꿋꿋이 살아내는 동력은 우리의 이웃이 있기 때문이리라.

폭우가 쏟아지던 지난 8일 서울 신림동에선 시민영웅들이 반지하방에 갇힌 청년을 구했다. 구조한 청년을 가슴 깊이 안아주며 안심시키는 모습에 ‘가슴 벅찬 뭉클함’을 느끼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같은 날 수도권 곳곳에서 경찰과 소방은 홀몸노인이나 거동이 불편한 국민을 헌신적으로 구출해 냈다.

이러한 일상 속 영웅들의 소식은 우리에게 큰 감동을 선사한다. 기자도 헌신한 시민과 경찰·소방공무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하지만 일부 몰지각한 경찰·소방공무원들의 행동 때문에 모두의 선행이 빛바랜다. 지난 6일 광주시 북구에서 쓰러진 A씨를 ‘술에 취한 사람’으로 판단한 소방이 경찰에 재신고를 안내했다고 한다. 최초 신고 15분 이상이 지나서야 구급차가 도착했지만 결국 숨졌다. 과연 이들만의 문제일까.

남양주시에서도 이런 ‘무관심’이 종종 발생한다. 지난해 금곡동 남양주시청 앞 버스정류장에 술에 취한 여대생이 쓰러진 상황이었다. 출근하던 공무원이 신고했지만 경찰은 깨우기만 하고 현장을 떠났다. 성폭행이나 납치 등을 우려한 공무원들이 여대생을 귀가시켰다고 한다. 또 제보자 B씨는 지난주 폭우가 쏟아지던 밤늦은 시간 다산동에서 장대비를 맞으며 길을 배회하는 시민을 발견했다. 하지만 경찰과 소방에 신고하니 "저희 업무 아닙니다"라며 거부당했다고 한다. 빗속에서 숨질지도 모르지만 취객이니 고려 대상이 아니라는 뜻인가. 이게 과연 정상일까?

대부분의 경찰·소방공무원들은 자신의 모두를 걸고 국민을 보호한다. 문제는 극히 일부에서 이 같은 일이 종종 벌어져 무관심 속에 생명이 속절없이 끊어진다는 점이다. 당연히 취객을 보살필 책임은 없다. 사후 처리만이 아닌, 사전 예방이 업무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말이다.

꼭 흉기에 찔리고 실종되는 등 생명의 위협이 있어야만 출동하는가. 그렇다면 ‘생명 존중 캠페인’이나 ‘안전 캠페인’은 무슨 이유에서 하는가? 집중호우라는 재난상황에서 일손이 부족했겠지만, 당사자라면 꼭 그렇게 했어야 했는지 스스로 돌아보기 바란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