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상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최윤상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저희 엄마는 베트남 사람이에요."

지난해 학교 인근 지역아동센터에 초등학생 대상 교육봉사를 나가며 심심치 않게 들었던 말이다. 내가 있었던 지역아동센터에는 전체 아이 중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절반 이상이었다. 과장하자면 다문화가정이 아닌 아이를 찾기가 더 어려웠다. 다문화가정 부모들의 국적은 몽골·베트남·중국까지 다양했다. 

지역아동센터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마주한 다문화사회의 현재는 충격이었지만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어릴 때부터 농촌과 공업지역을 중심으로 다문화가정이 늘어간다는 뉴스를 어렵지 않게 접했고, 학창시절 두 명의 일본 다문화가정 친구와 같은 반이었던 기억이 있다.

지역아동센터에서 만난 아이들 부모의 국적은 달랐지만 아이들은 유창하게 한국말을 했고, 학교가 끝나고 삼삼오오 모여 태권도 학원에 가는 영락없는 한국 어린이였다. 아이들 스스로 말하지 않았다면 다문화가정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터다. 한편, 아이들이 공부하는 참고서에는 흑색·백색·황색의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이 그려져 있었다. 필자가 초등학생이었던 10년 전과 비교해 본다면 상당한 변화였다.

저출산으로 생산인구가 감소해 노동인구를 보충해야 하며, 이에 따라 막을 도리가 없는 다문화의 물결 속에서 그들이 우리와 같은 한국인으로 성장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여러 매체에서 접하며 공식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던 다문화사회에 대한 사고체계였다.

하지만 이 믿음은 베트남 다문화가정 아이가 베트남전쟁에 대해 "한국이 베트남을 침략해서 많은 사람이 죽었어요"라고 툭 던진 말 한마디에 의심으로 바뀌었다. 의무교육 12년 동안 단일민족 서사를 들으며 성장했고, 그 역사교육에 영향을 받아 국사학과에 입학한 나로서는 처음으로 한국사가 타자화됐던 경험이었다.

베트남 다문화가정 아이들은 영화 ‘국제시장’에서 묘사된 월남군 파병을 보고 ‘조국을 위해 한 몸 희생한 파병’뿐만 아니라 ‘라이따이한’과 ‘한국군 민간인 학살’을 같이 떠올리리라.

나와 같은 반이었던 일본 다문화가정 친구 역시 한국사 교과서에 서술된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를 접하고 ‘한국을 침략한 야만적인 일본인’, 그리고 ‘영웅적으로 일본을 무찌른 한국인’ 사이에서 혼란을 겪었음은 분명해 보였다.

이 문제는 다문화사회로 변화하는 대한민국에서 두 국가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갈 아이들뿐만 아니라 그들과 함께 살아갈 우리 역시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이다.

일각에서는 이들에게 ‘전통문화’와 ‘단일민족’을 강조해 한국인의 정체성을 확고히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역사를 배우는 학생으로서 그러한 시각에는 의문이 든다. 과연 우리가 ‘전통문화’라고 여겨 왔던 일들이 순수한 고유 문화인 우리만의 소유로 봐도 무방할까.

대표적으로 한복의 요소 중 철릭과 발립은 몽골의 영향을 받아 유래됐지만, 이 시기 한복의 양식이 고려양이라는 이름으로 중국과 몽골에서 유행하기도 했다. 최근 세계적 인기를 모으는 K-POP 역시 영미권 팝 음악의 영향을 받아 탄생했고, 현재는 세계 각지에 수출된다. 결국 문화는 상호 교류를 통해 형성되고 하나의 지역에서 완결되지 않는다.

‘단일민족’도 마찬가지다. 멀리 보면 고조선 시기 연나라 출신 위만과 한반도계 국가에 배척되기도, 편입되기도 한 여진족과 말갈족, 그리고 임진왜란 때 정착한 일본인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국경을 넘어선 교류가 현재 한국인을 만들었다.

같은 맥락으로 고구려의 유민으로 당나라에서 활약한 고선지, 임진왜란 시기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인, 그리고 생존을 위해 만주에 정착한 식민지 조선인처럼 한반도 밖으로 나간 사람들이 있었다. 이러한 사실에 주목한다면 ‘단일민족’이란 개념의 허구성과 지금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처럼 국가적 맥락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개인의 이야기를 마주하게 된다.

다문화사회와 세계화 시대를 살아갈 우리에게 민족과 전통보다는 오히려 그 부분이 형성되게끔 한 개인과 세계라는 가치에 주목하는 편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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