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규수 동산중학교 교장
황규수 동산중학교 교장

휴가(休暇)란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직장·학교·군대 따위의 단체에서 일정한 기간 동안 쉬는 일 또는 겨를을 뜻한다. 근로기준법에서는 휴가를 근로의무가 있으나 근로자의 휴가 청구로 인해 근로의무가 면제된 날로 정의한다. 이처럼 휴가는 근로의무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쉴 수 있는 때이기 때문에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기간을 어떻게 보낼지 미리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쉬면서 평소 하기 어려웠던 일들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밤잠을 설치기도 한다. 밀린 독서나 영화 보기, 여행 등. 근자에는 호텔에서 휴가를 보내는 것을 일컫는 호캉스라는 말이 생겨났다. 실제로 혼잡한 여행지 자체보다는 한적한 분위기를 즐기며 여행보다는 휴식을 취하려는 사람들이 늘면서 나타난 현상임을 알 수 있다. 여기에는 코로나19가 미친 영향도 적지 않을 것이다. 물론 휴가를 즐길 수 없는 입장에서는 그것이 사치처럼 여겨질 수도 있지만 말이다.

필자는 2006년 여름방학 기간 중인 7월 31일부터 8월 7일까지 중국 옌볜에 머물면서 심연수(1918년 5월 20일∼1945년 8월 8일) 시 원본을 보관하고 있는 그의 동생 심호수의 집을 직접 방문해 면담하고, 이를 사진으로 찍어 온 바 있다. 

일제 강점의 암담한 현실 상황 속에서 비극적 삶을 살다 간, 문인(文人) 심연수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0년 7월 「20세기 중국조선족문학사료전집」 제1집(심련수 문학편, 연변인민출판사)이 간행되면서부터다. 그는 살아생전인 1940년대 초반 당시 ‘만선일보’ 등의 신문에 시뿐만 아니라 기행문, 단편소설, 문학 및 영화평론들을 발표했다. 그렇지만 그가 죽은 지 무려 55년 동안 그의 동생에 의해 항아리 속에 깊숙이 묻혀 간직돼 오다가 비로소 한 권의 책으로 공개된 그의 유고 작품은, 흔히 ‘암흑기’ 또는 ‘공백기’로 지칭돼 온 1940년대의 한국 현대문학사를 풍부히 해 줄 문학의 실체로 필자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그의 작품 원본들은 원전 확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급하게 책으로 엮어지다 보니 잘못 정리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또한 그의 생애 및 작품에 대한 연보 작성이 제대로 행해지지 않은 채 그에 관한 연구가 진행되다 보니 그의 작품세계에 대한 통시적 고찰은 처음부터 기대하기 어려웠다. 더욱이 일제 강점이라고 하는 당시의 시대상황 속에서 구소련 및 만주, 일본 등지에서 어렵게 살다 간 그의 행적에 대한 바른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진행된 이전의 논의에서는, 그의 작품을 온전히 해석하는 것을 바랄 수 없었다. 이 같은 맥락에서 그의 시를 보다 올바로 이해하고 평가하기 위한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필자는 방학기간을 이용해 문학 기행을 떠났던 것이다. 

2016년에도 필자는 8월 8일부터 8월 12일까지 중국 옌볜에 머물면서 옌볜대학 예술극장에서 진행된 제2회 룡정시문학축제 프로그램 중 한중세미나에 참가해 논문을 발표했다. 또한 8월 11일에는 중국 룽징에서 거주하다 2016년 2월 8일 사망한 심호수의 유해가 안치된 옌지의 납골시설을 찾아가 이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 형님의 육필 원고를 소중히 간직해 일제강점기 한글문학을 지켜내는 데 큰 역할을 한 그의 노고에 경의를 표했다. 그리고 8월 12일 귀국길에는 그의 아들 심상만과 심연수의 육필 원고 및 유품을 그의 고향 강릉으로 옮기는 일에 함께 참여했다. 

이처럼 또다시 이맘때가 되면 그의 대표 시 중 하나인 ‘소년아 봄은 오려니’를 읊조리며, 광복 1주일 전 그의 안타까운 죽음과 진정한 광복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 본다. 

"봄은 가처웠다./ 말랐던 풀에 새움이 돋으리니/ 너의 조상은 농부였다/ 너의 아버지도 농부다./ 전지(田地)는 남의 것이 되었으나/ 씨앗은 너의 집에 있을 게다/ 가산(家山)은 팔렸으나 나무는 그대로 자라더라/ 재 밑에 대장간 집 멀리 떠나갔지만/ 끌풍구는 그대로 놓였더구나/ 화덕에 숯 놓고 불씨 붙여/ 옛 소리를 다시 내어 봐라/ 너의 집이 가난해도 그만 불은 있을 게니./ 서투른 대장의 땀방울이/ 무딘 연장을 들게 한다더라/ 너는 농부의 아들/ 대장의 아들은 아니래도……/ 겨울은 가고야 만다/ 계절은 순차(順次)를 명심한다/ 봄이 오면 해마다 생명의 환희가/ 생기로운 신비의 씨앗을 받더라." 시 ‘소년아 봄은 오려니’ 전문(1943년 2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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