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주의자 고희망

김지숙 / 자음과모음 / 1만3천 원

「종말주의자 고희망」은 인간이 종말하는 소설을 쓰는 ‘종말주의자’이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중학생 희망의 이야기다.

 희망은 어렸을 적 친구들과 노느라 동생의 사고를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안고 살아간다. 동생의 사고 이후 부모님은 희망에게 마음의 문을 닫은 듯 행동하고, 희망은 그럴 때마다 인류가 멸종하는 소설을 쓰면서 내면의 괴로움을 표출한다. 

 가족 중 유일하게 제 편인 줄 알았던 삼촌 요한 역시도 희망이 모르는 비밀을 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희망은 더 이상 가족이라는 틀 안에 자신의 자리는 없다고 생각해 괴로움을 느낀다. 

 유일한 친구였던 도하 그리고 지수와도 마찰이 생기게 되면서 희망은 소설 속 세계가 아니라 자신이 사는 이 세계에 진정한 종말이 찾아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야기는 희망의 시점으로 진행되지만, 희망의 서사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물들의 서사가 함께 어우러져 다채롭게 펼쳐진다. 마치 비 온 뒤 맑게 갠 하늘에 펼쳐진 무지개처럼 희망차고 아름답다. 비가 그치면 새하얀 줄로만 알았던 빛이 사실은 무지갯빛임을 알게 되듯, 소설 속 인물들의 삶도 닥친 시련이 전부가 아니라 그 너머에 다채롭게 펼쳐진 빛나는 오늘이 있음을 독자들에게 일깨워 준다.

 ‘종말 기록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희망의 내밀한 서사와 삼촌 요한의 비밀을 통해 내 세계가 ‘종말’에 가까워지는 듯해도, 무의미하게 시간이 흘러가는 듯해도, 삶을 지나는 모든 시간 동안 우리는 살아 있고 삶의 모든 순간은 언제나 유의미하다는 주제를 다채롭고 섬세한 시각으로 그려 낸다.

 이 소설은 내가 어딘가에 고여 있다고 생각하거나, 이미 지난 일이나 앞으로의 미래를 걱정하느라 하루를 다 써 버린 10대들에게 용기와 위로를 건네는 문장들을 담았다. 어쩌면 종말은 곧 다가올 미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밝게 웃는다면, 환하게 빛난다면, 우리는 그걸로도 충분히 반짝이는 삶을 살아내는 게 아닐까.  

스토리 클래식

오수현 / 블랙피쉬 / 1만6천500원

이 책은 시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천재 음악가 16인의 생의 순간들을 포착한다. 가장 은밀하고 사적인 삶의 이야기로 클래식의 이해를 돕는다. 

 교향곡의 아버지로 불리는 하이든이 그때 그 시절엔 하인이었다는 사실, 60번 넘게 이사 다녀야 했던 베토벤의 사연, 지휘하다 결혼식을 올리고 돌아올 정도였던 워커홀릭 말러, 악마의 피아노 연주라는 별명을 가진 리스트의 사교계를 뒤흔든 연애 스캔들 등을 전한다. 

 그동안 클래식 음악이 주는 왠지 모를 근엄함에 가려졌던 이들의 파란만장 삶의 현장을 들여다본다. 그 속에서 피어난 명곡의 탄생 과정과 함께 300년 가까이 이어온 그들 작품의 위대함을 설명한다. 거장들의 혹독하면서도, 현재의 우리와 별다른 것 없는 희로애락 속에서 길어 올리는 클래식 이야기는 그간 높게만 느껴지던 클래식의 장벽을 확 낮춰 준다. 또 음악가들의 출생 순서에 맞춘 구성을 통해 세계사의 흐름을 익히며 그들의 해프닝까지 들여다본다.

나는 더 이상 휘둘리지 않을 거야

샤론 마틴 / 에디토리 / 1만8천 원

 간혹 자기가 잘못해 놓고 내 탓을 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이들의 태도에 기분이 나쁘면서도 왠지 도와주지 않으면 갈등이 커질까 봐 혹은 모두가 내 곁을 떠날까 봐 어쩔 수 없이 원하는 대로 해 줄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내 안의 자존감과 욕구는 충족되지 못하고 깊은 좌절감을 맛보게 된다. 나의 욕구를 억눌러 가며 무례한 요구에 응하는 일은 자기 학대와도 같다.

 캘리포니아에서 20년 이상 심리치료사로 활동해 온 샤론 마틴은 무례한 요구를 거절하고 나만의 경계를 그어야 ‘나’와 ‘내가 아닌 것’을 구분한다고 말한다. 이를 통해 자존감을 보호하고 건강한 인간관계를 이어나가게 된다고 강조한다.

 물론 경계를 설정하는 일은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은 저자가 실제 치료현장에서 사용하는 활동들을 토대로 한 연습문제와 체크리스트를 담았다. 이를 통해 나의 경계는 얼마나 강하거나 약한지 체크하고, 과거 나의 경계를 침범해 온 사람들에게 어떤 상처를 받았는지 복기하며, 앞으로 나의 욕구를 무례하지 않으면서 명확하게 전달하는 방법을 알아간다. 

 또한 직장, 가정, 친구, 대하기 어려운 사람들, 현대 기술, 나 자신과는 어떻게 경계를 설정해야 하는지 해당 영역별로 쉽게 따라 하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우리는 누구나 남이 해 달라는 대로 휘둘리며 살아가길 원하지 않는다. 이 책은 죄책감을 무기로 나를 휘두르려는 사람들에게서 해방되라고 말한다. 독자들이 설정한 명확한 경계가 그 해방의 지름길이다.

 홍봄 기자 spring@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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