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순 서울기독대학교 겸임교수
이상순 서울기독대학교 겸임교수

최근 패션 유튜브 채널 ‘밀라논나(이탈리아어로 ’밀라노 할머니’라는 뜻)’를 운영해 구독자 90만 명을 돌파하며 2030세대의 핫한 할머니로 떠오른 70대 실버 크리에이터가 있다. 그녀는 디자이너 장명숙 씨로, 1978년 의상 공부를 위해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유학한 최초의 한국인이다. 필자 역시 이탈리아에서 유학을 했기 때문에 그녀의 영상과 책을 읽고 많은 공감을 하며 그녀가 젊은 세대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이유는 단순히 옷을 잘 입어서만 아니라 그들의 인생에 대한 고민을 들어주고 진솔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 ‘멋진 어른’의 모습을 보여 주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밀라논나는 유학 후 유명 백화점 디자인 고문 및 구매 디렉터로 일했으며 1990년대 당시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를 한국 백화점에 론칭했고,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개·폐회식 의상 디자인과 수많은 오페라 공연의 무대의상 디자인을 맡았다. 또한 유럽 3대 오페라 극장인 스칼라 극장에서 일하면서 성악가 파바로티와의 친분도 밝혔다. 

밀라논나가 쓴 책을 읽고 떠오르는 여성이 있었다. 바로 오페라 가수가 꿈이었던 코코 샤넬이다. 여성이라면 그녀가 디자인한 가방이나 향수 구매에 대한 욕구가 한번쯤은 있었을 것이다. 어릴 적 오페라 가수가 꿈이었던 샤넬은 동네 카페에서 ‘코코 리코’와 ‘누가 코코를 보았는가?(Qui qu’a vu Coco?)’를 즐겨 불러 대중들에게 ‘코코’라는 애칭을 얻었고, 지금의 코코 샤넬(CoCo Chanel)이 돼 로고가 됐다고도 한다. 노래를 통해 자기 존재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었으나 소리가 거칠어 포기하고 후원자 에티엔 발상(Etienne Balsan)을 만나 모자 가게를 차리게 되면서 패션사업으로 다시 태어나는 기회를 맞게 된다. 샤넬은 발상의 남자 승마바지를 고쳐 입으면서 처음으로 여자에게 바지라는 옷을 통해 활동성과 자유를 선물한다. 현재 여성들이 사회활동을 편하게 할 수 있게 해 준 것에 샤넬에게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20세기 최고의 오페라 가수였던 ‘마리아 칼라스’의 예술혼과 사랑을 그린 영화 ‘칼라스 포에버’에서는 그녀의 음악세계뿐 아니라 정제되고 우아한 1950년대 ‘샤넬’ 스타일도 엿볼 수 있다. 영화 속에서 칼라스가 "그렇다면 바로 샤넬!"이라고 외치는 장면이 있다. 실제 마리아 칼라스는 샤넬의 옷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고도 한다. 샤넬 상징의 꽃인 ‘카멜리아(camellia·동백꽃)’는 순수한 흰색에서 느껴지는 우아한 품격 그리고 삶과 사랑에 열정적이고 당당한 현대 여성의 향기를 풍겨 샤넬 브랜드의 상징이 됐다. 

카멜리아는 오페라에서도 볼 수 있는데, 프랑스 소설가 알렉상드르 뒤마가 쓴 「동백꽃을 든 여인」을 토대로 만든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에서 비극의 여주인공 비올레타는 동백꽃을 들고 순수한 정절을 담아내며 하룻밤이면 시들어 버리는 짧은 생명력 때문이라는 점에서 결코 이뤄지지 못할 두 사람의 관계를 암시하는 상징으로 표현된다. 

샤넬은 마치 가슴이 저리고 견딜 수 없는 좌절된 사랑 앞에 쓰러진 여주인공 비올레타에게 속삭이듯이 "슬프고 사랑 때문에 아프다면 화장을 하라. 자신을 돌봐라. 립스틱을 바르고 앞으로 나가라"라고 말한다. 그녀가 힘겨웠던 어린 시절을 극복하고 내면적으로 견뎌야 했던 여성으로서의 삶을 그대로 나타낸 것 같아 가슴이 저려 온다. 샤넬이 오페라 가수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노래에 열정을 쏟았다면 무대에서 비올레타의 아리아를 노래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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