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계봉 시인
문계봉 시인

꿈을 꿨습니다. 꿈속에서 시의원 후배의 꿈 얘기를 들었지요. 지난밤의 취기를 다스리며 사무실에 출근하니 편지 하나가 도착해 있더랍니다. 꿈속의 후배가 (자신의 꿈속) 기억을 더듬으며 내게 말해 준 편지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믿는 건 자유입니다.

"의원님, 국회의원은 말할 것도 없고 시군구 의원까지 대한민국 의원 선거는 시민에게 봉사할 일꾼을 뽑는 게 아닌가 봅니다. 선거 때는 유권자 앞에 납작 엎드려 있던 그들은 당선되는 순간 갑자기 표정이 바뀌며 군림하려 듭니다. 

지방선거를 통해 시군구 의원을 뽑는 이유는 더 가까운 곳에서 시민들의 어려움을 헤아리고 시 정부의 전횡을 감시해 민생이 나아지도록 노력해 달라는 이유겠지요. 하지만 의원님 중 극히 일부는 당선되는 그 순간부터 표변합니다. 그분들께 알량한 권력이나마 쥘 수 있게 해 준 게 바로 시민이라는 걸 잊는 거지요. 물론 그분들은 입버릇처럼 시민과 지역 발전을 소리 높여 외칩니다. ‘나, 군림할래!’라고 말하는 분은 한 분도 없습니다. 

특히 시의회에서 시 정부나 각급 기관으로부터 보고 받을 때 보면 마치 조선시대 포도청에서 죄인을 문책하는 것 같더군요. 시의회 활동이란 그렇듯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라고 열리는 게 아니잖아요? 시민은 일꾼들이 주인 행세를 하는 걸 보기 위해 세금을 지불하고 싶지 않을 겁니다.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려고 전문적 식견도 없고 사전 공부도 하지 않은 채 소리부터 고래고래 지르는 일부 의원님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너무 서글퍼서 눈물이 날 지경입니다. 

단상에 올라 보고하거나 의원님들의 질문을 받는 분 중에는 그 방면에서 수십 년간 일한 전문가들이 많습니다. 물론 근무 이력이 사업의 완결성을 보증하는 건 아니겠지만, 정확하게 질문하고 정당하게 비판하며 제대로 된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의원님 쪽에서도 (전문적 식견까지는 아니더라도) 해당 영역에 관한 최소한의 공부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빗나간 권위의식으로 똘똘 뭉쳐진 채 그저 죄인 문초하듯 소리만 질러댄다면 시민들이 어찌 그런 의원님을 신뢰하거나 응원할 수 있겠습니까? 

또 하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개원 초기 의원님들이 기관 업무 파악이란 목적으로 관련 기관을 방문하는 일입니다. 해당 기관 직원들은 근무 중에 의원님들이 방문할 경우 일하다 말고 전부 일어나 미리 대기하고 있다가 인사하고 박수하고 웃음 지어야 합니다. 부서 과장이나 팀장은 하던 일을 멈추고 의원님들을 위해 (사실 말해도 모를 게 뻔한) 브리핑을 합니다. 군대에서 사단장 순시하는 것도 아니고 이게 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각각의 상임위원회들이 관련 기관을 방문해서 업무를 듣고 이해하는 과정은 필요합니다. 

의원님들이 찾아간 그 기관의 직원 중에는 해당 분야에서 적게는 5년, 많게는 수십 년 이상 일한 분들이 무척 많습니다. 그분들이 의원님들보다 부족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분들도 의원님에게 세비를 주는 시민의 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제발 태도부터 바꾸십시오. 겸손해지십시오. 배우고 공부하십시오. 왜 시민들이 의원님들에게 아까운 세금으로 의정활동비를 지급하는 건지 제발 생각 좀 하십시오. 그래서 공부하는 의회, 훌륭한 정책이 샘솟는 의회, 건강하고 타당한 비판이 존재하는 의회를 만들어 주십시오. 

의원님들은 속된 말로 ‘가오 잡으라고’ 그곳에 있는 게 아닙니다. 봉사하고 섬기고 일하고 대변하라고 그곳에 있는 겁니다. 30~40대 초선 의원이 늙수그레한 기관의 대표나 부서장을 쥐잡듯 잡는 모습은 그리 아름답지도 멋지지도 않습니다. 그들이 잘못된 정책을 펼치거나 공직자로서 불성실한 모습을 보인다면 당연히 비판할 수 있는 거지만 그게 아니라면, 아니 그럴 때조차도, 치밀한 공부와 품위 있는 모습으로 문제제기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의원님의 품격도 높아지지 않겠습니까?(이하 생략)"

이상이 꿈속에서 내가 들은, 후배가 (자신의 꿈속에서) 받은 편지의 대략적인 내용입니다. 잠을 깨고 나서도 후배는 꿈속에서 받은 편지 내용이 하도 뼈를 때려서 멍하니 침대에 누워 있었다고 하더군요. "황당하기도 하지. 우리 의원님들이 시민을 위해서 얼마나 불철주야 애를 쓰는데…."라고 생각하며 말입니다. 

아무튼 의원이 아닌 게 정말 다행이라 생각하며 나도 잠을 털어내며 침대에서 내려왔습니다. 창밖에는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더군요. 내 꿈속에 들어온 후배의 꿈속에서도 비가 그리 세차게 내리고 있었을까요? 아마 그랬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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