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태 섬마을선생님연구회 운영위원
이영태 섬마을선생님연구회 운영위원

대중가요의 표절 문제가 회자(膾炙)되고 있다. 대중의 사랑을 자양분으로 삼아야 하는 대중가요가 표절 논란에 맞닥뜨리는 순간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게다가 작곡가를 향한 대중의 신뢰가 두터웠던 만큼 실망이 커서인지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표절(剽竊)이란 단어에서 표(剽)는 칼로 베다, 자르다, 깎다, 훔치다 등이고 절(竊)은 도둑질하다, 남몰래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표이건 절이건 긍정보다 부정적인 의미가 자의(字意)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창작자에게 표절은 가장 경계해야 할 단어다. 

사람의 이름을 많이 쓰면 귀신을 수레에 가득 실은 것과 같은 문체인 재귀영거체(載鬼盈車體), 옛사람의 글뜻을 몰래 취해 쓰면 서툰 도둑이 잡히기 쉬운 것과 같은 문체인 졸도이금체(拙盜易擒體), 그 재주는 헤아리지 않고 정도에 지나치게 압운하면 술을 너무 많이 마신 것과 같은 문체인 음주과량체(飮酒過量體). 창작자가 주의해야 할 것 중 세 가지만 제시해 봤다. 

고려시대 문장가 이규보(李奎報, 1168~1241)는 창작자가 주의해야 할 ‘아홉 가지 마땅하지 않은 것(九不宜體)’을 「백운소설(白雲小說)」에 적시해 놓았다. 창작에는 고뇌가 수반되지만 이를 감내하지 않고 성과물에 매달리는 경우 창작자는 ‘아홉 가지 마땅하지 않은 것(九不宜體)’에 해당할 수 있다고 한다. 

쉽고 편한 창작은 귀신을 수레에 가득 채우거나 서툰 도둑질을 하거나 혹은 음주 과량에 해당하는 행위에 해당한다. 과거의 성과를 부분적으로 섞어 짜깁기하거나(재귀영거체) 기존의 좋은 표현을 베끼거나(졸도이금체) 자신의 깜냥을 넘어서는 현란한 수식에 매달리는(음주과량체) 등이 그것이다. 첫째, 둘째는 표절 그 자체이고, 셋째는 표절을 교묘하게 숨기려다가 종국에는 자신의 한계를 저절로 드러내는 경우다. 무엇보다 창작자는 ‘아홉 가지 마땅하지 않은 것(九不宜體)’의 유혹을 이겨내야 진정한 창작 성과를 낼 수 있다. 

무릇 시(詩)가 완성되면 거듭 보되 자기가 쓴 것으로 보지 말고 남의 것을 보듯 할 것이며, 나아가서는 평생 깊이 미워하는 자의 시를 보듯 그 결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백운소설」에 전하는 퇴고의 방법이다. 자신의 창작물을 객관적으로 검토하는 데 머물지 말고 ‘평생 깊이 미워하는 자의 시를 보듯 그 결점을 찾으라’고 한다. 

창작자가 표절 논란에서 벗어나는 길은 1차 창작자에 대한 정보를 밝히는 데에서 출발한다. 이른바 직접이건 간접이건 혹은 창작에 영향을 받은 사소한 아이디어조차도 출처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 흔히 표절(plagiarism)의 라틴어 어원이 유괴범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염두에 둘 때, 표절은 다른 사람의 정신적 아이(brain child)를 훔치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 

표절 논란에 결부된 창작자는 무의식적 영감에 따른 우연의 일치를 운운하기보다는 원래 창작물의 어떤 부분을 어떻게 계승·발전시켰는지를 해명해야 한다. 창작자는 귀신들을 수레에 싣고 운반하는 역할만 하는 게 아니다. 수레의 규모를 정하고 그 안의 공간을 분할해 귀신들을 배치하는 일은 수레를 운용하는 창작자의 몫이다. 수레 운용자는 귀신을 찾아 자신의 수레에 적합한지 그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수레 운용자의 잘못된 판단은 귀신과의 소통이 전제되지 않았을 때 발생하기에 그렇다. 

결국 귀신과의 소통능력이 없는 수레 운용자는 ‘옛사람의 글뜻을 몰래 취해 쓰면 서툰 도둑이 잡히기 쉬운 것(졸도이금체)’이라는 유혹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이를 숨기려고 출처를 밝히지 못하는 것이다. 작금의 표절 논란을 법고창신(法古創新,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함)을 되새기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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