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대부분의 명작이나 영화의 주제는 ‘사랑’입니다. 그만큼 삶에서 사랑이라는 요소가 중요하기 때문일 겁니다. 삶에서 사랑을 빼면 불행이고, 사랑이 더해지면 행복이라는 말도 쉽게 수긍이 갑니다. 도대체 사랑이 뭐길래 이렇게 행복과 불행을 나눌 만큼 중요한 걸까요?

어느 자료집에서 읽은 내용이 떠오릅니다. 1994년 9월 27일, 발트해를 지나 스웨덴의 스톡홀름으로 향하던 에스토니아호가 악천후로 침몰하는 큰 사건이 있었습니다. 989명 중에서 852명이 사망하고 겨우 137명만이 생존한 대형 참사였습니다.

배가 침몰한 그곳은 영하의 추운 날씨였습니다. 구조대가 와서 생존자들을 수색할 때 인근에서 표류하던 남녀 한 쌍을 구조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기력을 잃고 모두 숨졌는데 유독 그들만이 멀쩡하게 살아 있는 상황이 궁금해서 어느 구조대원이 물었다고 합니다.

"무엇을 생각하면서 이 추위와 강풍을 이겨냈습니까?" 그들의 말에 따르면, 갑판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서로에게 호감이 있었는데, 배가 침몰하려고 하자 청년이 달려와 구명보트를 던져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우리, 살아나면 스톡홀름에서 꼭 같이 저녁 식사를 합시다."

이 말이 두 사람에게는 살아나야만 한다는 강한 의지로 작용했고, 결국 그 의지의 힘으로 살아날 수 있었던 겁니다.

이 글을 소개한 자료집에는 글쓴이가 덧붙인 말이 있었습니다. ‘사는 것의 재미나 기대감은 만남과 사랑의 작은 설렘에서 온다. 그래서 우리는 동행이 필요하다. 누군가에게서 위로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누군가와 슬픔을 나누는 자는 행복하다. 우리는 나약하다. 때아닌 바람에 고개를 숙일 때도 있고, 갑자기 천둥 번개에 놀라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조금만 더 힘내라고, 조금만 더 가면 고지가 보인다고 응원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느리게 가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힘, 오래 걸리더라도 꾸준히 가는 힘, 그 힘의 비결은 오직 함께 걸어가 주는 그 사람에게 있다.’

사랑의 힘은 생사의 갈림길에 처한 두 사람을 살려냈습니다. 극심한 혹한이나 죽음에 대한 공포심마저 사랑의 열기로 인해 모두 녹여버렸습니다. 누군가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것이 느껴질 때, 또는 누군가를 내가 무척 사랑하고 있다는 감정이 들 때 우리는 감격합니다. 이 감격이 힘겨운 삶에서도 견뎌내게 하는 힘이 되어줍니다.

사랑은 한 사람을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힘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지혜 이야기」(치우칭지엔 & 황쉬에리)에 노벨화학상 수상자 빅토르 그리냐르의 일화가 나옵니다.

그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에는 특별히 하는 일이 없이 한가롭게 살아가는 한량이었습니다. 어느 날 파티에 참석했다가 젊고 아름다운 아가씨를 보고 첫눈에 반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냉담하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탁인데 내게 가까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난 당신 같은 바람둥이는 질색이에요."

지금까지 그의 접근에 차갑게 등을 돌린 여성은 없었습니다. 그러니 정신이 번뜩 들 수밖에요. 화가 났지만, 이성을 잃지 않고 자신을 냉정히 돌아보았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얼마 후 그는 가족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학문을 닦아 큰 업적을 세울 겁니다. 믿어주세요." 그리고 그는 세계적인 유기화학자가 되었습니다. 한량으로 살아가던 그가 세계적인 학자로 성장하기까지 엄청난 노력을 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 치열한 삶을 기꺼이 살아가게 한 힘은 한 여인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이렇게 사랑을 주고받으며 사는 것이 행복한 삶입니다. 사랑이야말로 재앙을 물리치는  유일한 무기이고, 삶을 희망으로 가득 차게 만드는 씨앗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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