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우리는 지금 코로나 팬데믹, 디지털과 에너지 전환, 인구절벽, 미·중의 대결, 한·일 관계의 재편 등 다양한 변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복합 대전환의 시대 상황에 처했다. 예측하기 어려운 시계 제로의 불확실성과 다양한 분야가 서로 얽혀 변화의 진폭이 얼마나 크게 될지 모르는 초불안성을 직접 경험하는 셈이다.

우선 중국이나 일본과의 관계에서도 상황은 여의치 않다. 동북아시아가 세계의 화약고처럼 인식되는 까닭은 우리 때문이 아니라 미·중 관계 악화가 가장 큰 요인이고, 우리는 건전하고 안정된 이웃관계를 원하지만 패권 경쟁과 강대국 국제질서는 우리로 하여금 중국과 일본에 대해 원치 않는 갈등을 강요한다는 점이다.

사드 하나로 중국 안보가 결정적으로 위협 받을까, 또 한국의 안보가 획기적으로 개선될까, 아니다. 군사·안보 전문가가 아닐지라도 안다. 그런 사드가 한국과 중국의 새로운 외교수장 회담의 주 의제가 되는 일부터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실을 양국이 모를 리 없다. ‘읽어버린 10년’의 늪에 빠진 한·일 관계를 장기 악순환 구조에서 선순환 구조로 속히 바꿔야 하는데 양국의 기본적인 인식은 관계 복원에 적신호를 주고 있을 뿐이다.

강제동원·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일본 기업 재산 현금화 ‘동결’에서 일본은 한국이 먼저 손을 들라고 요구한다. 국내 정치 상황은 관계 회복을 서두르다 역류를 만날 위험이 상존한 만큼 확실히 다져나가는 해결안을 마련해야 하는데 바닥난 신뢰 자산으로 해결의 동력을 찾기 쉽지 않아 보인다.

동북아에서 역사 문제나 현실적 갈등은 과거·현재·미래를 균형 있게 살피는 접근이 필요하다. 과거를 빼놓을 수 없으므로 외교적 타협이 가능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할 테고 동시에 현재의 상황과 미래를 내다보는 노력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과거사 현안과 역시 인식 문제의 분리부터 검토해야 한다. 독일과 폴란드가 공동 교과서를 만드는 데 70년이 걸렸다. 역사 화해란 그리 쉽지 않다는 좋은 예다. 우리가 일본과의 식민 지배를 둘러싼 앙금을 미래의 거울로 삼으면서 공동의 역사 연구, 공동 교과서 집필 등을 꾸준히 추진하는 일은 매우 필요하다.

중국이 사드를 놓고 ‘3불1한’ 지침을 발표해 오만한 중국이라는 인식을 줬으나 그들만 욕할 수 없다는 점은 자명하다. 마찬가지로 일본에 대해서도 통상 규제와 한국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운영 정상화를 가능케 하면서 양국의 해법을 찾는 데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 강제동원 관련 일본 기업의 재산 현금화 동결 같은 조치도 필요할 터다. 2015년 합의했던 위안부 문제도 보완해 진전을 이뤄야 한다. 어느 일반의 승리가 아니라 양쪽 모두 한두 걸음 물러서는 태도가 긍정적 효과를 가져오리라 본다.

이제 우리는 77년간 산업화·민주화·국제화로 분단의 고통, 전쟁의 상흔, 빈곤의 처절한 상처를 극복하고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 1965년 한·일 수교, 30년 전 한·중 수교 당시의 양국 간 격차는 이미 의미 없는 일이 될 만큼 달라졌다. 이제는 동북아 3국이 세계적 시각에서 이웃국가의 입장과 존재 가치를 서로 인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피해자·가해자 프레임을 넘어 선린관계를 만들 책임은 3국 지도자들 어깨에 놓인 중차대한 임무이자 마땅히 노력해야 할 과제다.

기본적으로 열강이 조성한 국제 정세 때문에 우리는 지금 안보·외교 위기로 빨려 들어간다. 미국은 중국과의 대결에서 한국이 올인하라고 압박하고, 중국은 그렇게 된다면(?) 보복하겠다고 은근히 협박한다. 일본은 한국이 먼저 항복하라고 하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제재에 동참했다고 우리를 ‘비우호국’으로 지정했다. 북한은 삐라 문제를 갖고 코로나 감염까지 책임지라며 핵 실험을 만지작거린다. 거친 언사 위에 도발의 명분을 쌓으려는 심산이 엿보인다.

이런 국가적 상황에서 여·야 정치권은 지금 가히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한다. 집안싸움을 넘어 국민들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준다. 국민이 정치를 걱정하는 시대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우리 국민은 이제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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