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웠던 일을 기억할 때 손가락이 굽는 듯한 느낌을 수치심이라 한다. 올해는 우리나라가 광복을 맞은 지 77년째 되는 해다. 해마다 오는 광복의 달, 광복 몇 주년이 벌써 한 세기간 이어진다.

이렇게 오랫동안 그 시기를 기억하려고 노력하지만, 정작 당시 수치스러웠던 ‘친일’에 대해서는 마치 읽기 싫은 그 시절의 편지처럼 쌓아 뒀다.

경기도박물관은 지난 4월 27일부터 기획전시실에서 이 편지를 꺼내 전시 중이다. ‘항일과 친일, 백년 전 그들의 선택’ 특별전에서는 우리가 교과서로 봤던 항일의 흔적이 담긴 유물뿐 아니라 수치심이 들 만큼 황당한 친일 흔적까지 보여 준다.

기호일보는 경기도박물관과 함께 지상전시를 준비했다.

대한민국 제34회 임시의정원 의원 일동.
대한민국 제34회 임시의정원 의원 일동.

# 박본수 경기도박물관 책임학예사가 전하는 전시

전시는 구한말~일제강점기에 경기도에서 펼쳐진 의병활동과 3·1만세운동의 장소와 인물을 기리고, 나라를 팔아 부귀영화를 얻은 친일파와 일제 잔재에 대한 기억을 환기시킴으로써 역사의 엄중함과 국가·공동체의 중요성을 다시 인식하고자 기획했다.

근대 이후 한국은 수십 년간 식민지라는 암울한 터널을 지났지만 치열한 독립운동이 있었기에 그 역사는 결코 초라하지도, 부끄럽지도 않다. 한국인에게 일제강점기는 잊지 못할 아픔이며 지워지지 않는 상처다. 100년 전 깊은 절망에 빠졌던 사람들,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고 스스로 가시밭길을 걸었던 사람들은 과연 지금의 대한민국을 예측했을까? 100년 전 우리는, 나라면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까? 이 전시를 보기 전에 우리 모두가 스스로에게 던져볼 만한 질문이다.

전시에는 최근 수년간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이 수행한 경기도의 항일독립운동 문화유산 실태조사, 항일운동유적 안내판 설치, 항일운동 문화유산 조사사업, 항일운동 인명록 발간, 친일 잔재 상징물 안내판 설치 등 여러 사업의 결과물과 국사편찬위원회의 일제 감시 대상카드, 국가보훈처의 독립운동 현충시설 자료, 문화재청의 자료 등을 정리해 소개한다.

여기에 더해 독립운동가 조병세·김병엽·박찬익 관련 유물 등 그간 경기도박물관이 기증받은 근대와 독립운동 관련 유물이 이번 전시의 토대다. 밖으로 민족문제연구소(식민지역사박물관)의 후원과 함께 안성 3·1운동기념관, 제암리 3·1운동순국기념관, 양평 몽양기념관, 여주박물관, 수원박물관, 민세안재홍기념사업회, 용인문화원 등 경기도의 항일독립운동 관련 유관기관·단체, 개인 소장가에게 빌린 유물과 자료, 이미지와 영상물 등을 종합해 전시로 연출했다.

주요 전시품은 한말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서화, 판화, 유화, 사진, 신문, 도서, 엽서, 영상물 등 200여 점이다. 제1부 ‘대한제국의 비극, 그들의 선택’, 제2부 ‘항쟁과 학살, 그날 그곳을 기리다’, 제3부 ‘친일과 일제잔재’, 제4부 ‘유물로 만나는 경기도의 독립운동가’ 등으로 구성됐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감시 대상이었던 인물 여운형. 사진은 일제감시대상카드.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감시 대상이었던 인물 여운형. 사진은 일제감시대상카드.

제1부 ‘대한제국의 비극, 그들의 선택’은 구한말과 대한제국기 일본제국주의의 침략, 임오군란(1882), 청일전쟁(1894), 러일전쟁(1904), 정미의병(1908) 관련 유물, 죽음으로 일제에 항거한 순국열사 조병세·최익현·민영환·이한응의 유품과 무장독립항쟁을 위해 전 재산을 팔아 만주로 망명한 이석영 6형제에 관한 영상물, 지조를 지키는 마음을 표현한 윤용구·안중식·오세창·한용운의 서화 등을 전시한다.

제2부 ‘항쟁과 학살, 그날 그곳을 기리다’는 3·1독립만세운동과 화성 제암리 학살 관련 유물과 자료를 전시한다. 

국내외에서 전개된 3·1독립만세운동은 총 1천692회에 최대 200여만 명이 참여한 대규모 민족운동이었다. 경기도는 타 지역에 비해 줄곧 격렬하게 만세운동을 전개해 총 367회로 전국에서 가장 많았고, 참여 인원도 17만~20여만 명에 이르렀다. 이에 1919년 4월 15일 일본군은 지금의 화성시 제암리에서 주민들을 집단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전시실에 걸린 대형 유화 ‘제암리 뒷동산 만세소리’(1983년, 김태 작)와 영상물 ‘4월의 어느 날’(2분 50초)은 화성 제암리 3·1운동순국기념관에서 빌렸다.

제3부 ‘친일과 일제잔재’는 경기도의 대표적 친일파 10명(이완용·송병준·박제순·이재곤·박영효·박필병·민원식·홍사익·조희창·홍난파)과 송병준·송종헌 부자의 공덕비와 팔굉일우(八紘一宇, 세계를 천황 아래에 하나의 집으로 만든다) 관련 자료와 탁본을 전시한다.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는 친일파를 "을사늑약(1905) 전후부터 해방(1945)까지 일제의 국권침탈, 식민통치,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함으로써 한민족을 비롯한 여러 민족에게 신체·물리·정신 면에서 직간접 피해를 끼친 자로서 활동 흔적이 뚜렷한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일제잔재는 "일제의 침략전쟁과 식민통치 기간에 일본제국주의의 영향 아래 생산되거나 정착했음에도 해방 이후 청산되지 못한 유·무형의 부정적 유산", 친일잔재는 "친일 논리의 영향을 받은 유·무형의 유산"을 말한다.

제4부 ‘유물로 만나는 경기도의 독립운동가’는 경기도 출신 중 주요한 독립운동가 류근·여운형·조소앙·조성환·박찬익·안재홍·신익희·엄항섭 등의 유물을 전시한다. 특히 여주박물관이 소장한 조성환 선생의 유품, 경기도박물관이 기증받은 파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찬익 선생 일가의 유품, 평택의 민세안재홍기념사업회가 소장한 안재홍 선생의 유품 등을 전시한다.

전시장에는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가 제작한 주홍 작가의 샌드 애니메이션 ‘도마 안중근’을 비롯해 모두 8개의 영상물이 상영되고, 민족문제연구소가 간행한 ‘친일인명사전’과 지역사연구소·식민지역사박물관이 발간한 ‘우리 지역 일제잔재를 찾아라’의 PC 검색 코너 등이 마련됐다.

그리고 문화재청이 최근 국가보물로 지정한 ‘데니 태극기’ 등 3종의 태극기를 소개했다. 포토존은 1942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의정원(현재의 국회) 사진을 활용했으며, 체험존은 ‘소망나무에 메시지 달기’, ‘나라사랑 태극기 만들기’ 등이 있다.

김구 선생, 중국인 왕백수 부부와 함께 기념촬영한 경기도 출신 독립운동가 엄항섭과 박찬익.
김구 선생, 중국인 왕백수 부부와 함께 기념촬영한 경기도 출신 독립운동가 엄항섭과 박찬익.

# 주요 전시물

▶르 쁘띠 주르날(1907년 8월 4일) 서소문 전투 묘사, 44×33, 경기도박물관 소장 13671

1907년 8월 4일 발행된 프랑스 화보신문인 ‘Le Petit Journal(르 쁘띠 주르날)’의 삽화로, 삽화의 제목은 ‘한국의 내란-서울에서 폭도와 싸우는 일본인 경찰’이다. 1907년 6월 고종의 헤이그 특사 파견을 계기로 7월 고종이 강제 퇴위되자 서울에서 반대 시위가 일어났지만, 일본군이 무력으로 진압했다.

이어 이완용이 이토 히로부미와 정미7조약을 체결하고 그 결과 1907년 8월 1일 군대가 해산당하자 대한제국 진위대 제1연대 제1대대장 박승환 참령이 자결해 해산령에 저항했고, 그 소식을 듣고 제1연대 제1대대와 제2연대 제1대대의 무장봉기로 이어져 일본군과 접전이 일어났다.

군대 해산으로 촉발된 대한제국군과 일본군의 접전(서소문 전투)으로 일본군에게 잔혹하게 학살되는 모습이 ‘르 쁘띠 주르날’에 실려 당시 처참한 전투의 모습을 만나게 된다. 서소문 전투는 병력의 차이로 일본군에게 패배했으나 정미의병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됐다.

▶이한응 열사 철명판, 43.5×35.2, 이민섭 소장

이한응(李漢應, 1874~1905, 용인 출생)은 한말의 외교관으로 영국·벨기에 주차공사관 3등 참사관, 통정대부, 서리공사가 됐다. 제1차 한일협약이 맺어지고 밖으로 영·일동맹으로 한국 정부의 지위가 떨어지자 이를 개탄해 음독자살했다. 이 유물은 이한응 열사의 유해가 영국에서 돌아올 때 관에 부착됐던 명판이다. 철로 만들었다고 해서 철명판이라 한다.

▶소요일람지도(騷擾一覽地圖), 1919년, 51.5×36.0, 국사편찬위원회 소장

소요일람지도는 조선총독부에서 1919년 4월 30일 작성한 가채 인쇄본의 조선 전도로, 3·1운동의 전국 현황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만한 지도다. 지도를 통해 3·1운동이 남부의 제주도에서 북부의 러시아 접경지역에 이르는 한반도 전 지역에서 전개됐음이 확인된다. 또 시위가 경부선과 경의선을 중심축으로 하는 철도망을 타고 전국으로 확산된 양상도 보게 된다.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1920~40년대, 국사편찬위원회 소장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감시 대상이었던 인물 4천857명에 대한 신상카드로 국가등록문화재다. 1920~1940년대에 일제 경찰에서 제작했다고 추정되며, 1980년대 치안본부(현재 경찰청)에서 국사편찬위원회로 이관됐다. 카드에는 안창호·한용운·여운형·이봉창·유관순·윤봉길 등 일제에 항거한 독립운동가들이 다수 포함됐다. 사진·출생연월일·출생지·주소·신장 등 개인의 기본정보 외에 활동·검거·수형에 관한 사실들이 가로 15㎝, 세로 10㎝ 크기의 카드 앞뒷면에 기록됐다.

부착된 인물사진은 희귀한 경우가 많으며, 당대의 민족운동이나 독립운동을 조사하거나 확인할 때 가장 신빙성 있고 설득력 있는 자료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한 인물이 여러 차례 기록된 경우도 있어 총 수량은 6천264매(점)이다.

이한응 열사 철명판
이한응 열사 철명판

▶나라를 팔아 얻은 부귀영화, 을사오적·정미칠적·경술구적

구한말 매국조약 체결에 앞장선 조정대신들은 을사5적(1905년 을사조약), 정미7적(1907년 한일신협약), 경술9적(1910년 ‘합병’조약)으로 불렸다. 이들은 당시에 나라 팔아먹은 매국으로 질타받았고 이들의 처단을 요구하는 상소가 빗발쳤다. 을사오적을 직접 암살하려는 공격도 잇따랐다.

1906년 2월 이근택(李根澤, 을사5적 중 군부대신)이 저격당했고, 1907년 3월에는 나인영(羅寅永, 羅喆)·오기호(吳基鎬) 등이 을사5적 암살을 계획해 실행하려다가 실패하기도 했다. 이완용도 1909년 12월 명동성당 앞에서 이재명의 칼을 맞고 오른쪽 폐를 관통 당했지만 목숨은 건졌다. 이재명은 그 자리에서 체포돼 재판을 받았는데 판사가 배후를 묻자 "이완용을 살해한다 하면 우리 이천만 동포가 모두 찬성치 않을 자 없을 것이오. 이천만 동포 모두가 배후요"라고 답변하고 서대문형무서에서 의연하게 죽음을 맞았다. 그만큼 매국에 대한 민중의 분노는 상상을 넘어선다. 

매국노들을 예외 없이 일제강점 직후에 ‘조선귀족(朝鮮貴族)’으로 작위를 받고 거액의 은사공채(恩賜公債)로 부를 축적했으며, 작위를 세습한 후손들도 대를 이어가며 각종 특권을 누렸다.

▶팔굉일우 비석 탁본(八紘一宇 碑石 拓本), 1941년, 194×84, 식민지역사박물관 소장

비석은 정미칠적(丁未七賊)으로 대표되는 친일파 송병준의 아들인 송종헌이 직접 쓴 일제 찬양 석비로, 2008년 양지초등학교에서 발견돼 용인문화원에 기증했다. ‘팔굉일우’란 ‘온 천하가 한 집안’이란 뜻으로, 일제가 침략전쟁을 합리화하려고 내건 구호다.

당시에는 일본인들이 자신의 침략을 정의·공영·팔굉일우 등으로 표현했다. 왼쪽 면에는 ‘開校30年 記念 昭和16年 9月 1日 同窓會 後援會 贈呈’이라고 썼다. 소화 16년은 1941년으로 양지초등학교 개교 30주년을 기념해 동창회 후원회가 비석을 증정했다는 의미다.

친일파 송병준의 아들인 송종헌이 직접 쓴 일제 찬양 팔굉일우 비석 탁본(八紘一宇 碑石 拓本), 1941년.(왼쪽) 1907년 8월 4일 발행된 프랑스 화보신문인 ‘Le Petit Journal(르 쁘띠 주르날)’의 삽화로, 제목은 ‘한국의 내란-서울에서 폭도와 싸우는 일본인 경찰’이다.
친일파 송병준의 아들인 송종헌이 직접 쓴 일제 찬양 팔굉일우 비석 탁본(八紘一宇 碑石 拓本), 1941년.(왼쪽) 1907년 8월 4일 발행된 프랑스 화보신문인 ‘Le Petit Journal(르 쁘띠 주르날)’의 삽화로, 제목은 ‘한국의 내란-서울에서 폭도와 싸우는 일본인 경찰’이다.

▶김구 선생, 중국인 왕백수 부부와 함께한 엄항섭과 박찬익

경기도 출신 주요 독립운동가는 조병세·최익현·이한응을 비롯해 류근·여운형·조소앙·조성환·박찬익·안재홍·신익희·엄항섭 등 이루 헤아리지 못할 만큼 많다. 일제에 항거해 자결 또는 절식을 통해 순국한 이도 있고, 국외에서의 무장독립운동이나 대한민국임시정부·광복군 활동에 투신한 이들도 있다. 해방 이후 여운형은 반대파에게 암살을 당했고, 조소앙과 안재홍은 한국전쟁 기간 납북됐다. 신익희는 1956년 5월 유세하러 가던 도중 뇌일혈로 급서하는 등 장렬한 최후를 맞은 이들이 많다.

이 사진은 여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엄항섭과 파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찬익이 김구 선생, 중국인 왕백수 부부와 함께 찍은 것이다. 왕백수는 윤봉길 의거 때 폭탄을 제조한 중국인이다. 사진에서처럼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활동한 주요 인물 중에는 경기도 출신 독립운동가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편이다.

▶대한민국 제34회 임시의정원 의원 일동 기념촬영

1942년 10월 25일 제34회 의정원에서 구성된 의원(현재 국회의원)들의 모습이다. 의정원 회의에서 그간 독립운동의 방향과 방법을 두고 분열돼 임시정부에 참여하지 않은 정당과 단체, 무소속 인사 등이 통합된 의정원과 정부를 구성했다. 기념촬영을 한 46명의 의원 중 박찬익·조성환·김구·김원봉 등(이상 앞줄)이 보이고, 조소앙·엄항섭·신익희·신건식·심광식 등의 모습도 있다.

백창현 기자 bch@kihoilbo.co.kr 

사진=<경기도박물관 제공>

<도움 주신 분=박본수 경기도박물관 책임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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