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락기 전 한국시조문학진흥회 이사장
김락기 전 한국시조문학진흥회 이사장

지난 한가위 물가는 높았다.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환경에다 저급한 여야 정치 상황에 1인 가족의 외로움은 더 컸으리라. 아무리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지만 빈부격차로 신음하는 민초들의 피눈물은 서럽다. 배고픔 위에 덮치는 외로움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이들에게는 마음을 터놓을 짝꿍이 절실하다. 여기 ‘짝꿍’은 곧 마음의 벗이요, 흔히 반려자(伴侶者)라 할 수 있다. 요즘 세상의 권력자들은 돈과 명예까지 다 거머쥐려 한다. 이들 주변에 붐비는 사람들 중 진정한 반려자를 찾기 쉽잖을 것이다. 30~40여 년 전만 해도 비록 가난했으나 우리들 가까이에 일가친지 같은 반려자가 여럿 있었다. 시방은 그런 인간 반려자가 드물다 보니 반려동물, 반려식물에 반려로봇, 반려주식이란 신조어까지 나온 듯싶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 우리집 우물가에 자그만 야생화 꽃밭을 만들곤 했다. 방을 나가면 꽃들이 지천에 널린 시골 산야였건만, 그 야생화가 너무 좋아 가까이 두고 싶었다. 그때마다 꼼꼼한 농부였던 선친께서 갈아엎으셨으니, 그 기억이 슬픈 아쉬움으로 아린다. 또한 군복무 후 대학에 복학해 낙향 공부 중인 시절이 있었다. 서울서 한두 번 만났던 여성의 손 편지를 받고 뭐 그리 사무쳤는지 맘이 들떴을 무렵, 희한하게도 바로 그 우물가에서 한 다발의 화초가 솟았다. 잎이 지자 긴 꽃대 끝에 연분홍 꽃차례가 피어올랐다. "나 홀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음은 항상 그대 곁에 있었네/ 지난날 만나온 수많은 얼굴들도/ 모두 다 그대를 만나기 위한 연습이었는데…그리움에 사무쳐 핀 한 송이 꽃 상사화여." 내 자유시 ‘상사화’의 일부다. 내게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보다 ‘불타는 그리움’이었다. 그 여성이 지금의 내 아내다. 

 이향(離鄕)으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진 고향 땅, 지금 우물만이 그대로 남아 싱싱한 샘물을 간직한 채 본향을 지키고 있다. 매년 고향 선산 벌초 때마다 들르는 그 우물은 지난날 꽃밭과 상사화를 새삼 되새기게 한다. 

 돌이켜보건대, 참으로 나와 함께해 온 반려자는 화초 같은 식물이라 하겠다. 은퇴 후 단표누항에 안분지족하며 사는데도, 늘 옆에서 반기고 챙겨 주거나 하다 못해 물끄러미 지켜주는 짝꿍은 바로 식물들이다. 나만의 오해일 수 있지만, 가깝다던 인간들이 멀어질수록 식물은 더 곁으로 다가왔다. 이른바 ‘반려식물(伴侶植物)’이다. 인간들 간의 신뢰가 사라지니 짐승이나 식물을 인격화시켜 인간과 대비코자 ‘반려’란 단어가 적용됐겠다. 

 2022년 6월 언론 보도에 따르면 식물 관련 출간 책이 교보문고 기준 2021년 107종으로서 그 전년보다 18종이, 판매량은 31%가 늘어났다고 한다. 반려식물은 ‘사람이 가까이에 두고 정서적으로 의지하면서 기르는 식물’이다. 지금은 반려동물 인구 1천500만 명 시대라는데, 반려식물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반려동물에 비해 보채지 않고 조용하며 기르기 수월하다. 아울러 실내 정화에 행복호르몬 세로토닌 증가와 스트레스 저하로 심신 안정을 도모하는 등 장점이 퍽 많다. 

 그런데 이런 것을 넘어 내가 특히 강조코자 하는 것은 ‘식물은 절대로 속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시대 대철인 성철스님의 불기자심(不欺自心)이다. 따라서 자연을 대표하는 생물은 ‘식물’이라 하겠다. ‘자연’이란 인간을 포함한 이 삼라만상 우주만물을 다 일컫는 대개념이다. 

 나는 그간 이 칼럼을 통해 상당한 종류의 화초 관련 수필과 시조를 썼다. 좁은 아파트지만 우리집에는 무려 40여 가지의 식물이 자라며, 사시사철 꽃이 핀다. 그 중 지면 관계상 한 가지만 들어본다. 밤마다 향기를 풍기는 식물, ‘야향목(夜香木)’이다. 88서울올림픽 무렵 신문 기사를 보고, 처가 큰아이를 업은 채 동대문 근처 해당 의원을 찾아가 얻어 온 10㎝짜리 묘목이었다. 그동안 여러 사람에게 분양했다. 여름·가을, 밤마다 진한 향기를 풍기니 옆집에서 무슨 향수를 쏟았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오늘도 향내가 진동한다. 이만하면 한평생 반려식물과 함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단시조로 토한다.

- 텔레파시 설법 - 

 때맞춰 물만 줘도
 무념무상 한집에서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말없이 건네는 말
 
   늘 곁에
 시혼을 일구니
 외로울 새 없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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