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어느 유머책에 실린 사례입니다. 과속운전으로 단속에 걸린 운전자에게 경찰이 "오늘 종일 이곳에서 당신을 기다렸습니다"라고 말하자, 운전자는 미소를 지으며 "당신이 오랫동안 기다릴 것 같아 서둘러 왔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답했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가 무척 여유롭습니다. 우리의 상식대로라면 경찰이 범칙금을 부과해야 하지만 경찰은 의외로 웃으면서 속도를 줄이라고 하고선 그냥 보내 줬습니다. 용서해 준 것이죠. 운전자는 아마 무척 기뻤을 것이고, 경찰의 당부대로 속도를 줄여 가며 운전했을 겁니다.

30여 년 전, 제가 미국에서 생활했을 때의 일입니다. 공군사령부 안에 있는 세탁소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매일 아침 부대 안에 있는 은행을 다녀와야 했습니다. 은행 일을 마치고 ‘일단 멈춤’ 팻말이 있는 삼거리에서 완전히 멈추지 않고 우회전을 했습니다. 부대 안이라 차량 통행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잠시 뒤 공군 경찰이 제 차를 세우더니 "저기 ‘멈춤’ 팻말을 보지 못했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속도를 줄이긴 했지만 완전히 멈추지는 않은 것 같아 "죄송하다"고 했습니다. 그는 한국인이냐고 묻더니 자신도 동두천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면서 아내도 한국인이라며 반갑다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제게 평생 잊지 못할 말을 하더군요.

"내가 한국에 살아봐서 아는데, 한국 사람들은 ‘Stop means stop!(멈춤은 멈추라는 것을 뜻한다)’이라는 말을 잘 모르는 것 같다. 다음부터는 잘 지켰으면 좋겠다."

범칙금 없이 용서해 준 그가 고마웠지만, 한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그 다음부터 은행을 오갈 때면 저는 그곳에서 차를 완전히 멈췄습니다. 그의 용서가 저의 운전 태도를 바뀌게 한 겁니다.

용서는 강자만이 가진 특권입니다. 그 당시 경찰관은 ‘강자’이고 저는 ‘약자’입니다. 범칙금의 목적이 재발 방지에 있다면, 저의 경우 경찰의 용서가 재발 방지에 효과가 컸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약자가 강자를 용서할 수는 없습니다. 강자는 물리적 힘을 가진 사람이지만 이 글에서 말하는 강자는 권력을 가진 사람뿐만 아니라 ‘마음이 강한 사람’을 뜻합니다. 마음이 강하다는 말은 자긍심이 높은 사람이고, 자긍심이 높을 사람일수록 타인의 실수나 잘못에 대해 너그럽습니다.

「따뜻한 영혼을 위한 101가지 이야기」(잭 캔필드)에 위대한 골프 선수 로버트 데 빈센초의 일화가 나옵니다. 어느 대회에서 우승한 그가 상금으로 거액의 수표를 받은 뒤 주차장으로 걸어가는데, 한 젊은 여인이 다가와 말합니다. "제 아기가 심하게 아파서 거의 죽게 됐습니다. 병원비를 어떻게 해결할지 모르겠습니다."

빈센초는 그 즉시 수표에 서명한 뒤 "아기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한 후 그녀에게 줬습니다.

다음 주,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골프협회 관계자는 그녀가 사기꾼이고, 미혼이라 아기도 없다는 말을 했습니다. 사기를 당한 것이었죠. 그런데 빈센초는 "그러니까 자네 말은 그녀에게 죽어가는 아기가 없다는 말이지?"라고 되묻고는 "이번 주 들어 가장 좋은 뉴스로군!"이라고 답했습니다.

제가 만약 빈센초라면 분노했을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녀에게 죽어가는 아기가 없다는 것이 좋은 뉴스라며 웃어 넘겼습니다. 피해자이자 강자인 그가 약자인 가해자를 용서해 준 것이지요. 만약 그가 그녀를 용서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하고 동시에 자신을 속인 그녀에 대한 원망과 분노에 휩싸여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는 고통을 받았을 겁니다. 그러나 그녀를 용서함으로써 그는 분노에서 해방됐고 자기 일에 매진할 수 있었을 겁니다.

우리 모두 강자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남의 사소한 잘못이나 실수를 지적하거나 비난하기보다는 용서해 주는 너그러움이 사회를 부드럽게 만들어 조금이라도 더 평화스러운 사회로 나아가게 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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