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조순 인천대학교 경제학과 겸임교수
임조순 인천대학교 경제학과 겸임교수

물가가 심상치 않다. 서민들이 밥상 물가에 부담스러움을 느낀 지는 이미 오래다. 장바구니 물가뿐만 아니라 최근 우리나라의 소비자물가 상승세는 통계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지난 6월 생활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7.4%, 7월엔 7.9%나 상승했다. 이는 23년 전인 1998년 11월 6.8%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물건값이 높아진다는 건 돈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화폐 가치가 하락해 물가 수준이 지나치게 상승하는 경제현상을 인플레이션이라고 하는데, 바야흐로 우리는 인플레이션의 시대를 살아가는 것이다.

 인플레이션이 나타나는 원인은 다양하다. 우선 경제성장에 따른 인플레이션 현상이 있다. 경제가 성장하면 기업의 매출도 증가하고 임금도 상승하며 고용 창출도 증가한다. 가계의 소득 증가에 따라 수요가 증가하면서 물가가 상승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 경우는 좋은 인플레이션으로 볼 수 있다. 

 두 번째로 경기 부양을 위한 재정정책의 결과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경제성장과 저물가로 경제상황이 디플레이션에 빠질 경우 정부는 금리를 인하하고, 감세를 단행하고, 건설경기 부양 등을 통해 경기부양책을 사용한다. 이로 인해 화폐 공급이 증가하면서 물가가 급상승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다음으로 공급충격에 따른 인플레이션 현상이 있는데, 1970년 두 차례의 석유파동이 원인이 돼 나타난 인플레이션이 대표적 사례라고 할 것이다. 이 밖에도 환율 상승, 독과점, 가격 통제 등 다양한 원인으로 인플레이션은 발생한다.

 오늘 우리가 마주하는 인플레이션은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과 지속으로 인한 세계 무역 공급망의 교란에 더해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으로 인한 가스와 식량 등의 원자잿값 폭등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또한 최근의 인플레이션은 지난 40여 년 동안 세계화를 기치로 한 무역자유화에 익숙해 있던 경제 주체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생긴 현상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는 지난 수십 년간 이어져 오던 미국 주도의 자유무역 질서의 세계경제 판도가 변화하는 증거를 보고 있다. 

 80세를 넘긴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은 노구를 이끌고 미국 전역을 누비며 Made in America를 외치고 있다. 싼값의 노동력을 찾아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기던 시절에 비하면 격세지감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지점은 이번 인플레이션에 대한 미국의 대응인데, 지난 8월 16일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한 ‘인플레이션 감축법’ 을 살펴보면 흥미롭다. 우리나라 언론은 주로 미국 내에서 생산되는 전기자동차에만 세제 혜택을 주는 법안으로 보도하지만, 이 법안의 핵심 내용은 증세다. 이 법이 시행되면 향후 10년간 정부 세입은 7천370억 달러인 반면 지출은 4천370억 달러로 세입이 3천억 달러, 우리 돈 400조 원이나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대기업에 최소 법인세율 15%를 도입하고, 기업이 자사 주가를 방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자사주 매입에 1% 과세하며, 세무당국의 징수권 강화 등을 통해 세입을 늘리고 이 돈으로 건강보험 가입자 보조금을 연장하고, 서부지역 가뭄 피해에 대응하며, 에너지 안보와 기후위기에 대응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미국 정부는 ‘인플레이션 감축법’ 도입으로 인플레이션의 고통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대기업, 자산가들에 대한 증세를 통해 금리 인상과 고물가로 어려움을 겪는 대다수 국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우리 정부로 눈을 돌려보자. 당국은 고물가와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발이 묶여 마땅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대출자의  부담은 가중되고, 실질소득이 감소해서 경기가 나빠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미국과 달리 대기업 위주의 감세를 단행해 인플레이션의 고통에 직면한 서민과 취약계층을 위한 보호책 마련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더해 정부는 재정준칙 법제화를 추진하고 있다. 지금 같은 시기에 재정준칙이 법제화되면 재정 운용의 경직성이 커져 성장 잠재력에 타격을 주고 복지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주지하듯이 미국은 선진국 중에서도 복지가 취약하고 경제사회적 불평등이 심한 나라다. 이는 경쟁과 성장을 철학으로 하는 정치세력의 힘이 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엔 인플레이션을 극복하기 위해 과감한 증세정책을 선택했다. 우리 정부도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시대에 정책적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 긴축재정을 운용한다면서 대기업과 자산가에게 많은 혜택이 가는 감세정책을 추진하는 앞뒤 맞지 않는 행보는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 어려워 보인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에서 해답을 찾아보자!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