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덕우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
강덕우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

용유도 옆에 있는 섬 무의도는 잠진항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건너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으나 2019년 4월 잠진도와 무의도를 연결하는 무의대교가 생겨 이제 배가 없어도 육지에서 언제든지 건너 다닐 수 있는 ‘섬 아닌 섬’이 됐다. 하나께, 큰무리, 실미 등의 해수욕장을 갖고 있는 이 섬은 흔히 "섬의 모양이 장수(將帥)가 관복(冠服=衣)을 입고 춤을 추는(舞) 모습"이어서 ‘무의(舞衣)’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시대 전반을 통해 무의도는 ‘옷(衣)’을 입고 ‘춤추는 (舞)섬’이 아니라 ‘옷(衣)’을 ‘입지 않은(無) 섬’인 ‘無衣島(무의도)’로 표기되고 있다.

현재에도 대무의도는 ‘큰무리’로, 소무의도는 ‘떼무리’나 ‘뙤무리’로 불리고 있다. 여기서의 ‘무리’는 우리말로 ‘물’을 의미하는데, 조수간만에 의한 밀물과 썰물이 들어오고 나가고 하는 시기를 나타내는 큰 물때, 작은 물때를 지칭하는 것으로, 이것을 한자로 옮겨 쓰면서 ‘무의’로 변화됐다는 것이 음운학자의 견해다. 따라서 한자의 뜻과는 관계없이 소리만 빌려 쓴 것이기 때문에 ‘無衣, 無依, 舞衣’ 등 여러 가지로 쓰이게 됐다는 것이다.  

인천 앞바다의 작은 섬 무의도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는 시기는 조선 세종 때로, 세종 13년(1431) 3월 ‘소’를 방목하는 지역으로 인천군의 용유도(龍流島)와 무의도(無衣島)가 선정됐는데, 물과 풀이 모두 풍족해 목장으로 할 만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로부터 각기 암소 4두와 황소 2두를 배정해 국가 재정으로 삼았고, 민간과의 교환도 가능하게 했다.

1910년 8월 한국이 일본에 강제로 합병된다는 소식에 블라디보스토크를 중심으로 한 시베리아 지방의 애국 동포들은 ‘성명회(聲明會)’를 결성하고 한일 합병의 부당성을 각국 정부에 호소했는데, 회장 오주혁(1876~1934)은 이 사건으로 러시아에서 쫓겨나 인천 소무의도에서 1년간 유배생활의 고초를 겪었다. 비슷한 시기 강화진위대장으로 의병을 조직하고 강화 합일학교를 설립한 독립운동가 이동휘(1873~1935)도 ‘105인 사건’으로 대무의도에 유배됐는데, 해방 후 1946년 11월 백범 김구가 나룻배로 오가던 시절의 무의도를 전격 방문한 것도 이와 전혀 무관하지는 않을 듯하다.

「매일신보」 1912년 2월 7일자에, 인천항 축항공사에 강화도와 무의도 등에서 지반을 굳히는 데 쓰이는 자갈돌인 율석(栗石)과 축대에 쓰이는 간지석(間知石)을 수급하는 배가 20여 척이나 드나들고 있다는 기사로 보아 석재 채취의 현장으로도 이용됐던 것 같다. 특이한 것은 무의도가 새우의 대표적 산지로 부각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1934년 경기도지사가 부천군수의 안내로 어업시찰차 소무의도를 방문했고, 1937년에는 중국으로 가는 주요 무역품인 무의도 새우가 생산이 급락했음을 우려하고 있다. 「매일신보」 1938년 7월 27일자에 ‘전시체제 하의 비상시 자원 수급의 원활을 도모하고자 소무의도에 마른 새우(건하, 干蝦, 乾蝦) 가공 공장을 세우기로 한다’는 기사를 통해 무의도가 새우 산지로 이미 주목을 받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새우 가공품은 중국과 만주로 수출되는 것으로 대호평을 받았다 한다. 그럼에도 이들의 삶은 녹록치가 않았다. 후일 월북 작가가 된 인천 출신 함세덕은 1941년 ‘무의도기행’이라는 희곡을 발표했다. 1930년대 후반 서해안의 작은 어촌 ‘소무의도’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일제 강점기 우리 어촌 농어민들의 참담한 삶의 실상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지금 무의도는 엄청나게 변화 중이다. 소무의도까지 연결하는 소무의도인도교가 2011년 6월 개통되고, 무의바다누리길이 조성되면서 인천의 명소로 더 한층 세간의 입에 오르게 됐다. 무의대교 개통 후 2020년에는 바다 위에 목제 데크길을 만들어 한쪽에는 절벽과 반대쪽에는 바다를 감상할 수 있는 무의도 해상관광탐방로도 만들었다. 또한 산림청은 2022년 7월 국립 무의도 자연휴양림을 개설, 본격 운영에 들어갔다. 산림휴양과 해양관광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도심권 내 휴양시설로는 수도권에서는 유일하고 섬으로서는 네 번째라 한다. 인천 앞바다 168개의 섬 중에서 ‘보물섬’으로의 위상에 걸맞은 변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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