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엽 ㈔글로벌녹색경영연구원 부총재
이경엽 ㈔글로벌녹색경영연구원 부총재

지난달 15일 칠레 파타고니아의 국립공원에서 고온과 강우로 약해진 빙하가 눈사태처럼 쏟아져 내리는 장면이 영상에 잡혔고, 이를 로이터와 ABC가 보도했다. 같은 달 12일 여행객이 촬영한 영상 속에서 균열이 생긴 약 200m 크기의 빙하가 폭포로 쏟아져 내렸다. 과학자들은 빙하 붕괴 전 파타고니아에는 ‘매우 비정상적인’ 폭염 현상이 있었고, 급격한 온난화 현상은 기후변화와 온실가스 방출과 관련 있다고 전했다. 

이렇게 급작스러울 정도로 전 세계 이목을 끈 곳, 파타고니아는 칠레 남단 남극에 걸쳐 있는 지명이다. 동쪽으로는 그 유명한 안데스산맥, 북쪽으로 아타카마사막, 남쪽으로 춥고 험준한 파타고니아 등 다소 고립된 국토를 가지고 있으며 길쭉한 형상이 눈에 띈다. 

이즈음 또 다른 ‘파타고니아’라는 기업 이름이 세계적 이슈가 되고 있다. 창업주 ‘이본 쉬나드’의 홈페이지 메시지를 보면 "지구는 우리의 유일한 주주(Earth is now our only shareholder)"이기에 소중히 해야 한다는 의미를 강하게 전한다. 더불어 "선(善)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와 능력이 있는데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악(惡)한 것과 다름이 없다"고 말한다. 세계적 아웃도어용품 기업 파타고니아를 일군 이본 쉬나드의 명언 중 하나다. 

이윤 창출이 아닌 자연 보존과 직원 복지를 최우선 가치로 삼았던 그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쉬나드는 지난달 14일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서 자신과 부인, 두 자녀가 소유한 지분 100%를 통째로 넘겼다고 밝혔다. 쉬나드 일가가 넘긴 지분은 약 30억 달러(약 4조1천800억 원)에 달한다. 지분의 98%는 기후변화 대처를 위한 비영리재단에, 2%는 신탁사에 넘겼다. 파타고니아의 연매출 약 100만 달러 역시 고스란히 기부된다. 쉬나드 일가에게 남은 것은 0%로 이미 8월 모든 절차를 마쳤다고 한다. 비상장 주식이지만 실로 통 큰 기부인 셈이다. 

쉬나드는 NYT에 "지금의 자본주의는 소수의 부자와 다수의 가난한 자로 이뤄져 있지 않나"라며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에 선한 영향력을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처음부터 회사를 만들 생각도 없었고 사업가가 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이제 내 회사는 내가 없어도 옳은 가치를 위해 계속 굴러갈 수 있게 됐으니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다." 자본주의 자본가의 가치지향 공존 논리다. 

ESG는 바로 이러한 ‘옳은 가치’를 이야기해야 한다. 환경, 사회공헌, 지속가능을 ESG라고 해서는 안 된다. 적어도 일반적 경영학 수준의 논거와 기준, 통찰로 그냥 누구나 이야기할 수 있는 컨설팅 이슈로 포장해서는 안 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에서 기원한 금융제도와 역할, 신뢰가치부터 터잡은 메디치가문, 사서삼경과 헤세, 톨스토이까지 동원돼야 ESG가 등장한 원인과 사회적 배경을 이야기할 수 있다. 그 외 세계사에 동원되는 지정학적 인식, 역사적 맥락, 자본시장 그리고 보다 나은 내일에 대한 선한 지향점을 제시하지 못하면 그냥 문화센터 수강생에 대한 평범한 일반 전문가 수준의 환경, 사회, 경영 입담이 될 뿐이다. 제조업 기반의 일사분란함, 상명하복, 수익 절대 우선 같은 인식의 틀을 ESG에 개입시켜서도 안 된다. 

역사적·인문학적·윤리의식 기반이 취약하면 좌표 설정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지속가능이라는 단어는 시간의 영속성을 지켜가는 당연한 개념이기 때문에 여기에 미사여구를 가져다 붙일 필요는 더더욱 없다. 특히 ESG가 미래를 위해 반드시 추구해야 할 가치라면 ‘나눔’과 ‘배려’의 ESG 개념을 올바르게 이해해야 한다. 파타고니아는 미국 내 브랜드 평판 조사 1위(2021년 5월 기준) ‘착한 기업’의 대표 주자다. 기업 목표로 ‘지구에 해를 끼치지 않고 사업을 통해 자연을 보호하는 것’을 내세운다. 내구성을 우선시하며 "어느 정도 입을 만하다면 새로 사지 말고 그냥 입던 걸 입어라"는 철학으로도 유명하다. 

일가 기부금액은 기후변화 대처 프로젝트와 저개발지역 보호에 쓰여질 예정이다. 본인도 소박한 셔츠를 입고 평생 등산을 즐기며 여생을 보낼 작정이라고 한다. 손때 묻은 자동차에 컴퓨터도, 휴대전화도 갖고 있지 않다고 했다. ESG 경영은 지속가능한 진정성 있는 가치를 이렇게 지켜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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